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마당] 노재봉·자민련·박찬종·홍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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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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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공 실세 총리 노재봉 화려한 재기 물거품

15대 총선 출마를 위해 그동안 노재봉 전 총리가 힘겹게 쌓아올린 ‘공든 탑’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파문이 6공 실세 총리였던 노재봉씨의 발목을 단단히 옭아맨 것이다. 지난 2월 “YS의 개혁은 철학도 원칙도 없다”며 민자당을 탈당한 그의 중대 결단도 자칫 헛고생으로 끝나게 될 판이다. 정해창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서동권 전 안기부장 등 다른 6공 실세들의 총선 출마도 불투명해졌다.

민자당 탈당 이후 노재봉씨는 현 정권의 심장부를 정면으로 치고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YS의 핵심 측근인 김덕룡 의원의 지역구(서울 서초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비자금 파문이 터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다음 총선에서 노씨가 김의원을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정치권은 전망했다. 현 정권의 인기가 워낙 바닥세인 데다, 김의원의 지역구에서 삼풍사건마저 터지면서 상대적으로 노씨의 인기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김의원으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차기 대권 주자로 거명되는 김의원의 정치 생명이 지역구에서 끝장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노씨는 YS의 분신인 김의원을 침몰시킴으로써 자신의 저력을 과시하고 6공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희망에 부풀었을 법하다.

그러나 상황은 한순간에 뒤집어졌다. 비자금 파문이 터져 이제 6공은 얼굴조차 못들게 됐다. 사법 처리 대상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기세등등하던 노재봉씨측은 ‘지역구는커녕 출마 여부도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라며 몸을 잔뜩 낮췄다.

비자금 정국 부채질하다 불똥 옮겨 붙은 자민련

자민련에는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강 건너 불이었다. 김종필 총재가 노씨와 정치 자금으로 얽혀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민련은 연희동에서 튄 불똥이 민자당과 국민회의로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이쪽 저쪽으로 열심히 부채질만 하면 그만이었다. 더구나 이번 파문이 총선에 미칠 영향을 계산해 보면 쾌재를 부를 만도 했다. 민자당과 국민회의가 상처를 입으면 그만큼 수도권에서 자민련 후보가 선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5·6공 출신 유력 인사들이 몰락하면 제2의 텃밭으로 눈독을 들이고 있는 대구·경북 입성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민련도 결국 비자금 파동에 휩쓸려 들고 말았다.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 김종필 총재가 연루됐다는 설이 다시 터져나온 것이다. 자민련이 노씨로부터 20억원을 받았다고 시인한 김대중 총재에 대해 “너무 구차한 변명을 한다”고 비난하자 국민회의가 발끈해 동화은행 사건을 들고나온 것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요즘 ‘정치권의 `중수부장’으로 불리는 박계동 의원이 “동화은행 수사 과정에서 김총재 계좌로 백억원 이상 입금됐다”고 밝힌 것이다. 자민련은 너무 열심히 부채질을 하다가 부채 끝에 불이 옮겨 붙은 꼴이다.

일이 커지자 자민련 안성렬 대변인은 국민회의 박지원 대변인에게 휴전을 제의하는 등 진화에 노력했다. 그러나 국민회의는 물론 민자당이나 민주당도 자민련이 어부지리를 얻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분위기이다. 더구나 검찰 일각에서는 김총재의 해외 비자금에 관한 설도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따지고 보면 노씨가 얘기한, 비자금을 모으는 오랜 정치 관행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3공 초기 4대 의혹 사건에 휘말렸던 김종필 총재라고도 할 수 있다.

박찬종·홍사덕 어깨 겯고 정치 개혁 국민운동 설파

박찬종 전 의원과 홍사덕 의원이 11월2일 고향인 진주에서 만난다. 홍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서 박씨가 축사를 하는 형식이다. 다리를 놓은 사람은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라는 홍의원의 책을 출판한 도서출판 진주성 대표인 김재철씨(48)이다. 서울대 3선개헌 반대 투쟁위원장을 지낸 김씨는, 통일민주당 부대변인으로 있다가 3당 합당에 반대해 탈당한 사람이다. 그가 YS와 결별하면서 발표한 3당 합당 반대 선언문은 당시 지역 언론들이 ‘신 시일야방성대곡’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지난 지방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진주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2위로 낙선했다.

무소속으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가 DJ가 지원한 조 순 후보에게 패한 박찬종씨. 그리고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역시 DJ를 등에 업은 조 순 후보에게 패한 뒤 김총재가 창당한 국민회의에 합류하지 않은 홍사덕 의원. 두 사람을 한자리에 모은 김씨측은 “김영삼 대통령의 텃밭인 경남에서부터 새로운 정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나름대로 3김 지역 구도에 끊임없이 도전해온 두 사람을 함께 초청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김씨는 이번 15대 총선에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김영삼 대통령에게 계속 반기를 들 예정이다.

이 날 모임에서 박씨와 홍의원은 모두 지역에 근거한 3김 구도 타파를 역설할 예정이다. 특히 박씨는 “15대 총선 때 정치 개혁 세력이 힘을 합해 정파를 초월해 자격 있는 후보를 미는 국민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태우씨의 비자금 파동 여파로 정계 개편 얘기가 실감나게 들리는 터라 이들의 움직임이 ‘친선 모임’으로만 비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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