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마 15대 의원들 어디로 발 옮기나
  • 金鍾民 기자 ()
  • 승인 2000.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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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의원 중 67명 ‘자의 반 타의 반’ 불출마… 사이버 국회 준비 등 행보 각양각색
16대 총선의 막판 선거전과 그 결과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한동안 긴장과 흥분 상태가 계속되겠지만, 이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 편한 정치인들이 있다. 바로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은 의원들이다. 15대 국회의원 가운데 불출마 의원은 모두 67명(의원직 사퇴자 제외). 전체의 20%를 약간 넘는다. 국회의원 정수가 2백99명에서 2백73명으로 줄었고, 물갈이와 정치 개혁을 바라는 시민단체와 유권자의 열망이 강해 불출마 의원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각당 현역 의원 물갈이 폭이 작고, 공천에서 탈락한 후 당을 바꾸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의원이 적지 않아 불출마 의원 수는 예상을 밑돌았다.

불출마 의원 가운데 3분의 2 가량은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해 본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뜻을 접었다. 총선시민연대의 공천 부적격자 명단에 올라 밀려난 경우도 있으나 그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아예 공천 신청을 하지 않아 자의로 정치를 그만 두는 의원들은 대부분 정치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경우다. 민주당 이재명, 한나라당 김 덕·하경근·이응선·황성천, 자민련 박세직 의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민주당 박정수, 한나라당 심정구·최형우·김영준, 무소속 한이헌 의원은 건강이 안 좋아 일찌감치 정치를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공천 탈락 의원이건 스스로 정치를 그만둔 의원이건 정치권을 떠나면서 내비치는 소회는 비슷하다. 대부분 자신이 몸 담았던 정치권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 특히 의정 활동이나 자질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당내 정치에 실패해 공천에서 탈락한 의원들은 불만이 더 컸다. 민주당 방용석 의원은 각종 언론의 의정 활동 평가에서 늘 수위권을 달렸고 여론조사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했다. 방의원은 “의정 활동은 열심히 했지만 정치는 실패했다. 정치가 너무 어려운 것 같다”라고 냉소 섞인 불만을 나타내면서 “노동자 출신이 국회의원 4년 했으면 된 것 아니냐”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합리적이고 참신한 이미지로 공천이 유력했으나 한나라당내 계파 갈등으로 공천에서 밀려난 김찬진 의원은 “한마디로 들어가서는 안될 곳에 들어갔다. 합리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곳이 정치권이다”라고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더 이상 휩쓸려 다니고 싶지 않다”

특히 전문가 출신 의원들의 경우 정치에 대해 단단히 ‘물려’ 미련이 별로 없는 분위기다. 학자 출신인 한나라당 하경근 의원은 “정치는 내가 할 것이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이나 원칙이 없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짓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라고 털어놓았다. 대우그룹 출신 전문 경영인으로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대우그룹 부실화에 책임을 지고 정치권을 떠나겠다고 밝힌 민주당 이재명 의원 역시 지구당 조직 분규에 시달려 온 데다가 재벌 개혁 방법과 관련한 정책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정치 생활을 회의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전문 경영인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했다가 한나라당 공천에서 밀려 출마를 포기한 민국당 노기태 의원은 “정치권에서는 합리와 논리에 따라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오히려 흠이 된다. 힘이 있는 쪽을 무조건 따라가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회의원 개개인은 우수한데도 그런 사람들이 모인 정당이나 국회가 국민에게 지탄받는 이유가 바로 1인 보스 중심의 정치 풍토에 있다고 비판했다.
여당 의원, 총선후 역할 기대

불출마 의원 가운데 많은 수는 아직 특별한 계획 없이 당분간 쉴 생각이지만, 몇몇 의원들은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국제 정치 전문가인 한나라당 하경근 의원은 국회 국방위 경험을 갈무리하면서 동북아 정세와 한·미 관계에 관한 책을 쓸 계획이다. 노인 문제 전문가인 민주당 김병태 의원은 노인 복지 쪽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으며, 의사 출신인 한나라당 황성균 의원은 다시 의사로 돌아가 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할 생각이다. 노기태 의원은 한 대기업으로부터 전문 경영인으로 와 달라는 제의를 받고 있으나 자신이 직접 사업체를 꾸릴 생각도 가지고 있다.

특히 컴퓨터공학과 교수 출신인 민주당 정호선 의원은 의욕적인 사업 계획을 세워 놓고 있어 관심을 끈다. 정의원은 현실 국회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사이버 공간에서 모범 국회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정의원이 구상하는 사이버 국회에서는 실제 국회와 마찬가지로 2백73명의 사이버 국회의원을 선출해 정책 개발과 입법 활동, 국정 감시 활동을 등을 하면서 유권자들과의 쌍방향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실현할 계획이다. 여성 30% 할당제를 의무화하고 해외교포위원회를 포함해 상임위를 모두 16개 둔다고 한다. 18세 이상을 유권자로 하고 25세 이상에게 피선거권을 주어서 오는 5월 25, 26일 이틀간 사이버 총선을 실시할 예정이다. 현재 홈페이지(www. cyberassem.com)를 열어 놓았으며, 과학기술자·교수·기업가 등 50여명이 사이버 국회의원 후보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불출마 의원들은 대부분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뗄 생각이지만 일부 의원들은 당이나 정부 쪽에 남아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특히 여권 의원들은 국회는 떠나더라도 나름으로 할 일이 있거나 일이 주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민련 박세직 의원은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을 하고 자신이 맡고 있는 2002년 월드컵 조직위원장 일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정치학 교수 출신인 민주당 길승흠 의원은 총선후 정국 운영에 대해 대통령에게 조언하기도 하면서 총선이 끝난 후 어떤 역할이 주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장애인 출신으로 공천에서 아깝게 탈락한 민주당 이성재 의원 역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총선 후에 나름의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지역구가 통합되어 이석현 의원에게 공천을 양보한 최희준 의원 역시 이의원 선거대책위원장과 국정 자문위원을 맡아 일하면서 총선 후를 기다리고 있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환경노동위에서 활동한 방용석 의원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대통령이 낙천자들을 불러 같이 일하자고 당부한 만큼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여권 의원들과는 경우가 다르지만 한나라당 김찬진 의원 역시 본업인 변호사로 돌아가지만 정치에 뜻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그는 의원을 그만두더라도 정치에 여전히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크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정치에 참여해 못다 편 뜻을 펼칠 생각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보지만 적당한 때가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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