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컨설팅 업계 빛내는 한국인 ‘파트너’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9.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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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일류 회사에 한국인 ‘경영 파트너’ 줄이어 탄생…MBA 받고, 1000 대 1 경쟁 뚫어
99년 6월2일은 채수일 부사장(36)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이 날 그는 세계적 컨설팅 전문 회사인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 서울 사무소의 파트너 겸 부사장이 되었다. 회사가 주는 대로 돈을 받던 처지에서, 이제 자기 지분을 갖고 회사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경영자 반열에 오른 것이다.

세계 35개국 46개 BCG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2천5백여 컨설턴트와 2백80여 파트너. 채부사장은 이제 세계 어디를 가도 BCG 사무소의 ‘최고’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 미국 보스턴 시에 있는 BCG 본사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세계적 컨설팅 회사(기업·은행 등의 부탁을 받고 구조 조정이나 전략 사업·시장 전망 등을 조사·연구해서 자문에 응하는 회사)들은 대개 본사·지사 개념 없이 ‘글로벌 파트너(Global Partner)’들이 이끌어가고 있다.

오랫동안 꾸어온 꿈을 이룬 채부사장은 숱한 땀으로 얼룩진 시간들을 반추해 본다. 93년 컨설턴트로 BCG에 처음 입사해 94년 한국사무소로 온 뒤, 지금까지 평일에 집에서 저녁을 먹은 적이 몇 번이던가. 정확한 숫자는 헤아릴 수 없지만, 열 번이 채 안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보통 밤 10∼11시 귀가. 일이 몰릴 때는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입사한 뒤 4년여 동안은 토·일 요일을 휴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파트너 꿈 이루려 ‘휴일 반납’ 밥먹듯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일부러 늦게 아이를 가져 이제 겨우 돌 지난 딸이 있을 뿐이다. 모두 일, 일 때문이었다. 그래도 가정에 별 탈이 없었던 것은 불만 없이 동행해준 아내 덕분이다. 채부사장은 “BCG라는 회사에 들어온 이상 파트너가 되려는 것은 나만의 꿈이 아니었다. 우리 부부의 공동 목표였다. 처음부터 아내의 동의를 얻어 시작한 일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컨설팅 회사에서 파트너가 된 사람치고 채부사장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은 이는 없다. 밤낮 없이 일하고, 휴일을 반납해 가며 수 년간 일만 했다는 그의 체험담은 파트너가 되는 일이 얼마나 험한지 짐작케 한다.

매킨지·BCG·베인 …. 어떤 매스컴도 그 이름 앞에 ‘초일류’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 인색하지 않을 만큼 세계적 권위를 지닌 경영 컨설팅 회사들의 이름이다. 그같은 조직에서 최고 경영자인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거의 꿈 같은 일이다. 하버드·스탠퍼드·펜실베이니아 등 미국 굴지의 명문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은 고급 두뇌들도 100 대 1에 가까운 경쟁을 뚫어야 입사할 수 있고, 그 중에서도 10 명 가운데 1 명꼴로 오르는 영광의 자리인 것이다.

더구나 한국인 신분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 기업의 파트너가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에 비유할 만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그 별을 따는 한국인이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베인의 박철준씨(36)와 매킨지의 김용성(38)·최정규(33) 씨가 파트너가 되었고, 올해 초에는 이재현(35)·이병남(36) 씨가 BCG의 파트너로 승진했다.

세계적 컨설팅 회사들은 파트너 후보들을 승진 심사할 때 대개 ‘360° 평가’를 한다. 상사뿐만 아니라 함께 근무하는 동료·부하 들의 의견까지 모두 취합해, 객관성·공정성을 최대한 담보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세계 최고 경력의 파트너 10∼20명으로 구성된 승진심사위원회가 면접과 각종 평가를 거듭해 가며 후보들의 파트너 자격을 가늠한다. 이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파트너가 되기 때문에, 일단 승진하면 글로벌 파트너로서 전세계 어디서나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능력 없으면 회사 떠나라” 살벌한 생존 경쟁

절차가 까다로운 것은 똑같지만, 결정 방식은 회사 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매킨지가 심사위원들의 토론을 거쳐 전원합의제로 파트너를 뽑는데 반해, BCG는 기명 투표를 통해 90%가 넘는 회원의 찬성을 통과해야 한다.

매킨지 사의 최연소 한국인 파트너인 최정규씨. 그는 최연소 기록뿐만 아니라, 93년 12월에 ‘어소시에이트’(BCG의 컨설턴트 단계에 해당)로 입사해 98년 12월에 파트너가 됨으로써 ‘시스템이 허용하는 최단 기간’에 고지에 오르는 기록을 남겼다. 어소시에이트로 2년, ‘프로젝트 매니저’와 ‘시니어 프로젝트 매니저’로 각각 1년반씩, 합해서 5년 만에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매킨지의 인사 원칙은 얼핏 간단하게 들린다. ‘Up or Out!’ 즉 부단히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지 못하는 직원은 회사를 떠나라는 것이다. 회사가 요구하는 능력은 대략 △문제 해결 능력 △팀워크 정신 △의사 소통 능력 △인간적 성숙도 등이다. 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팀워크 정신.

우선 매킨지 직원은 정보를 입수하면 이를 즉시 회사 컴퓨터에 입력해야 한다. 전세계를 인트라넷으로 연결한 이 지식 창고에서 정보 하나하나가 모두 데이터 베이스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매킨지 직원이라면 누가 어떤 도움을 청해 와도 그에게 적극 협조해야 한다. 최씨는 “매킨지에서는 절대로 혼자 잘난 사람이 성공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지식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매킨지의 철칙이다.
인재 활용하는 선진국 기업 문화 배워야

매킨지 직원들이 행동 강령으로 삼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고객의 이익은 회사의 이익에 우선하며, 개인의 이익은 맨 나중’이라는 것이다. ‘고객 지상주의’인 셈이다. 가령 고객이 쓸 데 없는 분야의 컨설팅을 원하는데도 매킨지의 매출을 늘리기 위해 이를 그대로 진행할 경우, 그 사실이 드러난 직원은 더 회사를 다닐 수 없다. 둘째가 ‘인재를 유치하고 그의 능력을 계발·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매킨지는 우수한 인재라고 판단되면 당장 맡길 일이 없어도 선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인재는 결국 일을 만들어낸다는 판단에서다.

BCG 역시 매킨지와 비슷한 두 가지 원칙을 강조한다. ‘고객 우선’과 ‘개인에 대한 존중’이 그것인데, BCG는 이를 ‘큰 가치(Big Value)’라고 부르며, 직원들이 실천에 옮기지 않을 수 없도록 근무 환경을 조성한다.

최단기간에 파트너가 되었지만 최정규씨도 개인적으로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우선 매킨지는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는 자율 근무 방식을 택하고 있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복잡한 과제들을 윗사람의 지시 없이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부담이 컸던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도 컸다. 미국인들과 복잡한 사업 문제를 영어로 대화하며 풀어가는 일은,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MBA를 받은 그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서울 사무소의 컨설턴트 90명 중 60명이 한국인이지만, 그가 입사하던 때는 70% 이상이 외국인이었다. 한국인 고객들은 똑같은 경력을 지녔는데도 외국인 컨설턴트의 의견을 더 존중했다. 컨설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고객들은 일껏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컨설턴트들을 ‘부려먹는’ 법을 잘 몰랐다.

컨설턴트는 운동 선수에게 필요한 트레이너 같은 존재인데, 종종 고용인들은 그가 젊다는 선입관 때문에 함께 일하는 것을 못미더워할 때가 있었다. 또 같은 조직 안에서도 한국 문화나 한국인 생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동료들과 일하면서 손발이 잘 맞지 않을 때가 많았다.

컨설팅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인들을 최정규씨만 많이 만난 것은 아니다. IMF 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는 한마디로 ‘무엇 때문에 돈 주어 가며 컨설팅을 하느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더구나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이 거래 기업들의 정보를 해외로 유출한다는 근거 없는 풍문에도 시달려야 했다. BCG의 이병남 부사장은 단지 외국계 회사라는 이유로 그같은 오해를 받아야 했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 나라 기업으로 하여금 그 나라 안에서 적절한 가치를 갖게 해주자는 것이 컨설팅이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느 누가 컨설팅을 받으려 하겠는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BCG가 기밀을 유출했다는 이유로 말썽이 난 예는 없다.”

97년 잇단 대기업 부도와 외환 위기,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된 IMF 체제는 타성에 젖어 있던 한국의 기업 풍토에 일대 경종을 울렸다. 기업들은 뒤늦게 유능한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경영 컨설팅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고, 그 결과 컨설팅 수요는 크게 늘고 있다.

역경을 뚫고 세계적 컨설팅 회사의 주역으로 우뚝 선 파트너들. 그들의 성공담보다 더 관심 있게 보아야 할 대목은, 일한 만큼 기회도 주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의 인재 활용 방식이다. 물론 한국의 기업들도 ‘인재 존중’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딴판인 경우가 많다. 바로 그 차이가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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