경찰·검찰 ‘오달이 신경전’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3.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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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법조 인맥 앞세워 사기 벌인 전과 4범 검거…검찰, 연달아 영장 신청 기각
"오달이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서울 용산경찰서에 함구령이 떨어졌다. 용산역 맞은편 홍등가에도 함구령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오달이 또는 박오달이라고 불리는 박우진씨(49·가명)는 용산역과 한남동 일대에서 검찰과 경찰 인맥을 과시하며 행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용산경찰서 수사 과정에서 법조인 30여명과 전화 통화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변변한 경력이 없다. 경찰 수사에서 그가 밝힌 직업은 일산의 한 안마시술소 사장이고, 수원에서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등 전과 4범이다. 한마디로 유흥업자인데, 그런 그가 어떻게 법조인과 폭넓은 인맥을 형성했을까?

지난 3월 초, 경찰은 오달이에 대한 첩보를 입수했다. 용산역 일대 윤락업주 사이에서 ‘오달이를 통하면 구속은 면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경찰은 오달이가 도대체 누구인지 수소문한 끝에 3월17일 박씨를 집에서 검거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박씨가 밝힌 이력은 ㅎ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1990년대 초반 유흥업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서울 한남동에서 속칭 ‘홀딱쇼’를 하는 주점을 운영해 돈방석에 앉았고, 용산역 근처에서 다방을 운영하며 업주들과 관계를 텄다. 이때부터 윤락업주들이 단속에 걸리면 그가 변호사를 소개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는 벽에 부딪혔다. 박씨는 법조인과 인맥을 형성한 과정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용산역 일대 업주들도 함구했다. 결국 경찰은 수사 방향을 틀어 최근 3개월 동안 박씨가 통화한 핸드폰 통화 기록을 조회했다. 통화 기록에 따르면 지역 별로는 서울지검과 동부지청·서부지청·북부지청·수원지검 검사와, 직책 별로는 부장검사에서부터 평검사까지 현직 검사 20여명과 통화했다. 안내 전화를 이용한 경우를 제외하고 직접 검사실로 통화한 기록만 이 정도였다. 박씨는 검찰 직원이 아니라 검사와 직접 통화했다고 수사 과정에서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 내용이나 이유를 진술하기는 거부했다.

경찰은 박씨와 통화한 변호사 4명을 서면으로 조사했다. 팩스를 통해 받은 답변은 제각각이었다. 통화 사실 자체가 전혀 없다거나, 안면만 있다거나, 사건 소개를 받았지만 대가는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통화한 변호사 4명 가운데는 박씨와 함께 체포된 이 아무개씨(53)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도 있었다. 경찰은 지난 4월4일 이씨를 박씨의 하수인으로 체포했었다. 박씨와 가까운 ㅈ변호사는 고향 선후배 사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박씨의 회사(유흥업소) 문제로 상담해 주었고, 술자리에 합석하는 사이라고 했다. 그는 “박선배가 후배들을 잘 챙긴다. 사업을 하니까 그가 주로 술을 산다”라고 말했다.

ㅈ변호사는 박씨를 법조 브로커라기보다 사업 수완이 뛰어난 사람으로 여겼다. 브로커 노릇을 할 만큼 궁색하지 않고, 인맥 관리 차원에서 검찰과 관계를 쌓았다는 것이다. ㅈ변호사는 ㄱ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씨가 학맥을 이용해 검사와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가 ㄱ대 동문회에 확인해 보니 졸업생 가운데 박씨의 이름은 없었다. 경찰 조사에서 밝힌 ㅎ대 무역학과 졸업생 명단에도 그는 없었다.

ㅈ변호사에 따르면 박씨는 주로 술자리를 통해서 인맥을 관리해 왔다고 한다. ㅈ변호사는 “부장검사가 후배나 직원과 술을 마시면 박선배가 나가서 스폰서 노릇을 했다”라고 말했다. 술값을 대면서 법조계 인맥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박씨가 검찰 내에 친분을 두루 맺게 해준 배경으로 고위직 출신인 ㅇ변호사(49)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불미스런 사건으로 검찰을 떠나 개업한 ㅇ변호사는 박씨의 핸드폰 통화 기록에도 자주 등장한다. ㅈ변호사도 ㅇ변호사와 박씨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는 7년 전 박씨의 소개로 ㅇ변호사와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ㅈ변호사는 “박선배가 알아두면 좋다면서 술자리를 만들었다. 7년 전에도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처럼 보였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오달이 박씨는 2000년 10월 사기 피해자 박 아무개씨(50)에게서 검찰 내에 아는 사람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며 5백만원을 받았고, 2001년 9월11일에는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안 아무개씨(54)로부터 천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지난해 8월에는 윤락행위방지법으로 구속된 오 아무개씨를 석방시켜 주겠다며 천만원을 챙겼다.

경찰은 이같은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검찰에 구속영장과 박씨 가족의 계좌에 대한 압수 수색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검찰은 기각했다. 박씨가 받은 돈이 모두 변호사 선임비로 사용되었고, 가족에 대한 계좌 추적은 박씨 사건과 무관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은 4월16일 박씨에 대해 다시 영장을 청구했지만, 검찰은 이번에도 기각했다. 세 차례에 걸쳐 박씨 주변인에게 발부한 영장으로 계좌 추적을 충분히 했다는 이유를 댔다.

오달이 사건을 두고 검찰과 경찰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수사중이라고 말하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물 건너간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게 중요한데 계좌 추적과 압수 수색을 않고서는 증거를 찾을 길이 없다”라고 말했다. 4월22일, 5월1일 기자는 두 차례에 걸쳐 박우진씨 집을 직접 찾았다. 그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연락처를 남겼지만 박씨는 연락하지 않았다. 박씨 부인은 “집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남편은 억울해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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