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펀드, 투자냐 도박이냐
  • 소종섭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07.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구〉'대박' 이후 문화계 전반으로 열풍 확산…
과대 광고·수익금 싸고 잡음도 빈발




네티즌 펀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네티즌 펀드란 인터넷을 통해 영화나 음반 등에 대한 투자금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1999년 영화 〈반칙왕〉을 만들면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생긴 네티즌 펀드는 갈수록 청약자가 늘고 공모 금액도 커지는 추세이다. 분야도 게임 등으로 계속 확장되고 있고, 다음·심마니 등 포털 사이트는 물론 팍스넷 같은 증권 사이트까지 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3월12일 심마니 엔터펀드는 영화 〈친구〉에 대한 네티즌 공모를 실시했다. 모금액은 1억원. 그런데 엔터펀드는 애초 모금액의 10%(천만원)로 잡았던 1인당 공모 상한액을 5%(5백만원)로 낮춰야 했다. 공모를 실시하기도 전에 대기하고 있는 금액이 3억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공모는 1분 만에 끝났다.


이뿐이 아니다. 5월21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을 통해 네티즌 펀드 1억 5천만원을 모금한 영화 〈신라의 달밤〉은 10초 만에 공모가 끝나는 신기록을 세웠다.


네티즌 펀드가 '원금 보장' 등을 내걸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금융감독원과 검찰은 7월1일부터 네티즌 펀드들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네티즌들의 투자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다음의 사례들이 그 반증이다.




네티즌 펀드, 얼마씩 투자하나(심마니 엔터펀드의 사례, 단위:명)














































































구분 리베라메 화양연화 자카르타 눈물 친구 파이란 비율
1000만원 이상 3 2 3 8 0.2%
500만원 이상 8 5 6 4 6 21 50 1.3%
100만원 이상 30 19 11 14 15 57 146 4.1%
10만원 이상 125 83 127 100 56 195 686 22.7%
만원 이상 545 391 339 160 110 387 1,932 71.6%
711 498 485 278 187 663 2,822 100.0%


풍경 하나. 지난 7월2일, KBS 드라마 〈명성황후〉 OST 앨범 제작 네티즌 공모는 3분 만에 마감되었다. 금액은 5억원.


풍경 둘. 지난 7월5일, 스콜피언스 내한 공연 네티즌 공모는 1분44초 만에 마감되었다. 금액은 3천만원.


네티즌 펀드가 이처럼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영화사나 공연회사들 처지에서는 자발적인 '홍보부대'가 생기는 셈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투자자들이 온·오프 라인 매체에 기고하는 등 열성적으로 홍보에 나서주기 때문이다. '명분'을 중시하는 투자자들은 그동안 객체였던 소비자가 제한적이나마 제작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네티즌 펀드라고 강조한다. 반면 '실질'에 주목하는 투자자들은 저금리 시대에 유용한 재테크 수단이라는 점을 든다. 잘만 투자하면 주식이나 은행 예금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엔터펀드 영상사업팀 윤승현 대리는 "투자자는 처음에는 나이 별로 20∼30대, 성별로는 남자가 60% 정도였으나, 점차 나이가 높아지고 아줌마 부대가 몰려드는 추세다"라고 설명했다. 윤대리는 네티즌 펀드를 공모할 때마다 참여하는 중복 투자자, 이른바 '꾼'들이 많아 신규 투자자와 적절한 비율을 맞추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 수사 착수…"옥석 가리는 계기 되어야"


영화에서 시작된 네티즌 펀드는 문화계 모든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네티즌 펀드를 주 수익 모델로 하고 있는 문화거래소 지팬은 지난 3월 악극 〈아빠의 청춘〉 제작비 8천만원을, 심마니 엔터펀드는 가수 조관우의 6집 앨범 '연'(5천만원)을 네티즌 펀드로 모았다. 지난 6월18일에는 게임 개발 회사인 이투소프트가 온라인 게임 〈베리타스〉를 대상으로 2억원의 펀드를 모집하는 등 게임 펀드·북 펀드도 생기고 있다.


공모 금액과 개인 투자액도 시작할 때와 견주면 많이 커졌다. 금융감독원 비은행감독국 비제도금융조사팀 조성국 팀장은 "초기 1억원 남짓한 돈을 모금하다가 지금은 5억원까지 금액이 치솟았다. 한 사람이 5천만원을 투자하는 등 투자 금액도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2억5천만원을 네티즌 펀드로 공모한 영화 〈파이란〉의 경우, 천만원 이상 투자자는 3명, 5백만원 이상은 21명, 100만원 이상은 57명에 달한다. 전체 투자자의 5%가 전체 공모액의 70% 이상을 투자한 셈이다.


본디 영화나 공연 등을 후원하고 홍보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네티즌 펀드가 이렇게 변질되기 시작한 것은 수익률이 부각되면서부터다. 〈반칙왕〉(97%) 〈공동경비구역JSA〉(150%) 〈친구〉(250% 예상) 〈자카르타〉(30% 예상) 등의 수익률이 알려지면서 네티즌 펀드는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것처럼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은 원금도 건지지 못할 정도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영화 〈천사몽〉 〈킬리만자로〉 〈휴머니스트〉 〈그녀에게 잠들다〉에 투자한 네티즌은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7월7일 현재 심마니 엔터펀드에서 거래되고 있는 작품 7개 가운데 〈친구〉(2만8천2백원) 〈자카르타〉(1만3천1백원)등 두 작품만 만원을 넘고 있을 뿐 나머지는 원금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네티즌 펀드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불거지게 된 것도 돈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대박'을 터뜨린 영화 〈친구〉의 경우다. 심마니 엔터펀드는 원래 제작·홍보비를 28억원으로 책정했다가 관객이 4백만 명을 넘어선 시점에서 8억원을 더한 36억원으로 책정해 네티즌들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사전에 약속한 것과 달리 수익이 28분의 1에서 36분의 1로 줄어드니 투자한 네티즌들로서는 화가 날 만했다.


게다가 일부 회사는 '원금 보장은 기본, 은행 정기 예금보다 높은 금리'라며 투자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네티즌 펀드 회사들이 받는 수수료가 1∼5%로 천차만별이고, 일부 회사는 공모 중간에 약관과 이자율을 변경하는 것은 물론 약속한 정산 기일도 어기는 등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것도 이런저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현단계에서 네티즌 펀드 투자자를 보호할 법적인 장치는 전혀 없다. 투자자들은 스스로의 판단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최종적으로 판 사람이 세금을 내게 되어 있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지난 7월6일 금감원의 의뢰로 시작된 네티즌 펀드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일단 '원금 보장'을 내건 6개 사이트 7개 펀드(네티즌 펀드를 운영하는 사이트는 모두 12개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에 국한해 있다.


지난해 1월12일 제정된 '유사 수신 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장래에 원금의 전액 또는 이를 초과하는 금액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고 예금 적금 부금 예탁금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받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식처럼 펀드를 사고 파는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관련 업체 관계자들은 검찰 수사가 옥석을 가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부 문제가 있는 업체들을 바로잡고 네티즌 펀드에 대한 법적 체계를 정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거래소 지팬 박미아 실장은 "단순한 홍보나 투자 목적보다는 문화의 저변을 넓히고 신진들을 키워주는 쪽으로 네티즌 펀드를 모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네티즌 펀드를 처음 도입한 인티즌은 투자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1억원 이하 공모 원칙을 지키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