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로 끝난 '위험한 베팅'
  • 런던·김용기 편집위원 ()
  • 승인 2001.12.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가조작 혐의' 제임스 맬런 아이리젠트 회장, 성공에서 몰락까지

사진설명 평생 동지 : 제임스 멜런(오른쪽)과 에버링턴(왼쪽 아래)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어온 사업 파트너이다.

리젠트 증권의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검찰로부터 두 번이나 출두 요구를 받은 아이리젠트(iRegent·전 리젠트 퍼시픽) 그룹 제임스 멜런 회장(43)은 국제 금융 시장에서 거물급 투자자이다.

지난 20년간 숱한 화제를 뿌린 그는 테크놀로지와 금융산업을 결합한다는 전략적 컨셉을 갖고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유럽 등지를 파고들다가 이번 주가 조작 혐의로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1999년 그에게 엄청난 이익을 남겨주었던 리젠트 증권(당시에는 대유 리젠트 증권)은 이번 사건의 직접 당사자가 되어 비틀거리고 있고, 리젠트 종금·리젠트 화재보험과 이들 기업의 지주 회사였던 코리아온라인 등 그가 아끼던 한국내 금융계열사들은 모두 붕괴 직전 상태로 내몰렸다. 한국 투자의 모체였고 홍콩 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아이리젠트도 이번 사건이 알려진 지난 11월 말 이래 70%가 넘게 주가가 폭락하는 홍역을 치렀다. 그가 65%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런던 시장에 상장을 추진해오던 인터넷 백화점 '빅세이브닷컴(Bigsave.com)' 또한 고전이 예상되어 그의 돈과 전략 모두가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투자 성공으로 국제금융계 '큰손' 올라

현재 영국 서쪽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조세 피난 지역인 아일오브맨(isle of man)에 은둔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제임스 멜런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유명한 PPE (철학·정치학·경제학의 머리 글자) 과정 학사 출신이다. 경제 시사 주간지 <비즈니스 위크>에 의하면, 그는 영국 외교관의 아들로 스코틀랜드 지역 에든버러에서 태어났고, 미국 피츠버그에 뿌리를 둔 금융제국 멜런 가문이 그의 먼 사촌이라 한다.

1957년생인 멜런은 대학을 졸업한 직후인 1978년 만 21세에 GT 매니지먼트의 자산운용 매니저로 일본 금융 시장을 공략했고, 1979년에는 6억 달러(7천2백억원 상당) 규모에 이르는 펀드를 운용했다. 당시 그에게 자산을 맡긴 투자자들은 캐나다의 연기금들과 제너럴 일렉트릭 등 미국의 거대 기업들이었다. 그는 1983년과 1984년 미국의 금융 잡지 <파이낸셜 월드 매거진>에 의해 미국의 10대 투자 매니저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고, 1986년에 그가 운용한 필리핀 재개발기금은 세계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투자신탁상품으로 꼽혔다.


멜런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1994년 러시아에 대한 투자였다. 1990년 리젠트 퍼시픽 그룹(아이리젠트 그룹의 전신)을 세운 그는 당시 러시아를 방문해 민영화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 홍콩으로 전문을 보내 2백만 달러를 송금 받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6개월간 그는 러시아 시장에 6억 달러를 투입하는 무모함을 보였다. 이때 그가 운용한 화이트 타이거 펀드는 1년 만에 340% 수익률을 올리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그는 1996년 영국의 유서 깊은 투자 은행 함브로스를 인수해국제 금융 시장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19세기 중반에 설립된 이 투자 은행을 분사(分社)하여 주가 상승에 따른 반사 이익을 노린그는 결국 복잡한 소유권 분쟁을 거치며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는 데 실패했으나, 그 해 6월 리젠트 퍼시픽 그룹을 홍콩 시장에 상장해 5천8백만 달러를 거두어들이는 수완을 발휘했다.

<비즈니스 위크>에 따르면, 멜런의 친구와 동료 들은 그가 기업가적인 자세와 세일즈맨적인 말솜씨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GT 매니지먼트 시절 동료였던 한 펀드매니저는 뭐든지 다 팔 수 있는 인물이라고 그를 치켜세웠다.

멜런에게는 오랫동안 의지해온 에버링턴(41) 이라는 친구가 있다. 현재 아이리젠트 그룹의 전무이사인 에버링턴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항공학을 전공한 인물인데, 멜런의 아이디어를 검토하는 일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1982년 GT 매니지먼트의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에서 하향적 투자 스타일을 배우면서 만나게 된 이들 두 사람은 개개의 종목에 대한 관심보다는 한 나라에 대한 자본의 흐름을 파악해 그곳에 크게 베팅하는 투자 방식을 선호해 왔다. 1985년 플라자 협약의 결과로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아시아 주식 시장에 붐이 형성될 때 그들은 필리핀 장거리전화회사 주식을 사들여 원금 대비 50배 이윤을 남기기도 했다.

그들은 1994년 러시아에서도 규모가 크고 유동성이 좋은 증권들을 '사재기'했다. 미국 거대 투자회사(US Global Investors) 회장인 프랭크 홈스는 이들 두 사람을 놓고 "그들은 여기저기에 가서 투기를 벌이는 뻔뻔스러움을 지녔다"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멜런이 항상 승승장구했던 것만은 아니다. 리젠트 퍼시픽은 태국 방콕은행 지분에 간접 투자를 했다가 1997년에만 1천1백만 달러 손해본 일이 있고, 러시아의 가스 재벌인 가즈프롬의 지분을 사기 위해 끈질기게 달라붙었으나 결국 실패한 경험도 갖고 있다. 또한 1998년 러시아의 채무 불이행 사태로 러시아에 대한 리젠트 퍼시픽 그룹의 투자는 엄청난 손실을 남겼다.


1998년 이후 한국 시장 집중 공략

사진설명 휴우증 : 멜런 회장에게 엄청난 이익을 남겨주었던 리젠트 증원(오른쪽)은 주가 조작 사건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다른 계열사도 붕괴 직전 상태로 내돌렸다.

이렇게 산전수전을 겪은 그가 1998년 이래 매달린 곳이 바로 한국 시장이다. 올해 초 홍콩 금융정보통신사와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그는 1998년 3월 이번 주가 조작 사건의 관련자로 구속된 고창곤 전 리젠트 증권 사장의 권유로 당시 대유증권을 인수했다. 멜런은 대유증권을 인수한 후 직원 3분의 1을 해고하는 구조 조정을 단행했고, 이후 이 증권사는 1999년 회계 상반기(3월부터 9월)에만 5천8백만 달러 순익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주가는 6배가 뛰어올랐다. 1999년 상반기 리젠트 퍼시픽 그룹이 기록한 이익의 3분의 2가 한국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에 그는 즐거워했다. 리젠트 증권은 대우 채권을 사지 않은 유일한 금융사였다며 자랑스러워했고, 한국의 인터넷 거래 시장이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두번째 규모라고 보고 인터넷 뱅킹을 준비하고 있었다. 리젠트 퍼시픽 그룹이 아이리젠트로 개명한 이유가 바로 코리아온라인으로 상징되는 이었고, 그가 영국 시장에 '빅세이브닷컴' 상장을 추진하면서 자신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들었던 것도 바로 코리아온라인에 대한 45% 투자였다.

흥미로운 것은 금융정보통신사와의 인터뷰 말미에 '모든 계란을 한국 바구니에 던져 놓은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그는 한국에서 이익이 많이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한국 시장에서 자신들이 성공한 덕분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결국 한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이번의 주가 조작 혐의로 멜런은 평생에 쌓아올린 재산과 명성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는 재기 불능의 어려운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