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잡는 참여연대?
  • 고재열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0.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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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여세 물리라며 끈질긴 싸움…“경영권 승계에 제동 거는 것이 목표”
불도그 참여연대가 다시 삼성을 물었다. 그동안 재벌 개혁의 구체적 대상으로 삼성그룹을 지목하고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온 참여연대는 11월21일 ‘재벌 변칙증여 심판 국민행동’ 선포식을 갖고 삼성 이재용씨의 탈세 혐의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다. 참여연대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이재용씨가 지난해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취득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2월 삼성SDS 이사회는 1년 후 1주당 7천1백50원으로 신주 3백21만6천7백38주를 인수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부사채(Bond with Warrant : 발행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일정한 가격으로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 2백30만주(주당 채권 가격은 만원, 총 2백30억원)를 발행했다.이 주식들은 이후 몇 가지 통로를 통해 이재용씨 등의 손으로 넘어갔다. 참여연대는 인수 가격인 7천1백50원이 당시 삼성SDS의 시중 가격(약 5만8천5백원)보다 턱없이 낮다며, 이건희 회장과 특수 관계(아들)인 이재용씨가 부당 이득을 취했다고 보고 증여세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4월26일과 5월17일 두 차례 이 내용을 관련 증거 자료와 함께 국세청에 제보하고, 이재용씨를 비롯한 이회장의 자녀들과 삼성 간부에게 증여세 7백18억원과 가산세 2백12억원을 추징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나도록 국세청은 ‘조사중’이라며 뚜렷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국세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 윤종훈 회계사는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와 자신이 관리하는 <돈세상>(www. donsesang.com) 사이트에 안정남 국세청장의 결단을 요구하는 편지를 11월22일부터 2주 동안 연속으로 올렸다. 그는 또 전직 국세청 고위 간부 출신인 황재성(삼성전자) 신석정(삼성물산) 박래훈(삼성중공업) 박병일(삼성정밀화학) 씨 등이 삼성그룹 사외이사로 재직하는 사실도 밝혀 국세청의 아픈 곳을 찔렀다.

참여연대가 이처럼 삼성을 상대로 전력 투구하는 이유는 이 사건이 단순 탈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이번 기회에 이재용씨가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지배권을 확보하게 되는 전과정을 다시 재검토해 경영권 세습에 대해 적극 문제 제기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삼성은 지금까지 세법의 허점을 찾아내 절묘한 방법으로 상속세를 절감했다. 세법학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상속 노하우를 다른 기업들이 모방하면 세법이나 상법이 뒤따라 개정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였다. 공익 재단에 대한 주식 출연을 5% 이내로 제한한다는 조항, 비상장 회사의 주식을 싸게 넘기고 상장해서 이익을 남기는 것에 과세한다는 조항,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 등 신종 사채 저가 발급을 증여로 보고 과세한다는 조항은 모두 삼성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고 이병철 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재산을 넘기면서 낸 상속세는 1백50억원 정도로,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었다. 삼성의 상속 노하우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3세인 이재용씨에게 넘어갈 때에는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재용씨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으며 낸 증여세는 16억원에 불과했다. 1995년 12월 이재용씨는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억8천만원을 증여받고 증여세 16억원을 냈다. 남은 돈은 44억8천만원. 5년이 지난 지금 이 돈은 수조원대의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났다.

세법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재용씨의 상속 과정은 대략 4단계의 진화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이재용씨는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고 온라인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자금력을 갖추게 되었다.
삼성이 처음 이용한 방법은 비상장 주식을 구입해서 상장 후 파는 비교적 단순한 방법이었다. 1995년 이재용씨는 주당 1만9천원에 삼성에스원 주식 12만1천8백주(23억1천만원)를 사서 상장 후 3백75억원에 팔았다. 같은 시기에 매입했던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47만주(19억원)는 역시 상장 후 2백30억원에 매각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6백억원 정도의 자금력을 확보했다.

2기에 이용한 방식은 사모(私慕) 전환사채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사모 사채와 비상장 주식이 결합한 형태인 사모 전환사채는 전환 가격을 낮게 책정할 경우 막대한 시세 차익을 남길 수 있었다. 1996년 3월 이재용씨는 제일기획 사모 전환사채 18억원어치를 매입해 상장 후 주당 5만원에 30만주를 팔아 1백32억원을 남겼다. 1996년 12월에는 중앙개발(현 에버랜드)의 사모 전환사채 96억2천만원어치를 매입해 62.5% 지분을 확보했다. 1997년 3월에는 삼성전자 사모 전환사채 4백50억원어치를 매입해 0.78% 지분을 보유하게 되었다.

3기에는 지배 구조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썼다. 핵심은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의 1~2대 주주인 삼성생명. 삼성은, 이씨가 최대 주주인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지분을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되게 함으로써 사실상 이씨가 전체 삼성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도록 ‘요술’을 부린 것이다. 1998년 에버랜드는 주당 9천원에 삼성생명 주식을 매입해 20.7% 지분을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되었다(얼마 후 이건희 회장이 사재 출연할 때 삼성은 이 주식의 가격을 70만원으로 책정했다). 이로써 삼성은 ‘이재용 후계 체제’구축을 사실상 완결할 수 있었다.

4기에는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이용했다. 1999년 이재용씨는 이 방법으로 삼성 SDS 지분 32.8%를 확보했다. 그런데 새롭게 도입한 이 방법에 빈틈이 발견되었다. 신주 인수 가격을 너무 낮게 책정한 것이 참여연대에 포착된 것이다.

삼성측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인수가 7천1백50원을 산정할 때 삼일회계법인을 통해 적정가를 산출하고 여기에 10%를 할증해서 사채를 발급했다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시장가가 없는 경우에만 적정가를 산정하는 것인데 삼성SDS는 이미 시장가가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적정가 산출은 무의미하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거래량과 거래 가격이 시장가를 산정할 만한 수준이 못되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서도 참여연대는 당시 삼성SDS 주식이 5만원 이상에 거래되고 있었다는 주식거래사이트의 일일가격표와 신문 기사 그리고 서울고등법원 민사부의 판결문을 증거로 제시하며 이를 재반박했다.
삼성SDS는 이재용씨의 변칙 증여 중에서 참여연대가 유일하게 꼬리를 잡은 사건이었다. 이전의 증여에 대해서는 비상장 주식의 시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헐값에 팔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삼성SDS의 경우는 인터넷 장외 시장이 활성화하는 시점과 맞물려 거래 사실과 거래 가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이재용씨의 재산 축적 과정에 대한 삼성측의 일관된 입장은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을지 모르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삼성SDS의 경우를 통해서 이재용씨의 증여세 탈세 규모까지 ‘법적으로’ 계산해 냈다. 윤종훈 회계사는 “삼성SDS에 과세가 이루어진다면 삼성의 변칙 승계 과정에 대해 제기한 다른 소송들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궁극적으로 이건희 회장에게서 이재용씨로 넘어가는 경영권 승계에 제동을 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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