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 다지며 개혁 강화한 2기 내각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1999.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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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전문가 대거 기용 ‘공무원 포용’에 힘써…박지원·김태정 ‘역할’에 관심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지 15개월 만에 17개 부처 각료 가운데 11명을 교체하는 조각 수준의 개각을 단행했다. 5·24 개각으로 출범한 김대중 정부 2기 내각의 특징은 한마디로 행정 내각. 그동안 유임설과 교체설이 엇갈리던 정치인 출신 장관은 대부분 원대 복귀했고, 이 자리를 청와대 수석과 관료 출신 전문가가 메웠다.

행정 내각이라는 표현이 대변하듯 이번 2기 내각의 지향점은 ‘공무원 사회의 안정을 통한 개혁 가속화’로 요약된다. 이번 개각 과정에서 김대통령은 어느 때보다 공무원 사회를 포용하는 데 신경을 썼다. 당초 6월 중순께로 예상된 개각을 앞당기고, 일부에 그칠 것으로 점쳐지던 정치인 출신 장관 교체를 전원 교체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모두 공직 사회의 동요를 확실하게 차단하겠다는 의미다.

김대통령은 정치인 출신 장관이 퇴진한 자리에 전문가와 관료 출신을 대거 기용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한 고위 인사는 “차관급 등 내부 인사 승진은 앞으로 이들을 개혁 주체 세력으로 만들어 개혁에 냉소적이던 공직 사회를 과감히 이끌어가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들어 김대통령이 자주 강조하는 ‘공무원은 개혁 대상이 아닌 개혁 주체’라는 말과 맥을 같이한다.
공직 사회 끌어안기와 함께 이번 개각에 담긴 또 다른 상징성은 ‘개혁 정책 일관성 유지 및 가속화’다. 대표적인 예가 강봉균 재정경제부장관, 임동원 통일부장관,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 등 청와대 수석 출신 3인의 입각. 김중권 실장은 3인이 입각한 배경에 대해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국정 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곧 그동안 김대통령이 추진해 온 경제 개혁과 대북 정책 기조를 유지·강화하겠다는 의미이다. 강장관은 5대 재벌을 중심으로 한 경제 개혁을 매듭짓는 것에 주력하고, 임장관은 대북 햇볕 정책을 강화해 남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전 공보수석이 내각에 진출한 것은 이번 개각의 하이라이트다. 김대통령이 8년 동안 자신의 ‘입’ 노릇을 해온 박씨를 떠나보낸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오랫동안 고생한 데 대한 보상이다. 박장관은 김대통령이 야당 총재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변인을 맡아 오면서 가장 일찍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는 성실함을 보였다.

박지원 기용은 언론 통제용?

그러나 박장관 임명이 내포하는 더 큰 의미는 김대통령이 그를 통해 언론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리라는 점이다. 김대통령은 지금까지 언론의 자율 개혁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청와대 주변에서는 최근 들어 언론이 스스로 개혁하기는커녕,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반(反) 개혁 쪽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높다고 판단하고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던 터였다. 그런 마당에 언론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박씨가 문화관광부 수장으로 임명되자 드디어 언론 개혁에 시동이 걸렸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계 일각에서는 박장관 기용이 총선을 겨냥한 언론 통제용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박장관이 “문화·관광·예술·종교·체육·언론 여섯 분야에 대해 정부가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겠다”라고 첫마디를 내놓았지만, 언론계는 상당히 긴장하는 눈치다.

김태정 검찰총장을 법무부장관에 기용한 것도 평가가 엇갈린다. 공권력의 공백을 막으면서 사법 개혁을 지속하기 위한 바람직한 선택이라는 긍정론이 있는가 하면, 국회에서 탄핵 발의까지 했던 사람을 장관에 임명하는 것은 제2의 사정 등 특수 목적용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나라당과 시민단체는 특히 임기 만료 2개월을 앞둔 검찰총장을 장관에 임명한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현정부의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번 개각에서도 역시 여성 30% 참여 보장이라는 김대통령의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신낙균·김모임 두 장관이 물러나는 대신 연극인 손 숙씨만이 환경부장관에 기용되어 여성 장관 몫은 오히려 줄었다. 손장관은 김대통령 부부와 야당 시절부터 친분이 깊었던 데다,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아 환경운동에 관심을 쏟아와 기용되었다는 후문이다.

여성계 “기대 이하”

이번 개각에서 여성이 많이 진출하고 나아가 더 비중 있는 자리에 오를 것을 기대했던 여성계는 ‘수나 자리나 인물 면에서 모두 기대 이하’라며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이런 반발을 의식한듯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은 “유력한 여성 후보를 접촉했으나 고사했고, 그 밖에는 적임자가 없었다”라면서, 후속 인사에서는 여성을 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인사위원장(장관급)에는 김광웅 서울대 교수가, 차관급인 국정홍보처장에는 오홍근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기용되었다. 김대통령은 또 16대 총선 출마가 유력한 이종찬 국가정보원장도 천용택씨로 교체했다. 이씨를 비롯한 정치인 장관들이 당으로 복귀함에 따라 8월 전당대회를 앞둔 국민회의 내부의 역학 관계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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