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와 YS의 위기 관리 스타일 비교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9.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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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김씨 위기 관리 스타일 분석/YS, 전격 경질 등 ‘깜짝 쇼’ 로 국면 반전… DJ, 원칙 고수하며 ‘지구전’에 치중
집권 이후 처음으로 김대중 정부에 큰 시련을 안겼던 고급 옷 로비 의혹 사건이 YS 정부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치권 주변 인사들 사이에서는 YS였다면 김태정 법무부장관을 곧바로 퇴진시킨 것은 물론이고, 고위직에 대한 인사를 단행함으로써 민심을 달래고 정국 주도권을 회복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왜 그럴까. 우선 ‘재임 기간에 1원도 받지 않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 YS인 만큼 금품 관련 비리 의혹에는 ‘칼로 무 자르듯’ 대처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여론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의 스타일로 미루어 볼 때 장관 한 사람을 경질함으로써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면 충분히 그 길을 택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YS에게는 인사가 만사 아니었던가.
DJ, 짜놓은 시간표대로 인사·정책 집행

그러나 DJ는 그렇지 못했다. 고급 옷 로비 의혹으로 여론이 들끓고 김태정 법무부장관 한 사람을 지키려다가 정권 전체에 부담이 되는 상황이 다가왔는데도 ‘원칙 고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조사 결과 법적 문제점이 없는 한 ‘희생양 만들기’식으로 인사를 단행하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여당에서조차 민심 수습을 위해 조기 경질론을 건의했지만 DJ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DJ가 김태정씨를 싸고 돌았던 것이 ‘비자금 사건 유보’ 조처 등에 대한 보은 차원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김씨도 DJ 비자금 사건의 전말을 소상하게 밝힌 <월간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당선자 시절 DJ를 처음 만났으며 그 전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어쨌든 DJ는 ‘김태정 파동’을 통해 위기에 처한 순간에서도 YS에 비해 원칙을 고수하는 스타일을 보여주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대통령학>이라는 저서를 낸 최평길 교수(연세대·행정학)는 “DJ는 YS에 비해 행동하기 앞서 신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우유부단하다는 평가와 때로는 음흉하다는 말까지 듣는다”라고 말했다. DJ의 이런 스타일은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YS가 깜짝 쇼 방식의 충격 요법을 즐기는 스타일이라면 DJ는 여론이 들끓어도 대증 요법을 내놓는 대신 사실 관계와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자 한다. 당연히 YS는 빠르지만 DJ는 늦다. YS 스타일은 민심을 돌리는 데 바로 약효를 발휘하지만, DJ 스타일은 다음 선거에나 가 보아야 약효를 발휘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실제로 YS가 장관을 포함해 정권 핵심부에 있는 고위직 인사를 교체한 경우를 살펴보면, 비위 사실이 알려지거나 물의를 일으켰을 때 대통령이 ‘인사’ 카드를 어떻게 써왔는지 알 수 있다. YS의 집권 초기야말로 고위직 인사 문제에 관한 한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을 정도로 수난의 연속이었다. 정세 분석과 기획에 천재적 능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알려진 전병민 정책수석이 경력 논란에 휩싸여 중도 하차하면서 시작된 인사 파행은 그 뒤 장관급 인사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YS는, 임명 직후 딸의 이화여대 편법 입학 사실이 알려진 박희태 법무부장관으로부터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박양실 보사부장관, 불법 형질 변경 의혹이 불거져 구석에 몰린 김상철 서울시장까지 한꺼번에 경질하는 방식을 택했다. 집권 초기라는 부담이 있었을 텐데도 청와대 전반의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칼을 빼들었던 것이다. 전형적인 조기 진화 방식이다.

DJ는 달랐다. 김태정 전 장관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지난해 말부터 정국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일부 장관을 교체할 것이라던 개각설이 ‘2월 개각설·3월 개각설’로 달력 넘기듯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결국 소문에 그치고 말았다. 2차 정부 조직 개편 이후 제2기 내각 형태로 개각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적어도 DJ 사전에 위기 돌파나 민심 수습 차원의 개각은 없다는 점을 입증해 보인 셈이다. 미리 짜놓은 시간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 DJ 개혁 정책을 바라보는 많은 지식인의 시각이다.

눈길을 과거로 돌려보자. 양김 모두에게 위기이자 기회였던 80년 ‘서울의 봄’ 때 YS와 DJ를 지켜본 주위 사람들은 당시 두 사람의 위기 관리 방식이 매우 대조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재야 인사였던 김대중씨는 군부 동향을 걱정했으나,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씨는 한없이 사태를 낙관했다는 것이다.

당시 두 사람을 지켜본 한 현역 국회의원은 “DJ는 YS를 ‘턱없이 태평한 사람’이라고 평가했고, YS는 DJ를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보았다”라고 말했다. 결과는 전두환씨 등 신군부의 쿠데타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결국 두 사람 모두 정치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상황 분석 능력에서 만큼은 DJ가 YS보다 한 발짝 앞섰던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보인 공통점도 있다. YS건 DJ건 간에 가장 손쉽게 선택한 카드는 무어니무어니 해도 사정이다. 불발로 그치기는 했지만, 한때 김태정 장관 유임 결정을 내리면서 청와대가 내보인 카드도 이것이었다. 한보 사건과 대선 자금 공개 문제로 임기 말을 앞두고 최대 곤경에 빠졌던 YS의 청와대도 사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야당이던 국민회의 출신 광역단체장들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명되었다. DJ 정권과 달리 검찰이 아닌 청와대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이런 방침에 의해 사정이 제대로 이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카드를 보이지 않고 슬쩍 흔드는 것만으로 공격 예봉을 무디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사정은 집권자들이 꺼내고 싶어하는 칼인 것이다.

YS는 94년 성수대교 붕괴 때와 97년 한보 사건과 김현철씨와의 관련설이 불거졌을 때 두 번이나 국민에게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사과 담화는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위기 탈출 방식 중 가장 강도가 높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상처를 입을 위험성이 크지만, 계속되는 야당과 언론의 공세를 잠재우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 방식을 선택한다.

대통령은 일반적으로 국민에게 메시지를 발표할 필요가 있을 때 국무회의를 비롯한 각종 회의에서 하는 모두 발언을 활용하거나, 이보다 사안이 심각하다고 느낄 경우 기자 간담회 형식을 택한다. 여론과 민심의 정도에 따라 단계별 수습책을 선택하는 것이다. DJ 역시 이번 고급 옷 사건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하기는 했지만, 각종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였을 뿐 담화 발표 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3년 남짓 남은 집권 기간에 국민을 상대로 머리 숙여야 할 일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DJ·YS의 공통점은 독선?

분명한 것은, 사과하는 횟수가 집권자가 얼마나 독선과 오만에 빠지느냐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집권 초부터 97% 지지율 속에 ‘신권위주의’라는 말까지 들어가면서 독주했던 YS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꾸준히 귀를 기울이기보다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편이었다. 많은 사람이 YS 스타일을 두고 독선적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이를 종합 분석해 판단한다는 평가를 듣는 DJ 역시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점점 자만에 빠져 가고 있는 것 아니냐 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YS가 문민 정권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는 독선적 태도로 임기말 위기를 초래했다면, DJ 역시 경제 위기 극복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이 독선과 오만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최평길 교수는 “대통령이 위기로 몰리지 않기 위해서는, YS의 경우 주변에 지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대통령의 행동을 제어해 줄 수람이 필요했고, DJ의 경우에는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행동주의자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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