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극물 방류'' 맥팔랜드 앞에서 맥빠진 한국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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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름알데히드 방류한 맥팔랜드, 형 집행 안돼…출국 막을 길도 없어
2000년 포름알데히드를 무단 방류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맥팔랜드가 4년 만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1월9일 서울지방법원 형사 단독15부 김재환 판사는 맥팔랜드에게 징역 6월 실형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벌금형(5백만원)보다 중한 판결이다. 하지만 맥팔랜드는 구속은 면했다.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약칭 한·미 행정협정) 규정에 따라 형이 확정될 때까지 집행이 보류되었다.

주한미군은 법원의 판결에 반발했다. 맥팔랜드와 주한미군측은 항소 자체를 포기함으로써 법원 판결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원래 맥팔랜드는 재판에 회부 되지도 않았다. 2000년 서울지검 외사부 최교일 검사(현재 서울지검 형사7부장)는 고의성이 없고 초범이라는 이유로 맥팔랜드를 벌금 5백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다른 미군 범죄 사건처럼 맥팔랜드 사건도 용두사미로 끝날 것 같았다.

"공들인 판결문, SOFA 해설서 같았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이 약식 기소한 맥팔랜드를 재판에 정식으로 회부했다. 그 주인공이 오재성 판사(현 서울 북부지원 판사)다. 오판사는 2001년 4월4일 검찰 수사가 미진하고 사안이 중대하다며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법원 인사 이동으로 김재환 판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김재환 판사는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놀랐다고 말할 만큼 의미 있는 판결을 했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고유경 간사는 “판결문 자체가 한·미 행정협정 해설서에 가까웠다. 공력이 들어간 판결문이다”라고 말했다. 김판사의 선고를 접한 오재성 판사는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오판사는 “맥팔랜드 건에 대해 할말이 많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판결이 난 지 7일 이내에 항소하지 않으면 형이 확정된다. 형이 확정되는 1월16일 이후에 한국측이 신병을 요구하면 주한미군은 맥팔랜드의 신병을 한국에 넘겨야 한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재판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한·미 간에 논란이 뜨거울 전망이다.

현재 맥팔랜드는 서울 용산기지 내 사우스포스트에 살고 있다. 그가 사는 용산기지는 치외법권 지역이나 마찬가지다. 한·미 행정협정 규정에 따라, 주한미군이 동의하지 않으면 기지 안을 수색할 수도, 심지어 들어갈 수도 없다. 서울지방법원 집행관도 불평등한 행정협정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법원 집행관은 2001년부터 여섯 차례나 용산기지를 찾았다. 맥팔랜드에게 공소장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집행관은 매번 출입구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맥팔랜드는 지금도 영안실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영안실과 집 외에는 두문불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메인포스트 클럽에서 열린 주한미군 크리스마스 파티 때도 맥팔랜드는 한국인 부인과 잠깐 들렀다가 사라졌다. 그만큼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한 주한미군 군무원은 “맥팔랜드는 하루빨리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한국 법원의 결정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1월11일 검찰은 그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출국을 정지시켰다. 그러나 빈틈이 많다. 여중생 사건 당시 마크와 니노 병장이 이용한 오산 공군기지를 통하면 맥팔랜드도 한국을 빠져나갈 수 있다. 오산 기지 역시 치외법권 지역이기 때문이다.

1월12일 <시사저널>은 맥팔랜드 소장과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고, 그 다음부터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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