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시녀로 전락하는 신경제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5.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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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 ‘총선용’ 조세·부동산·산업 정책 남발
경제 정책이 선거 전략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정책이 정치 논리에 흔들리는 모습은 조세·부동산·산업 정책 등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민자당의 최근 정책들은 생활 개혁이나 민생 개혁 과제 등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 표를 의식한 총선용이라는 것이 당직자의 말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런 당측의 정치 논리가 경제 정책의 일관성 유지에 주안점을 둔 정부측 경제 논리와 맞부닥치면 요란한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당정 간에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정점으로 마찰을 빚은 세법개정안은 9월13일 일단락됐지만 매우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겉모양은 정부안이 훼손되지 않아 내각이 판정승을 거둔 셈이었지만, 당의 체면 세우기는 세금 깎아주기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96∼97년 2년간 소득세·법인세·양도소득세 경감액은 1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법인세율 인하(2% 포인트)는 재정 수입과 경기 동향 등을 고려해 정책 실무자들이 완강히 저항하던 사안이었다. 또 소득세율은 최고 34%나 인하됐다고 하지만 94년 세법 개정 때 인하하기로 결정한 바 있어 민자당이 생색낼 여지가 줄어든다. 그런데 당초 인하 계획을 감안할 때 이번 당정 합의 결과는 연간 소득 4천만원 이하 계층의 분노를 살 만하다. 연간 소득 4천만원을 분기점으로 그 이하까지는 당초 인하분과 변동이 없고 그 이상부터 소득이 많을수록 경감액이 커지기 때문이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원래 소득 크기가 아닌 원천 별로 과세되는 데서 오는 소득세제의 불공평성을 시정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민자당은 개선의 폭을 또다시 좁혀 놓았다. 또한 고소득 납세자에게는 종합과세를 피하고 분리과세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부여하면서도, 중간·저소득 계층에 대해서는 분리과세에 비해 종합과세가 유리한데도 종합과세를 선택할 수 없게 했다. 민자당이 따낸 전과들은 한마디로 부자일수록 유리해 조세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윤건영 교수(연세대·경제학)는 “당정 간의 갑론을박과는 별도로 이미 금융실명제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명이 합법이라는 유권해석은 실명제를 왜 실시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낳고 있고, 금융실명제 완결판이라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도 속은 그리 개혁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과세 대상이 극소수다. 기준 금액을 4천만원(부부 합산)으로 올려 잡음으로써 과세 대상은 3만1천5백명 선에 그칠 것으로 추산된다(재정경제원은 올해 초 대상자가 8만~10만명이 아닌 3만명 수준임을 알고 있었으나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민자당 주장의 반박 근거로 9월11일 추산 내용을 내놓았다). 최 광 조세연구원장은 이 숫자가 더 줄어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종합과세 대상자들이 세금을 회피하려 하고 있고 그 방법 또한 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3만명으로 잡더라도 만 20세 이상 인구의 0.1%에 영향을 미칠 종합과세에 민자당이 왜 그리도 집착했느냐고 의아해 하는 경제학자가 적지 않다. 종합과세를 하더라도 세금이 더 늘어나는 계층은 사업소득이 없는 경우 금융소득이 무려 1억9백20만원. 사업소득이 2억원 정도 있는 경우는 금융소득 1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이런 최상류층을 민자당은 중산층으로 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종합과세를 둘러싼 당정 마찰을 촌극이라고 평가 절하하는 경제 전문가도 없지 않다.

득표 위해 탈세까지 봐줄 것인가

내각 스스로가 정치 논리에 굴복 또는 영합하는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재정경제원은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자 범위를 연 매출액 3천6백만원에서 4천8백만원으로 높이고, 1억5천만원까지는 새로 간이 과세제도를 도입했다. 간이 과세자는 사실상 과세 특례자와 마찬가지로 연 매출액이 1억5천만원까지는 영수증도 필요없게 된 셈이다. 이것은 조세 당국 스스로 세 원리를 무시한 것이다. 근로소득자와 사업소득자간 세부담 형평을 꾀하고 세금 탈루를 없애기 위해 과세특례 제도는 없애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의 정부 입장이었다. 중산층 표 끌어모으기 논리에 이런 조세 원칙이 일거에 뒤집힌 것이다.

중소기업에 2년 동안 세무조사를 면제한다는 방침도 선거철이 아니면 나오기 어려운 것으로, 민자당으로부터 ‘행정부가 최근 들어 가장 잘한 정책’으로 칭송받았다. 국세청이 9월14일 발표한 ‘중소기업 및 경영 애로 기업 세정지원종합대책’에 따르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부가가치세 경정조사·법인세 실지조사 등 모든 세무조사를 받지 않는다. 이건춘 직세국장은 “세정 지원으로 전체 3백46만 사업자 가운데 10~15%가 혜택을 받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수혜 계층이 상당히 많을 이 정책에 대해 정부는 중소기업의 고질적 자금난을 덜어주려는 의도라고 설명하지만 ‘표를 위해서는 탈루까지 봐주겠다는 것이냐’는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9월7일 정보통신부가 통신사업자 선정을 올 12월에서 내년 6월로 연기한 것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국내 통신사업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 일반 국민의 통신 편익을 증진한다는 목표가 큰 차질을 빚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부는 올 7월 통신사업 경쟁 체제를 조기에 구축하려고 시내·외 전화와 저궤도 통신사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통신사업에 신규 사업자를 허가하고, 96년에는 시내 전화를 뺀 모든 통신사업을 개방해 전면적인 경쟁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러던 정보통신부가 돌연 사업자 선정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밝힌 이유는, 사업 참여 희망 기업에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희망 기업들은 빨리 선정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며, 불필요한 소모전이 확산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정치권의 개입도 노골화할 것이다. 이미 중소기업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개인휴대 통신 사업권을 우선 배정하도록 요청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통신사업 연기 건은 선정 과정에서 불거질 특혜 시비가 선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리라는 정치적 고려가 개입했다고 볼 수도 있다. 공기업 민영화 정책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와 비슷한 정치 논리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선거철이 되면 선심 정책으로 세금 감면과 함께 빠지지 않는 것이 부동산 관련 정책이다. 종합토지세 과세를 완화하고 토지거래 신고 구역을 해제하겠다는 방침은 부동산 정책이 정치 논리에 밀린 결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신경제 5개년계획에서 내년까지 토지에 대한 과표를 공시지가 수준으로 백% 현실화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총선이 다가오자 이런 틀은 과표를 현실화해도 세율을 낮춰 세 부담을 줄이는 것으로 변형되었다. 건설교통부의 수도권 신도시 추가 개발도 정치 논리로 해석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수도권의 기능을 분산할 거점 도시로 구상되었다는 이 신도시가 타당성 면에서 많은 지지를 받더라도, 선거를 앞두고 터져 나올 개발 공약들과 함께 부동산 투기 재연이라는 악수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철도청 공사화 철회

최근 통일 후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어 철도청 공사화를 철회한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도 등장했다. 철도청 공사화는 이미 6년 전 정부가 법으로 약속한 철도 쇄신책 가운데 하나다. 그동안 기획단 같은 추진 조직을 만들고 9월 초에 시험 운영을 하려고 했으며, 민간 연구소에 조직 체계 연구를 의뢰할 정도로 공들인 사업을 공사화 3개월을 앞두고 별안간 연기한 것은 당장 철도청 종사원들의 표를 의식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26개 노선 중 흑자 노선은 3개에 불과하고, 역의 절반은 연간 수입이 역무원 인건비도 안되며, 50세가 넘은 직원이 25%나 되는 철도청의 경영 악화는 해결이 난망한 상태다.

이번 국회의 96년도 예산 심의도 어느 때보다 정치적 입김이 많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미 관변 단체 지원 방침이 수상쩍다는 의심을 받았으며, 공무원과 군인 처우 개선도 액면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 분위기다. 표가 될 만한 모든 부문에서 민자당은 예산 공략을 하려 들 터여서 나눠먹기식 편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민자당은 종합과세의 예외를 늘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정당이다. 이들의 최대 목표는 선거에서 승리하는 일이다. 경제 정책에 과도하게 정치 논리가 개입되는 것은 경제를 뒷걸음치게 할 뿐이다. 여기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결국 ‘표’로 나타날 국민의 현명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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