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원전 5, 6호기, 지반에 문제 있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6.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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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환경연구소 “영광 5, 6호기 부지는 암반 깨진 구간”…활동 가능성 커 위험
 
전남 영광군이 또다시 술렁이고 있다. 영광 원자력 발전소(원전) 5,6호기가 들어설 부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배달환경연구소 이인현 박사(지질학)는 최근 ‘이 지역에 평균 80m 폭의 파쇄대가 통과하고 있는데도, 한전이 이에 대한 정밀 조사를 하지 않은 채 원전 건설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박사는 94년 11월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작성해 과학기술처에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와 이에 대한 환경부의 검토 의견서 및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심사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이같은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환경부, 94년에 부적합 판정

파쇄대(fracture zone)란 암반이 깨져 있는 구간을 말한다. 암반에는 지각 운동이나 풍화 등 자연 현상에 의해 갈라지거나 깨진 부분(불연속면)이 존재하는데, 흔히 규모가 작으면 ‘절리’, 크면 ‘단층’으로 구분한다. 한전이 작성한 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르면, 영광 5,6호기 예정 부지(전남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의 지하 지층을 통과하는 10∼1백35m 너비 파쇄대는 절리와 소규모 단층, 전단대(shear zone)가 뒤섞인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절리나 단층은 암반의 성질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도로·댐·터널·건물 등 토목 구조물을 지을 때는 이를 치밀하게 조사하는 것이 상례이다.

 
해당 부지 파쇄대에 대한 문제는 과학기술처와 환경부의 평가 협의 과정에서부터 제기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영향평가서를 처음 검토한 환경부는 94년 12월 ‘원자로 5호기가 시설되는 위치의 지하 지층을 보면 암석의 질이 나쁜 지층과 암석의 질이 좋은 지층이 호층(교대로 쌓인 형태)으로 놓여 있고, 평균 폭이 80m인 파쇄대가 통과하는 것으로 보아 원자로를 세울 위치로는 부적합한 것으로 사료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95년 9월 두 번째 검토에서는 여기에서 한 발짝 후퇴해, 부적합한 지질은 아니며 만약의 경우 영향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구체적인 저감 방안을 세우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지형·지질 부문을 검토한 ㄱ교수(지질학)는 이에 대해, 한전이 보내온 보완 자료를 검토한 후 2차 의견을 내게 되었다고 밝혔다. 단, 2차 의견서에서도 그는 단서를 달았다. ‘(한전이 파쇄대를) 균일한 기초 암반으로 해석하고 문제점이 없다고 판단하여, 공사를 실시하면서 공법을 선택하여 기초 전면을 개량하고자 하는데, 사전에 조사하여 실시 설계에 반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사료된다’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나아가 ㄱ교수는 한전이 과학적으로 검토할 만한 자료(예비 안전성 분석 보고서 등)를 제출하는 데 소홀했다며 이를 보완하라고 요구했다. 원전 건설 허가를 받으려는 사업자는 원자력법 제11조에 근거해 예비 안전성 분석 보고서를 작성해 과학기술처장관에게 제출하게 되어 있다. 여기에는 원자로 시설 및 그 부지의 주요 특성에 대한 상세한 조사 결과가 들어 있다. 이 보고서가 빠진 상태에서 ㄱ교수는 해당 부지의 지질을 검토했던 것이다. 한전측은 이에 대해 고의로 보고서를 첨부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며, 요청이 있은 직후 환경부에 이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전, ‘파쇄대 활동 가능성 적다’ 반론

그로부터 석 달 후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를 최종 협의했다. 지질 분야 협의 내용은 ‘5호기 본관 건물 등에 국부적으로 연약 지반이 존재하므로, 공사 전에 면밀히 조사하여 실시 설계에 반영한다’로 압축되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인 ㄱ교수는 ‘개인적인 용무’로 최종 협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2차 검토 당시 ㄱ교수가 보완을 요구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셈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부지의 안전성 문제는 과기처나 해당 전문 기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느냐’며 더 이상 지질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던 이유를 해명했다.

 
한 달 후인 96년 1월 과기처 산하 기구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한전이 제출한 부지 조사 보고서 및 제한 공사 승인 신청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주 파쇄대를 제외하고는 현장 조사 및 확인 결과 제4기 동안의 이동 증거는 찾아볼 수 없으며, (중략) 부지 반경 8㎞ 이내 지역에는 발전소의 안전성에 심각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표 단층 작용 발생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질로 시대를 구분할 때, 제4기는 2천5백만 년 전∼현세까지에 해당한다. 제4기에 이동 증거가 없었다는 것은 최근 들어 지각 변동이 없었고, 따라서 그만큼 지질이 안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인현 박사는 그러나 파쇄대의 생성 연대를 밝히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주장한다. 보고서대로라면 주변 암반과 ‘비슷한 시기’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지 정확한 생성 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파쇄대 위에 원전의 핵심 시설이 들어선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파쇄대가 통과하는 지역에는 5호기의 핵연료 빌딩과 원자로 건물 일부가 들어설 예정이다. 파쇄대의 생성 연대는 과거 이 지역에 지각 운동이 발생했던 시기를 밝힘으로써 앞으로의 활동 가능성을 추정하는 기초 자료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이박사의 설명이다.

이에 대한 한전측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전은 ‘이 지역의 파쇄대는 84년 영광 3,4호기의 부지 특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미 처음 발견되었고, 그후 89년까지 네 차례에 걸친 정밀 조사를 통해 파쇄대의 형태·구성 물질·분포 암석·풍화 정도 등을 상세히 검사한 상태’라고 밝힌다. 이 과정에서 파쇄대가 활동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었다는 것이다. 문제의 파쇄대는 4호기 터빈 동쪽 끝부분에서 시작해 배수로 웨어(weir) 지역과 5호기 예정 부지를 통과한다(위 그림 참조). 따라서 4호기 건설 당시 이 지역 파쇄대에 대해 충분히 정밀 조사를 수행했다는 것이 한전측 주장이다.

그러나 이인현 박사는 한전의 조사가 ‘국지적으로는 타당할지 몰라도 광역적인 관점에서 수행되지 않았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정밀 조사라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지적한 대로 파쇄대가 생성된 연대를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파쇄대의 연장, 주변에 존재하는 단층과의 관계도 정밀하게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한전측이 지난해 7월 환경부에 제출한 보완 자료는 △한반도는 지체구조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중국 대륙 동쪽 부분으로 연장되는 쉴드(shield) 부분의 무지진 지역에 해당하며 △국내에 활성 단층은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자료가 나온 지 겨우 넉 달 뒤인 지난해 11월 핵폐기장 시설 부지로 선정된 굴업도에서 활성 단층이 발견되었다.

 
한 지역 원전 6개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일


한전은 현재 5, 6호기도 4호기와 마찬가지로 굴착 치환 공법을 이용하면 안정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파쇄 부분을 모두 드러낸 뒤 콘크리트로 그 자리를 채우고, 주변 암반과 동질하게 지반을 보강하는 공법이다. 이에 대해 이인현 박사는 한전이 세계적 수준의 공학 기술을 가진 것은 인정하지만, 대상이 원전인 만큼 ‘만에 하나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도록 치밀하게 사전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 또한 ‘굴업도 핵폐기장 악몽이 재연되려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민관 합동으로 정밀 조사단을 구성하자고 제의했다. 녹색연합 석광훈 간사는 91년 사전 부지 조사 당시 굴업도에서 단층 존재가 확인되었음에도 ‘공학적 방벽을 통해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다가 정밀 조사 결과 부지 선정을 철회한 오류를 정부가 또다시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밀 조사를 충분히 수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파쇄대 생성 시기가 주변 암반 구조의 생성 연대와 비슷할 것으로 판단되나 더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 굴착 공사 단계에서 현장 조사 및 분석을 하는’ 조건으로 과기처가 한전에 영광 5,6호기 부지 사전 사용 승인(2월10일)을 내준 것은 앞뒤가 뒤바뀐 처사이자 과기처의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전측은 ‘굴착 공사 단계에서의 현장 조사는 이미 검증된 측면을 재평가하는 차원’이지 정밀 조사가 부족해 보완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고 주장한다. 해당 지역 지질 조사를 수행한 한국전력기술(주) 안윤성 주임기술원은 ‘부지 선정 단계이던 굴업도와, 인근 부지에 이미 원전이 건설·가동되고 있고 지질 조사 또한 10년 넘게 벌여 온 영광 5,6호기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전에 가동되던 영광 원전 가운데 이만한 규모로 파쇄대가 분포하는 부지는 5,6호기가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안윤성씨는 84년 4호기 예정 부지에서 파쇄대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집요하게 이 지대의 안정성 여부를 추궁했고, 이 때문에 보고서를 네 차례나 보완해야 했다고 얘기한다. 그런데도 한전은 다시 이 지대에 5,6호기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더욱이 파쇄대가 통과하는 지역에 들어설 5호기 시설물은 4호기의 배수로·터빈과 달리 핵연료 건물 등 원전의 핵심 시설이다.

일각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원전 입주 반대 움직임이 전국화하면서 새로운 원전 부지를 찾기 어려워진 정부·한전이 서둘러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영광 지역은 5,6호기 건설 계획이 확정된 93년 이전부터 동일 지역에 원전이 6개씩 들어서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는 시비에 휘말려 왔다.

1년을 넘게 끈 온배수 피해 보상 협상, 지난 1월 영광군수의 건축 허가 취소 파동(왼쪽 지역 소식 참조)에 이어 ‘파쇄대’라는 ‘복병’을 새로 만난 과기처와 한전은 난감한 표정이다. 이 복병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굴업도 사건 이후 사회 전반에 팽배한 정부의 원자력 행정에 대한 불신 또한 해소되느냐 악화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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