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지옥철을 웰빙 지하철로!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5.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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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차 안 ‘공기의 질’ 크게 높이겠다”
[이 법만은 바꾸겠다]

조정식 의원의 실내공기질관리법

“2001년 1~4호선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1,000ppm을 조금 넘었지만, 2003년에는 2,000~3,000ppm씩 늘어났다. 공기의 질 관리를 서두르지 않으면 승객들은 이산화탄소를 마실 수밖에 없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열린우리당 조정식 의원(경기 시흥 을)은 지난해 국정감사를 준비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하철 승강장이나 환승 통로, 기차역 등 사람들이 길어야 10~20분 대기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공기 오염도를 주기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하도록 법에 정해져 있고, 그에 따라 가끔 오염도가 지나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는데, 정작 승객들이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은 지하철 안이나 기차 내부의 공기 질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아무런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상으로 다니는 기차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하철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된 조의원은 우선 지하철 내부의 공기 오염도를 측정한 자료가 있는지부터 알아 보았다. 환경부나 서울시 등 관련 기관에서는 즉각 그런 자료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데 마침 서울지하철공사에 2001년과 2003년 자체 조사한 자료가 있었다.

두통·고혈압·구토 증상 겪어

조사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지하철 1~4호선의 실내 공기를 분석한 결과 이산화탄소(CO2) 농도가 시간대를 불문하고 인체에 유해한 수준인 1,000ppm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출퇴근 시간대를 집중 조사한 2003년 조사에서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기준치의 3배인 최고 3,099ppm까지 검출되었다(오른쪽 표 참조). 전문가들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공기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1,000ppm을 넘는 곳에서 오래 호흡하게 되면 두통과 권태, 고혈압과 구토 증상을 겪게 되고, 노약자나 어린아이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증상을 겪을 수 있다. 콩나물 시루 같은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간혹 어지럼증과 호흡 곤란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상황이 이런데도 지하철 내부의 공기 질을 개선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현행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 공기질 관리법’에 따르면, 국민 건강을 위해 환기나 공기 정화 시설을 설치하고, 실내 오염도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하는 대상에는 지하철·버스·기차·비행기·배 등 각종 교통수단의 대합실과 지하도 상가, 도서관, 박물관, 병원, 실내 주차장, 그 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보육시설, 노인 전문 요양시설, 장례식장은 포함되어 있는데, 지하철 내부는 빠져 있다.

조의원은 “2001년에 조사했을 때는 1~4호선 모두 이산화탄소 농도가 1,000ppm을 조금 넘은 수준이었지만, 2년 후인 2003년 조사에서는 똑같은 구간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2~3배씩 늘어났다. 공기 질 관리를 서두르지 않으면 출퇴근 때마다 지하철 승객들은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조의원은 이 문제를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강력하게 제기한 데 이어, 지난 연말 관련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당초 조의원의 지적을 받고 ‘기술적으로 어렵다’며 발뺌에 급급하던 환경부와 서울시는 ‘현장 국감’을 표방한 조의원이 언론사 기자와 함께 직접 지하철 안을 돌아다니며 오염 수치를 조사해 들이밀자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환경부는 올해 초 지하철 내부 공기 정화 방법에 대한 용역을 전문 기관에 발주할 예정이고, 조의원은 그 결과가 나오는 대로 법안 통과를 서두를 작정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아직 자료조차 없는 부산·대구 등에서도 조사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웰빙’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오염된 공기를 마시며 출퇴근 전쟁을 치르는 직장인들에게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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