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요리사에서 은행 사냥꾼으로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2.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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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행 인수’ 유력 후보로 떠오른 론스타는 어떤 기업인가



제일은행의 주인은 미국계 투자 펀드 뉴브리지다. 한미은행도 미국계 펀드인 칼라일 펀드가 대주주다. 이번에는 서울은행 차례다.


정부는 서울은행 매각 협상 우선 대상자를 8월 중으로 결정할 방침이다. 현재 서울은행 인수전에 뛰어든 선수들은 하나은행·JP모건·론스타 등 세 곳인데 최근 론스타 펀드가 유력한 후보자로 부각되고 있다.


론스타의 등장은 재계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6월까지만 해도 서울은행은 당연히 하나은행과 합병하는 것처럼 보였다. ‘국내 우량 은행’과의 합병이 정부 금융정책의 큰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론스타는 금융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가장 인수 가능성이 작은 후보로 꼽혔다. 제일은행을 뉴브리지에 매각했을 때 헐값 매각과 과도한 스톡 옵션, 은행 공공성 훼손을 비판받은 선례가 있다.


하나은행과 2파전


하지만 서울은행 한 관계자는 최근 3파전이었던 인수전이 하나은행 대 론스타의 2파전으로 변했다고 전했다. 론스타가 떠오른 것은 인수 가격의 차이 때문이다. 론스타의 한 관계자는 “정확한 입찰 금액을 확인해 줄 수는 없지만, 하나은행보다 높게 제시한 것은 맞다. 하나은행과 같은 가격으로는 결코 인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하나은행이 서울은행 지분 51%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5천억원을 제시한 반면, 론스타는 100% 인수하는 조건으로 1조2천억원을 제시했다. 정부는 일단 51%만 매각할 방침이므로 이 자료대로라면 론스타는 하나은행보다 천억원 더 높은 값을 매긴 셈이다. 정부로서는 무조건 하나은행 손을 들어주기가 곤란한 처지이다.


서울은행 양병민 노조부위원장은 “노조는 론스타 인수를 지지한다”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 5월 하나은행 고위 임원이 “서울은행을 인수하면 1천명을 감원하겠다”라고 발언한 것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하나은행은 공식적으로 발언 내용을 부인했지만, 노조원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반면 론스타는 서울은행 노조에게 고용 안정에 대한 언질을 건넨 것으로 보인다.


론스타는 1991년 창립된 부실 채권 전문 투자 펀드다. 본부는 뉴브리지처럼 미국 텍사스에 있다. 론스타라는 이름은 텍사스 주의 상징인 ‘외로운 별(lone star)’에서 따왔다.


론스타의 주 고객은 미국 주정부나 사학재단이다. 론스타측은 동원 가능한 자금이 무려 1백20억 달러(14조원)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2001년 12월 조성된 론스타펀드 Ⅵ 하나의 자산 규모만 40억 달러(4조8천억원)에 이른다. 론스타 펀드Ⅳ에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 같은 굴지의 기관도 참여하고 있다.


론스타의 한국 지사인 론스타어드바이저코리아(론스타코리아)가 세워진 것은 1998년이다. 론스타코리아는 자회사로 부동산 관리회사인 스타PMC를 두고 있다. 스타PMC는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와 여의도 SKC빌딩, 여의도 동양증권빌딩, 명동 청방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이 중 스타타워는 론스타의 대표적 상징물인데 2001년에 현대산업개발로부터 5천8백억원에 매입한 것이다. 이 건물 19층에 론스타코리아가 자리잡고 있다. 직원은 1백30명 정도로 일본 론스타와 비슷한 규모다.


부동산·채권 열기 시들자 금융기관에 눈 돌려





론스타코리아 회장은 심광수씨, 사장은 유회원씨다. 심광수 회장은 옮겨오기 직전까지 자산관리공사 부사장을 지냈는데, 론스타는 이 공사의 주요 협상 대상자였기 때문에 국회에서 구설에 올랐다.
심광수 회장은 로비를 위한 얼굴 마담에 불과하며 론스타코리아를 움직이는 실세는 ‘컨트리 매니저’라는 직함을 가진 스티븐 리(이정환)씨다. 하버드 MBA 출신으로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한국어를 하지 못한다. 직원들은 그를 ‘총괄 대표’라고 부른다.


최근 론스타의 투자는 아시아에 집중되고 있다. 2000년 11월에 조성된 론스타 펀드 Ⅲ(22억5천만 달러)는 90% 이상이 아시아 시장에 쓰이며 그 중 20%가 한국 시장에 투자된다. 지금까지 론스타가 한국에 투자한 방식은 주로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부실 채권을 인수하는 형태였다. 부실 채권의 경우 1998년 이후 5조8천3백50억원어치를 인수했다. 특히 자산관리공사(구 성업공사)를 통해 모두 네 번에 걸쳐 1조7천억원어치를 인수했다.


론스타는 헐값에 산 부실 채권을 제값에 파는 방식으로 시세 차익을 많이 냈다. 그 와중에 잡음도 있었다. 론스타는 화의 절차 중인 무학건설 채권 98억6천1백만원어치를 자산관리공사로부터 40억원 가량에 샀다. 그후 몇 달이 채 안된 2001년 2월 론스타는 무학건설에 보증을 서 주었던 (주)무학에 이자를 포함해 1백2억원을 내놓으라는 최고장을 보냈다. 막 워크아웃에서 벗어나고 있던 무학은 회생하려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며 언론에 호소했다. 이 사건은 외국 자본이 횡포를 부린 대표적인 사례로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당황한 론스타는 무학과 급히 협상을 별여 결국 무학건설로부터 84억원을 받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그래도 론스타는 두 배를 남겼다.


론스타는 최근 채권·부동산 인수에서 금융기관 인수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7월16일 한빛여신(현 우리은행 계열사)을 인수하기로 양해 각서를 체결한 것을 비롯해 대우캐피탈 인수 경쟁에도 뛰어들고 있다.


론스타가 전략을 바꾼 배경은 한국 시장의 여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 채권 시장은 2001년을 고비로 정체 상태에 빠졌다. 한 외국계 펀드 관계자는 “한국처럼 부실 채권을 빨리 정리한 나라는 없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채권 시장에서 경쟁이 심해지는 것도 전략 변화의 원인이다. 외국계 펀드끼리의 경쟁도 경쟁이지만, ‘학습 능력이 뛰어난’ 국내 자본들도 구조 조정 펀드를 만들어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빌딩 시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때 떨어졌던 부동산 가격은 원상태로 회복했다. 알투코리아 변재현 연구위원은 “그동안 외국인들은 국내 빌딩 시장에서 ‘두 배’ 장사를 했다. 지금도 그들은 15% 정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빌딩을 원하지만 요즘 그런 매물은 없다”라고 말했다. 자산관리공사 정환영 팀장은 “국내 시장 변화에 따라 외국계 펀드들이 철수해 중국이나 일본으로 옮겨가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론스타는 철수하기보다는 한국에 남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론스타코리아 서진호 대리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의미에서 금융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은행 인수를 위해 론스타코리아는 도쿄스타은행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도쿄스타은행은 2001년 론스타가 일본 쇼와은행을 인수해 이름을 바꾼 곳이다. 서울은행을 ‘서울스타은행’으로 불러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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