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 ‘클릭’에서 나올까
  • 張榮熙 기자 ()
  • 승인 2000.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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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20~30대 네티즌 포섭에 열중…현실 공간 투표율이 최대 관건
인터넷은 총선에서 어떤 위력을 발휘할까.

여야의 선거전이 사이버 공간에서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물론 정치권이 지역 유세라는 재래식 선거운동에 힘을 쏟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인터넷을 활용한 현대식 선거운동이 불붙고 있는 것은 분명 새롭고도 흥미로운 현상이다.

정치권이 사이버 공간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터넷 사용자, 즉 네티즌이 천만명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총유권자의 57%나 되는 20∼30대를 모두 네티즌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젊은층을 공략하기에 인터넷만큼 효과적인 선거 수단도 없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여야의 선대위원장들이 오마이뉴스·포스닥·라이코스코리아 등이 주최한 사이버 연설회에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도 정치권이 네티즌 사로잡기에 얼마나 열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네티즌을 유혹하려면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일은 기본. 2월 초 사이버선거운동본부를 발족한 민주당은 최근까지 돈을 억대나 들여 홈페이지를 세 차례 갈아엎었다. 최근 인터넷 방송국을 개국했으며 ‘e민주’라는 사이버 캐릭터를 만드는 등 네티즌 특유의 감각에 호소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인 중앙당뿐 아니라 후보 개개인도 인터넷 사이트를 꾸리고 있다. 인터넷 검색 업체인 심마니에 따르면, 지난해 말 82개였던 정치인 홈페이지는 3월 말 현재 1백81개로 폭증했다. 다양한 이벤트를 벌여 네티즌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 민주당에 비해 한나라당·자민련·민국당은 다소 처진다.

정치권은 연신 네티즌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외화내빈이라는 비판도 많다. 인터넷 컨설팅 업체인 아이디코리아닷컴(www.idkorea. com)이 최근 민주당·한나라당·자민련·민국당의 홈페이지 내용과 쌍방향성·디자인 등을 종합 평가한 결과 모두 낙제점 수준이었다. 특히 게시판에 올린 유권자의 질문이나 의견에 응답하지 않아 양방향성에 대한 평가는 4당 모두 F학점. 인터넷의 쌍방향성, 이른바 전자 민주주의에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후보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떴다방’처럼 선거용으로 급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디자인이 조악한 것은 물론 전담 관리자가 없으니 새로운 자료가 오르지도 않는다. 홈페이지를 홍보물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물론 김민석·오세훈·김근태·맹형규·전성철·임종석·진 영 후보처럼 신경 써서 홈페이지를 만들고 잘 관리해 네티즌의 반향이 큰 사이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진 영 후보의 경우 끝까지 두고 볼 일이지만, 엄청난 돈이 드는 정당 연설회를 하지 않고 사이버 연설회에만 주력하겠다고 밝혀 관심을 끌고 있다.

인터넷 유권자 운동도 불을 뿜고 있다. 우선 총선시민연대(www.ngokorea.org). 이들의 낙천·낙선 운동에 대해 네티즌들은 서명과 게시판 활동 등으로 열렬한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여야가, 특히 민주당이 기성 언론 못지 않게 인터넷에 열성을 보이는 것도 이런 네티즌의 정치적 힘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정치 전문 사이트들의 맹활약도 돋보인다. 이마크러시(www.emocracy.co.kr)·PIB코리아(www.pibkorea.co.kr)·인터넷 한국당(www. ikorea.or.kr)·포스닥(www.posdaq.co.kr)·폴리티카(politica.intizen.com) 따위 정치 전문 사이트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네티즌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폴리티카는 네티즌이 글을 올리면 한건당 5백원씩 적립해 총선시민연대를 지원할 작정이다. 정치권이 표를 얻는 데 급급하고 있다면 이런 유권자 활동은 바른 선택을 이끌어내기 위한 대항적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인터넷이 긍정적 바람만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당과 정치 전문 사이트에는 비방과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심지어 특정 정당 혹은 특정 후보 진영으로부터 돈을 받고 과대 선전하거나 상대 진영을 비방하는 이른바 ‘사이버 알바’(아르바이트를 뜻하는 네티즌 속어) 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물론 정치꾼 네티즌을 몰아내려는 알바 축출 운동 또한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2002년 대선, 인터넷이 권력 만든다”

네티즌의 인터넷 정치는 과연 행동으로 옮겨져 정치권을 심판할 수 있을까. 폴리티카 운영자인 인티즌 조우주씨는 “네티즌들은 자기 의사를 드러내려는 욕구가 있다. 독특하고 신선한 관점도 엿보인다. 문제는 이들의 정치적 관심이 그저 논쟁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아직 기성 정치를 바꾸겠다는 조직적 기운은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당 허운나 사이버선거대책본부장은 “네티즌의 폭발적 관심은 이미 확인되었다. 민주당 사이트에서 네티즌이 평균 9분을 머무른다는 사실은 놀랍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의사가 얼마나 표로 연결될지는 미지수이다”라고 밝혔다.

지난 2월 말 인터넷 검색 업체인 야후코리아(kr.yahoo.com)와 조사기관인 아이클릭(www. eyeclick.co.kr)이 20세 이상 네티즌(1천3백12명)과 일반인(7백명)의 정치 성향을 조사한 결과는 흥미로운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속설과 달리 네티즌은 일반인에 비해 정치에 대한 관심이 훨씬 높았다. 그러나 투표를 하겠다는 일반인은 10명 가운데 7명에 가까운 반면 네티즌은 절반을 갓 넘었다. 특히 20대 네티즌의 투표 참여 의사는 더 낮았다.

그런데도 이른바 ‘e폴리틱스’라는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은 4·13 총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터넷 정치의 맹아 단계인 4·13 총선에서는 맛보기에 그친다 해도 2002년 대선에서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후보 몇 명이 격돌하는 경쟁 구조인 데다가, 무엇보다 인터넷 활용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인터넷의 가공할 위력이 증명된 바 있다. 제시 벤추라(주지사)· 존 매케인(공화당 후보) 열풍이 좋은 사례이다.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에서는 빛의 속도로 정보가 유통되는데, 그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공권력과 거대 언론이 통제할 수 없으니 관권 선거도, 일방적인 여론몰이도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한국 정치의 고질인 돈선거 폐해도 거의 없앨 수 있다.

무엇보다 쌍방향성이라는 인터넷의 특성은 대의(代議) 정치가 갖는 현실적 한계도 상당히 누그러뜨릴 수 있다. 백욱인 교수(서울산업대·사회학)는 “정보 불평등 같은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있지만, 인터넷은 참여와 연대라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새 권력이 ‘클릭’에서 나올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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