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 주가조작설 왜 나왔나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9.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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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문제 삼지 않을 뜻 내비쳐… ‘5대 그룹 빅딜’ 대통령 보고 앞두고 부담
국내 주식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 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9%이다. 대형 우량주일수록 외국인 투자 비중이 높아서, 삼성전자·포항제철 등은 경영권 방어에 비상이 걸려 있다.

그렇다면 현대전자는 어떨까. 지난 12일 현재 현대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3.14%밖에 안된다.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데도 현대전자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그런데도 현대전자 주가는 지난해 1만4천원대였던 것이 2만8천원대로 크게 올랐다.

전반적으로 주가가 오르기는 했지만, 더 큰 이유는 현대그룹 계열사의 주가 떠받치기 덕분이라는 것이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발행 주식 수가 1억 주가 넘는 대형주이지만, 현대그룹 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한때 70%에 이르렀고, 이 때문에 유통 물량이 적어 주가가 올랐다는 것이다.


현대측이 금감원장 면담한 이유

지난 4월7일 금융감독원(금감원)이 현대전자의 주가 조작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금감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은 지난해 5∼11월 현대전자 주식을 턱없이 높게 사서 주가를 끌어올렸다. 이를 위해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동원한 자금은 각각 2천억원과 2백억원이나 된다. 금감원은 14일 심사조정위원회와 21일 증권선물위원회를 열고, 두 회사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거나 통보할 예정이다.

이같은 주가조작설에 대해 현대는 펄쩍 뛴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현대전자 주식을 대량 매집한 것은 사실이지만, 주가를 조작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우선 현대상선의 경우, 98년 6월 말 현재 현대전자 지분 19.11%를 갖고 있다가 88만주를 추가 매입해 20.34%로 늘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추가 매입에 나선 것은, 지분법상 보유 지분이 20%가 넘어야 자산 재평가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산 재평가를 통해 부채 비율을 낮추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한편 현대중공업은 현대전자의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다고 판단해 투자 차원에서 매입했다고 밝혔다.현대측은 LG반도체와의 빅딜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현대전자 주식을 대량 매집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현대전자 주식을 대량 매집한 것은 지난해 5월 말∼7월 초였는데, 반도체 빅딜 논의가 제기된 것은 한참 뒤인 9월이라는 것이다.

현대측은 일부 계열사가 그 뒤에 현대전자 주식을 매각했지만, 그 돈은 전부 현대전자의 유상 증자와 각 계열사의 차입금 상환에 쓰이거나, 일부 계열사의 그룹 분리를 추진하는 데 사용했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주가를 조정할 의도가 있었다면, 계열사끼리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겠느냐”라며 주가조작설을 일축했다.

이 때문에 제기되는 것이 ‘빅딜 압박설’이다. 주가조작설은 이미 지난해에 벌어진 사안인데, 지금에 와서 금감원이 문제 삼는 데는 다른 의도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지난해 8월 증권거래소로부터 이같은 내용을 통보받았지만, 인력이 부족해 올해 2월에야 조사에 착수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많다. 우선 이번 사건이 불거진 것이 4월22일 5대그룹 구조 조정에 대한 대통령 보고를 앞두고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자동차·전자 빅딜이 지지부진하자, 반도체 빅딜이라도 조기에 성사시켜야겠다고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을 공산이 크다. 최근 현대가 정부와 사사건건 부딪친 것도 단단히 한몫 했을 것으로 내다본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국가정보원 등 정부측 관계자들이 노골적으로 현대를 혼내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경제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정부의 강공 태도가 심상치 않자 지난 9일 정몽헌 현대 회장이 박세용 현대상선 회장과 함께 이헌재 금융감독원장을 찾아갔다. 10분 간에 걸친 비공식 면담에서 현대전자 주가조작설과 반도체 빅딜에 대한 얘기가 오갔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화답하듯 금감원은 현대전자의 주가조작설을 법적으로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결국 현대전자 주가조작설을 들추어 낸 것은, 반도체 빅딜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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