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 ‘정형근 부메랑’ 맞나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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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공천자에 정의원 포함해 ‘개혁 의지·지도력’ 의심받아
지난 1월31일 기자와 만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영남 민심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고작 한다는 짓이 차떼기냐며 한나라당은 꼴도 보기 싫다는 여론이 높지만, 그렇다고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이 얼마나 사람을 바꾸는지 두고보겠다는 유권자가 많았다.”

최대표는 열린우리당의 우세가 지속되는 것에 대해서도 낙관하고 있다. 그는 “한나라당 지지자가 많이 빠져나가기는 했지만, 대부분 부동층에 머무르고 있다. 사회심리적으로 본다면 입맛이 돌아오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이런 판단에 따라 최대표는 첫째, 사람을 많이 바꾸고 둘째, 개혁적인 프로그램을 내놓으면서 셋째,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도덕적으로 타격을 가한다면, 17대 총선에서 실망스럽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최대표의 이같은 인식은 지난 1월26일 한나라당이 부산 북·강서 갑 지역에 정형근 의원을 단수로 공천하면서 그대로 드러났다. 최대표는 정의원을 단수 공천한 데 대해 “노코멘트하겠다”라고 말을 아꼈지만, 별다른 문제 의식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대표는 그동안 정의원으로부터 “최대표와 가까운 사람들이 내가 인권을 탄압했다고 말하고 다닌다”라는 항의를 받아왔다.

하지만 당 안팎의 분위기는 최대표와 많이 다르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시대 정신이라는 잣대에서 보면 정의원은 과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인데, 당과 최대표가 이런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이 한 시대를 청산하고 진정으로 새롭게 태어나려 한다면 정의원을 공천자로, 더구나 이렇게 빨리 확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공천과 관련해 논란이 일자 정의원은 못마땅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 1월31일 그는 한나라당을 출입하는 여기자들과 점심을 하면서 “나는 불법을 저지른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무너져 가는 나라를 바로 세운 사람인데, 부당한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기자와 만나서는 “북한 핵 문제 등 정책적이고 전문적인 이야기라면 몰라도 공천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문을 닫았다. 논란에 휩싸여 보았자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공천심사위원인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은 “정의원을 단수 후보로 결정하는 과정에 다른 의견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현실적인 측면만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부산 북·강서 갑 지역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공천을 신청한 사람은 정의원이 유일하다. 정의원의 지역 기반이 워낙 튼튼해 다른 사람들이 출마할 엄두를 못냈기 때문이다. 2000년 16대 총선 때 시민단체들에 의해 ‘낙천 후보’로 지목된 정의원이 살아 남았던 것도 든든한 지역 기반 덕택이었다.

부산 북·강서 갑 지역 열린우리당 출마자인 노혜경씨는 “정의원은 35%가 넘는 조직표를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의원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인권 탄압 논란도 지역 유권자들에게는 큰 호소력이 없다는 것이다. 부산 지역의 한 언론인은 한나라당이 대안이 없어서 정의원을 단수로 공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형근 공천’ 파문은 지도부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가고 있다. 과연 전략이 있는 것이냐는 비판이 지도부를 향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관심이 쏠린 첫 번째 공천자에 정의원을 포함함으로써 한나라당이 변화하지 않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게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정의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당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라고 말했다.

윤여준 여의도연구소장은 “이제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판세를 뒤집을 수 없다. 극약 처방을 하지 않으면 총선에 이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정형근 의원도 “부산·경남에서 한나라당이 절반이나 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제1당이 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당 내에서는 최대표의 지도력에 의문을 갖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태라면 한나라당은 낙천자들의 반발이 본격화하는 시점에 지도력에 일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은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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