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투기 춤추는 충남 연기군 현지 르포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4.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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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정수도 후보지로 낙점된 충남 연기군 일대 현지 르포
지난 7월10일 충남 연기군 남면 전의리. 정영교씨(70)는 요즘 불안해서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행정수도가 들어온다는 소식 때문이다. 그는 점심만 되면 인근 종촌리로 나간다. 정씨는 “가만히 있기가 불안해 여러 동네 사람이 모이는 종촌리 농협에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이 마을에서 27년째 살고 있다. 60대 중반인 그의 아내는 인근 월산공단에 있는 김치 공장에 나가 일한다. 한 달을 꼬박 나가 받는 월급은 50만~60만원. 정씨는 논 4천4백20평, 밭 8백60평 농사를 짓는다.

정씨가 다른 마을 주민보다 불안해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가 농사를 짓는 논밭 모두 ‘싹도지’(임대땅)이기 때문이다. 지금 사는 집도 다른 사람의 터에 지은 것이다. 행정 수도가 들어오면서 집이나 땅을 보상해준다고 해도 자기 땅이 없는 정씨로서는 보상받을 것이 없는 셈이다. 정씨는 “남의 땅이지만 마지기당 열두 말 주고 내 땅처럼 농사짓고 살았는데 이 나이에 어디로 가냐”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젊은이는 “찬성” 노인들은 “반대”

이 마을은 부안 임씨 전소공파 집성촌이어서 유난히 임씨 성이 많다. 종중 일을 보는 총무부장 임헌인씨(63)에 따르면, 6백년 전부터 집성촌이 되었다. 종토(종중 땅)에 집을 짓고 농사를 짓는 사람이 반 이상이라고 한다. 임씨는 “농협 빚이 있는 인구가 80%가 넘는데, 보상받아 빚 갚고 나면 다 알거지다”라고 말했다.

수용 예정지 안에 사는 사람들은 집과 토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불안해 하기는 매한가지다. 4대째 연기군 남면에서 사는 임재일씨(65)는 논 1천7백평을 갖고 있다. 그는 “시방 환장하겠다”를 연발했다. 이미 연기 근방 땅값이 치솟아 공시지가로 보상을 받으면 땅을 살 수 없어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임씨는 “내가 7대손이다. 여기에 선산이 있는데 여기 있는 묘는 다 어떻게 하냐”라고 말했다.

물론 연기군에 걱정하는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기군민 안원종씨(49)는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서 찬성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민을 희생하는 방식은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는 “공시지가로 보상한다면 말도 안 된다. 땅값이 오른 만큼 일정 비율로 땅으로 보상해줘야 한다. 찬성은 하지만 기존 도시를 세울 때 원주민이 모조리 쫓겨나는 방식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상점이 몰려 있는 남면 종촌리. 종촌리 인근 논밭에는 부동산 업자들이 내건 ‘땅 급구’ 플래카드가 여럿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철물점·건재상을 하는 한 주민은 “동네 사람들이 찬성, 반대로 나뉘어 말을 하기가 힘들다”라고 말했다. 대체로 젊은 사람들은 찬성하고, 노인들은 반대하는 형국이라고 한다. 그는 “개인적으로 애들 교육 문제도 있고 해서 행정 수도 건설에는 찬성인데, 여하튼 빨리 결론이 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신행정수도 후보지로 결정되면서 충남 연기군에는 이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전입자가 급증하는 ‘역 엑소더스’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생업을 위해 고향을 떠났던 출향민들이 남아 있는 부동산을 찾아 주소지를 이전하는 U턴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금강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금남면에는 후보지 순위가 발표된 지난 7월5일 이후 전입자가 계속 늘어나 하루 10~20명에 이르고 있다. 또한 보상을 노린 각종 편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청와대 자리’라고 소문이 난 전월산 인근에는 ‘새 집 건축 붐’이 일고 있다. 외지 사람들로부터 빈집이나 헛간을 평당 60만원에 사겠다는 연락도 많이 온다고 한다. 주택 딱지를 구해 돌려 팔기를 하려는 것이다.

세칭 ‘청와대 자리’ 인근에 새집을 짓고 있는 건물주는 사진 촬영을 한사코 거부했다. 자기는 농토가 있어 살러 들어왔고, 건축 허가도 진작 받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조립식 건물 두 채를 짓고 있었다. 마을 주민 임헌인씨는 “자기가 살 집인데 브로크로 집을 짓겠느냐? 일꾼들에게 물어보니 한 사람이 두세 채씩 집을 짓는다고 한다. 결국 보상을 노리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연기군 종촌리에는 부동산업소가 20여개 들어섰다. 대전에서 왔다는 한 부동산업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찍어놓은 공주 장기면 쪽으로 갈 줄 알고 연기 쪽으로 왔는데, 장소를 잘못 짚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가격만 오르고 거래가 뚝 끊겼다고 말했지만 부동산 사무소 수첩에는 서울의 부동산 사무소, ‘김여사님’, 울산 등지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는 “여기는 전쟁터다”라며 기자 일행에게도 “방법이 있다. 돈 1억이 있으면 2천만~3천만원 불려주겠다”라고 제의했다.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는 인근 조치원읍도 마찬가지다. 조치원읍 신흥주공임대아파트에는 ‘행정수도 반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5년째 이 아파트에 사는 손덕순씨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5년 전 분양이 미달해 임대 아파트로 전환했다. 19평·23평·24평·31평 형이 있는데, 31평형을 분양할 때는 인기가 없어 인근 군부대를 돌며 할인 분양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임대 입주자들에게 새로 분양을 하면서 행정수도 시세를 반영한다며 천만원 가량 분양가를 올릴 조짐을 보이자 주민들이 행정수도 이전 반대 플래카드를 내건 것이다. 손씨는 “주민이 둘로 갈렸다. 도대체 행정수도와 우리 같은 서민 아파트 분양가와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 인근에 있는 푸르지오 분양 사무소 앞에는 두 시간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7월11일 일요일 오전 11시. 40~50 명이 줄을 서서 번호표를 확인하고 있다. 푸르지오는 분양권 전매가 가능해 행정수도 발표 이후 청약 경쟁률이 12 대 1로 치솟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미 분양이 끝났지만, 잔여 세대 9채를 화요일 오전 10시30분에 선착순으로 분양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벌써부터 줄을 선 것이다. 1번 표를 갖고 있는 한 부동산 업자는 4일 전부터 줄을 섰다. 그는 “며칠 고생하면 돈 천만원이 생기는데 누가 줄을 안 서겠느냐고 반문했다. 아파트 분양사무소 앞에는 울산·경기·서울·대전 번호판을 단 승용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충남 연기·공주(장기)·논산·계룡 네 곳은 곧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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