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선택한 ‘젊은 입’ 김종민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4.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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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김종민씨, 역대 최연소 대변인 올라
청와대에 40세 대변인이 탄생했다. 하지만 최연소 대변인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한 편이다. 지난 5월17일 신임 김종민 대변인이 상근 부대변인으로 발령 받았을 때부터 이미 ‘대변인 수업’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탄핵에서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은 건강이 안 좋다며 사의를 표명한 윤태영 대변인 후임으로 일찌감치 김씨를 낙점했고, 집권 2기 내각이 들어설 때까지 수습 과정을 거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기자 시절에 노대통령과 각별한 인연

서울대 국문학과 83학번. ‘구국학생연맹’(구학련) 사건으로 감옥에 다녀온 김대변인은 내일신문 기자 시절 노대통령이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출입하면서 노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이던 노대통령은, 토론하기를 좋아하고 정국 흐름을 읽는 눈이 범상치 않은 김대변인을 가리켜 ‘김수석’이라고 부를 정도로 호감을 나타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김대변인이 <시사저널>로 옮겨 본격적으로 정치권을 출입하면서 더욱 다져졌다. 김대변인이 쓴 네댓 번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노대통령이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흔치 않은 기자다”라고 높이 평가할 정도로 신뢰가 깊어진 것. 그 사이 김대변인은 동년배인 이광재·안희정 등 노무현 캠프의 386 참모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특히 안희정씨와는 고향(충남 논산)이 같은 데다, 운동권 시절 NL(민족해방) 진영에서 함께 활동한 각별한 사이다.

하지만 정작 노대통령이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돌입했을 때는 김대변인이 이미 기자 생활을 접은 후였다. 2002년 봄, 선배의 요청을 받고 한 투자신탁회사 기획실장으로 변신했던 것. 그런데 노대통령이 당선되고 청와대에 ‘큰 그림’을 그릴 사람이 필요하다는 참모들의 추천에 따라 그는 결국 청와대 참모진에 합류했다.

정무기획에서 국정홍보, 홍보기획을 거쳐 대변인실에 이르는 동안 그는 비서관급 행정관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탄핵중인 노대통령의 심경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화제가 된 ‘춘래불사춘’ 역시 당시 홍보기획실 행정관이던 김대변인의 아이디어였다.

상근 부대변인을 거치는 동안 그를 지켜본 청와대 기자실의 반응도 일단은 호의적이었다. ‘내공이 있다’ ‘기자 출신이어서 핵심을 잡아내는 능력이 돋보인다’ 등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윤태영 전 대변인이 워낙 좋은 인상을 남겨서 그 벽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장강의 물이 흐르는 것은 뒷물이 앞물을 차고 나가기 때문”(長江後浪推前浪)이라는 전임자의 덕담을 입증하느냐 못 하느냐는 이제 김대변인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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