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길 북한 대사 망명, 4월부터 예견됐다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7.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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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에 제보 들어와…미국 정보기관 개입 가능성 높아
장승길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48) 부부가 장대사의 형인 장승호 파리 주재 북한대표부 경제참사관(51) 부부와 함께 행방을 감춘 지난 8월22일은 공교롭게도 장대사의 아들인 장철민이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행방을 감춘 지 만 1년째 되는 날이었다. 카이로 소재 브리티시 카운슬에 재학하던 장철민은 지난해 8월22일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장철민은 친구들에게 스위스나 캐나다로 망명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곤 했다고 한다.

따라서 외교 소식통들이 장승길 대사 부부의 돌연한 ‘망명 사건’을 아들의 실종 사건과 연관해 바라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장철민이 행방 불명된 이후 이집트 외교가에는 장대사가 경질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으며, 장대사 역시 거취 문제를 둘러싸고 고뇌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가 건재했던 것은 부인 최혜옥이 북한의 대표적 혁명 가극인 <꽃파는 처녀>의 주연 배우 출신으로 김정일의 총애를 받아왔고, 또 김정일의 처와 대학 동창이라는 인연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 8월 말로 3년 임기가 끝나고 귀국을 앞둔 그로서는 앞날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었고, 제3국 망명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감행했으리라는 분석이다.

사실 장승길 이집트 대사는 국내의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 주목 대상이 되었던 인물이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지난 2월12일 발생한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의 망명 사건이었다. 사건 직후 국내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는 `황비서에 이어 외국에 주재하는 북한의 현역 대사급 인물이 망명하리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 장승길 대사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말께이다. 당시 국내 정계의 한 소식통은 이집트를 무대로 활동하는 재계 인사의 말을 빌려 “장승길 이집트 대사가 며칠째 행방 불명이다. 해외로 망명했음이 틀림없다”라고 <시사저널>에 제보했다. 당시 <시사저널>은 이집트 주재 한국대사관 및 정보 당국을 취재해 보았 으나 확인하지는 못했다.

4월의 이런 소문 이후 장승길 대사는 5월에 북한을 다녀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의 5월 방북이 4월에 일부 떠돌았던 망명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현재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으나, 5월 방북을 계기로 그의 망명설이 일단 수그러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에 돌연 망명을 결행함으로써 4월 망명설이 근거 없이 제기되지 않았음이 입증된 셈이다.

미국, 한국 대선에 영향 미칠까 염려

이처럼 정계, 특히 야당에서는 장대사가 국내 정보통들 사이에 어느 정도 인지되었던 인물임을 들어 그의 망명 사건에 국내 정보기관이 깊이 개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하필이면 김대중 총재의 기자회견 날에 맞춰 망명 사건이 터졌다는 점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도 역시 ‘북풍’이 거세게 불 것이다. 그러나 그 형태는 과거 같은 전쟁 위기 고조 방식이 아니라, 북한 고위급 인사 망명이나 남북간 해빙 무드 조성 같은 연성의 형태를 띨 것이라는 점에 주의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야권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안기부의 한 실무 책임자는 “이런 정도의 사건이라면 안기부 내에서 약간 소문이라도 날 텐데, 이번에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안기부 작품이 아닌 것 같다”라고 부연했다.

반면 현재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는 것은 미국 정보기관 개입설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들이 장대사 망명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소문이 그럴듯한 근거로서 제시된다. 미국은 북한이 중동에 미사일을 수출하는 것과 관련한 정보와 중동으로부터 북한이 핵탄두 제조용 원료를 수입했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이집트에 주재해온 장대사를 이와 관련해 중요한 정보 소스가 될 것으로 판단했음 직하다.

미국측 실무자들은 현재 장대사 망명 사건이 한국 대통령 선거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침으로써 자신들이 오해 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대선이 치러질 3,4개월 동안은 제3국의 비밀 장소에서 장대사가 인지하고 있는 정보를 파악하는 작업에 주력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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