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깃발, 시청에 날릴까
  • 울산·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2.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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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장 선거/민노당 송철호 후보 박빙 선두…당선되면 진보정당 출신 첫 광역시장


울산광역시장 선거는 2강 1약 구도이다. 민주노동당(민노당) 송철호 후보와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가 선두를 달리고, 사회당 안승천 후보는 끝까지 선전을 다짐한다.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못했다.


5월22일, 서울에서 차로 6시간 걸려 도착한 울산은 수은주가 30℃를 오르내리는 한여름이었다. 거리 곳곳에는 월드컵 깃발이 나부꼈다.
월드컵을 1주일 앞둔 울산은 차분했다. 택시기사 이상현씨(56)는 “월드컵이든 지방 선거든 분위기가 뜨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정치 풍향계라고 불리는 운전기사 중에 누가 시장 후보로 나왔는지조차 모르는 이도 있었다.


5월22일 오후 2시 울산시 북구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공장. 4만명이 근무하는 현대자동차는 외국인에게 ‘현대시’로 불리는 울산의 대표 공장이다. 민노당 송철호 후보가 노동조합을 방문했다. 송후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연호가 터져 나왔다. 송후보는 점심도 거른 채 현장 방문을 계속했다. 이 날 그는 노동조합 다섯 군데를 방문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송후보는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를 10% 이상 앞서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일부에서는 송후보가 낙승한다고 점친다. 하지만 울산 현지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송후보 캠프에서조차 접전을 예상한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이재인 정치위원장은 “중앙 언론이 여론조사를 하면 평균 15% 차로 송후보가 앞선다. 하지만 선거전에 들어가면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위원장에 따르면, 송후보의 초반 상승세는 상대적으로 높은 인지도 때문이다. 송후보는 그동안 국회의원과 지방 선거 등에 네 번이나 출마했다. 이번이 4전5기인 셈이다. 반면 울산시 건설교통국장 출신인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는 정치 초년생이다. 선거전이 시작되면, 바닥에서 출발한 박후보의 인지도가 가파른 상승세를 탈 수밖에 없다.


박맹우 캠프의 김종관 사무장은 “당선 가능성만 따지면, 결국 한나라당 후보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사무장이 박맹우가 아니라 한나라당 후보를 강조한 데는 까닭이 있다. 노동자 도시이지만, 울산도 한나라당 텃밭이다. 5월21일 <한겨레> 여론조사에 따르면, 송철호 후보 개인 지지도(38.4%)는 높지만, 민노당 지지도(4%)는 형편없이 낮다. 그래서 지난 민주당 국민 경선 때, 노무현 캠프의 울산조직팀장이었던 김위경씨(49)는 “송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왔다면 당선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울산의 선거구는 중구·남구·동구·북구·울주군으로 나뉜다. 동구와 북구는 민노당 출신이 구청장을 맡을 정도로 노동자 밀집 지역이다. 동구와 북구에서 송후보가 강세를 보이지만, 문제는 중구·남구·울주군이다. 유권자 24만3천여명이 밀집한 남구는 동구와 북구를 합친 유권자(21만4천여명)보다 많다. 남구는 전통적으로 서울의 강남처럼 보수층이 두텁다. 1998년 지방 선거에서 송후보는 남구의 표차가 전체 표차로 굳어 심완구 현시장에게 석패했다. 송후보 처지에서 선거전의 관건은 남구 공략이다. 그런데 송후보의 남구 공략은 여의치 않다. 울산대 김승섭 교수는 “홍삼 게이트 때문에 심해진 반DJ 정서로 인해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가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민노당 후보 절대 지원 안한다”


민노당이 울산에 깃발을 세울지 여부는 투표율에 달려 있다. 남구에 사는 울산 노사모 대표 이상훈씨(37)는 “투표율이 저조하면 송후보는 필패한다”라고 말했다. 낮은 투표율은 송후보 지지층인 젊은 유권자의 기권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상훈씨는 울산 노사모 7백여명 가운데 90%가 송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 울산 노사모는 선거 참여 캠페인을 벌여, 송후보를 간접 지원할 방침이다.


5월23일 오전 11시 민노당 울산시지부에는 우영주 총무국장(36)만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민노당 울산시지부 김창현 위원장·송주석 사무처장 등 핵심 당직자들이 대거 송철호 후보 선거대책본부에 결합했기 때문이다. 송후보와 당내 경선 상대였던 김창현 위원장은 경선 결과에 승복한 뒤 송후보 선거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민노당의 권영길 대표까지 울산에 상주하며 총력을 쏟고 있다.


한나라당 대응도 만만치 않다. 5월22일 울산지역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박맹우 후보와 중앙당 차원의 지원책을 논의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노풍(盧風)의 진원지인 울산에서 승리를 거두어 노풍을 잠재우겠다는 전략이다.
지방 선거가 임박하면서 울산에서는 민주당이 송철호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5월22일 오후 5시 민주당 울산시지부 사무실. 당직자 4명은 화투판을 벌이고, 2명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민주당 울산시지부는 송후보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정하지 못한 채 개점 휴업 상태였다. 이일성 선거기획본부장도 “민주당이 민노당 후보를 지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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