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북한, 권력 투쟁 치열
  • 김 당 기자 ()
  • 승인 1998.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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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계엄 상황…강관주 대외연락부장 등 대남 사업부서 간부 8명 숙청
북한 내부 동향이 심상치 않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지금 전시(戰時) 동원 체제에 돌입했으며, 권력 내부에서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 또 군이 당정(黨政)의 주요 건물을 접수하고 밤 10시 야간 통행 금지를 실시하는 등 사실상 계엄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외신 보도 역시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영국 로이터 통신은 3월13일(현지 시각 3월12일 밤 10시) 베이징발로 ‘북한 전시 동원 태세 선포’라는 제목의 기사를 타전했다. 이 통신은 평양에 주재하는 한 국제 구호기구 관계자와의 전화 통화를 근거로 ‘북한 당국이 북한 전역에 전시 동원 태세(a state of wartime mobilization)를 선포했다’고 밝혔다. 또 로이터 통신은 북한 주재 외교관과 외국인들에게 배포된 정부 성명을 인용해 ‘3월12일 밤부터 효력을 발생한 전시 동원령은 북한 정규군뿐 아니라 국가 경제와 사회 생활 전반에 적용된다’고 보도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중국 신화 통신 또한 13일 같은 제목의 기사를 타전했다. 한국 신문들은 3월14일자부터 이같은 외신 보도를 인용해 북한의 동향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한편 국방부는 이같은 외신 보도와 관련해 13일 발표한 공식 논평에서 ‘북한의 전시 동원 체제는 실제 상황이 아니고 연례적인 훈련과 관련된 움직임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군의 고위 관계자들도 “현재 북한군의 움직임은 전시 동원령에 따른 것이기보다 연례적인 전시 전환 훈련인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혀 공식 논평을 뒷받침했다. 즉 평시에서 전시 체제로 전환하는 데 따른 연례 기동 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현재의 북한군 움직임은 연례적인 전환 훈련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시사저널〉이 북한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첩보를 입수한 때는 지난 3월6일. 북한군 쿠데타설과 고위 장성 망명설이 북경 외교가에서 조심스럽게 흘러 나온 시점이다. 당시 북한의 쿠데타설·망명설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자 국내 정보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라면서 “제3국 정보기관이 북한군 기동 훈련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언론에 슬쩍 흘려 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2월부터 사상·조직 검열 전개

이 고위 관계자의 말대로 3월6일 베이징에 주재한 각국 외교관과 정보기관 요원 들은 당시 북한군의 이상 동향을 탐지하기 위해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의 인민무력부 장교들과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의 무관 및 정보 요원들 그리고 베이징 주재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등을 채널로 삼아 숨가쁜 첩보전을 펼쳤다. 다음날인 7일 평양발 북경착 고려항공 여객기에는 예약 승객의 30% 이상이 탑승하지 않았다. 여객기를 이용하는 북한 특권층에 뭔가 이상이 있음을 암시하는 징후였다. 이것은 다른 이상 조짐들과 함께 각국 정보기관의 본부에 보고되었다.

북한 정변설의 근거는 3월3일 10시부터 발동한 비상 대비 태세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북한은 이미 2월부터 국가보위부를 중심으로 사상 및 조직 검열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비상 국면의 특징은, 대비 태세 점검을 국가보위부와 인민무력부가 주도한다는 점이다. 이 소식통은 “특히 군이 당정의 주요 건물을 장악하고 총포를 쏘는 등 실감나게 대비 태세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정변설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물론 ‘믿는 것은 오직 군대’뿐이라는 김정일 총비서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이같은 대비 태세 점검 및 기동 훈련은 식량난·경제난으로 인한 주민들의 불평 불만을 무마하고 내부 체제를 결속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3월 초 대비 태세 점검 및 기동 훈련에 이어 3월12일 전시 동원 태세 돌입으로 전개된 이번 비상 국면에서 북한은 내부 숙청이라는 또 다른 비상 조처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이같은 전시 태세를 조성해 대남 공작 부서와 대외경제위원회 및 각종 외화벌이 기구의 지도급 인사에 대한 숙청 작업을 벌였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대남 사업 부서인 사회문화부(현 대외연락부)의 강관주 부장 및 간부 7명이 숙청된 사실이 확인되었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김정우 위원장 숙청설도 나돌고 있다. 이 소식통은 “북한이 남한 대선 개입 공작의 실패 및 고영복 교수 사건의 책임을 물어 대외연락부로 명칭이 바뀐 사회문화부 간부들을 숙청했다”라면서, 이번 숙청을 ‘아·태평화위원회와 국가보위부의 합작품’이라고 분석했다. 즉 사회문화부와 경쟁 관계인 통전부의 위장 기구인 아·태평화위원회(위원장 김용순)가 군부와 밀접한 국가보위부와 손잡고 사회문화부에 대선 개입 및 대남 사업 실패 책임을 덮어씌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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