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혁신, 이제는 ‘근무 파괴’까지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5.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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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력 높이려 탄력 근로시간제·토요 격주 휴무제 등 채택 늘어
한국아이비엠의 모빌 오피스는 컴퓨터의 대명사 IBM이 전세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경영 혁신의 일환이다. 93년‘경영의 달인’ 루이스 거스너 회장을 새 사령탑으로 맞이한 공룡 IBM은 추락한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 3단계 경영 혁신안을 짰다. 모빌 오피스는 첫단계 경영혁신안인 리스트럭처링(사업구조 개편)의 한 갈래이다.

요즘 세계의 기업 추세에서 신경영과 경영 혁신을 거론하지 않는 기업이 없을 지경이지만, IBM이 신경영의 실험 회사로 불릴 정도로 거대하고 파격적인 혁신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이 회사가 처한 사정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IBM 사람들 스스로가 점잖게 ‘조정기’라고 부르는 86∼92년은 최악의 시기였다. 80년대 말 세계의 IBM 직원은 41만명에 달했으나 현재는 22만명으로 줄었다. 엄청난 정리 해고가 단행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93년에는 모든 이익이 해고자에게 퇴직금을 주는 데 쓰일 정도였다.

변형 근로시간제 새 논란거리로

경영 혁신은 기업에게는 불가피하지만 개인에게는 다분히 위협적일 수도 있다. 고용 안정성은 흔들리고 있고 직급 등의 인사 체계가 전면 재구축되고 있으며, 모빌 오피스에서 보듯 전통적인 근무 환경도 ‘파괴’되고 있다. 근로자에 따라 이런 환경 조성은 피곤한 구조라고 여길 수도 있고, 반면 환영해 마지 않는 근로자도 있을 것이다. 주로 빡빡하고 정해진 구조에 익숙한 40대 이후 근로자들은 뭔가 불안정해 보이는 이런 구조 개편들을 내켜 하지 않지만, 자율과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20,30대는 반기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영 혁신 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항상 핵심 주제였다. 기업에게는 결국 인력의 생산성 제고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2∼3년 사이 부쩍 늘고 있는 격주 또는 매주 토요 휴무제, 출퇴근 자유제, 탄력적 근로시간제, 재택 근무제, 변형 근무 시간제 등은 근로 시간과 공간의 다양화 논의가 현실화한 것이다. 이 제도들은 각기 조금씩 다르지만, 경직적이고 획일적인 인사 관리를 배격한 것이 공통점이다.

삼성그룹의 ‘7·4제’는 출퇴근 시간을 경영자가 앞당겨 오후 시간을 활용하게 한다는 점 외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이에 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매일의 시작과 끝을 근로자 개인의 결정에 따라 조정하는 개방적인 근무 형태이다. 이 제도의 장점으로는 심리적 압박감을 제거해 창의성을 높이고 업무 효율을 증진시키는 데 있다는 점이 우선 꼽힌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한국에서 LG그룹과 코오롱그룹의 일부 회사, 메디슨 같은 중소기업과 연구소에서 실시되고 있는데, 대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전후를 핵심 시간대로 설정하고 있다. 전면적으로 풀어놓을 경우 업무 흐름이나 정보 교환에 장애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듀폰은 아예 근무 시간을 파괴하는 용단을 내리기도 했다. 탄력적 근무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24시간 선택 근무제’를 채택한 것이다. 근로자가 하루 24시간 중 하루 8시간, 주 40시간만 맞추면 된다.

토요 격주 휴무제는 주 5일 근무제(토요 휴무제)의 중간 지점인 셈인데, 선경과 한화그룹, 연구기관 등이 처음 도입해 점차 다른 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재택 근무는 시행하는 회사도 적지만 성과도 신통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STM·동양맥주·한국듀폰 같은 회사들이 재택 근무자를 두었으나 최근에는 거의 회사 출근으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리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직원에 대해 뭔가 개운치 않아 하는 문화적 요인과, 결국 회사를 들락거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변형 근로시간제는 최근 노동계와 경총 같은 경영자 집단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사안이다. 정부가 ‘중소사업자 구조 개선을 위한 특별법’을 추진하면서 근로자 파견제·정리 해고제와 함께 변형 근무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변형 근로시간제는 1주·1개월·3개월 단위로 법정 근로 시간(44시간)의 범위 안에서 근로 시간을 업무가 바쁜가 한가한가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제도다. 바쁠 때는 집중적으로 일하고 바쁘지 않을 때는 적게 일하거나 휴일로 쓰는 것이다. 얼핏 합리적이고 근로자에게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도 노동계가 반대하는 것은 사용자측의 ‘전과’ 때문이다. 80년에 도입된 이 제도를 사용자측이 남용해 근로자의 건강을 해치고 실질 임금 혜택이 줄어드는 폐해가 도드라지자 87년에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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