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 소나 <겨울연가> 만든다?
  • 변희재 (대중 문화 평론가) ()
  • 승인 2004.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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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열풍에 기대 해외 시장 노리는 ‘어설픈 기획’은 금물
<겨울연가>가 방영되던 시절, 국내에서는 ‘간 큰 남자’ 시리즈가 유행했다. ‘간 큰 남자’는 <겨울연가>를 보는 시간에 아내에게 잔심부름을 시키는 권위주의적인 남편을 비꼬는 말이었다. 지금 일본에서 부는 신드롬만큼은 아니더라도 국내 주부들 역시 <겨울연가>에 푹 빠져 살았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자 국내 평론가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이제껏 대중 문화에 대해서라면 반 발짝 앞서 있다고 인식하던 일본인들이 한국의 드라마 한 편에 이토록 열광하는 현상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섬세한 전문 드라마에 식상한 일본 주부들이 과거의 로망 드라마의 향수에 빠져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너무 소극적이었다. 결정적으로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방영되기 전 한국에서도 비슷한 신드롬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사실 국내에서는 <겨울연가>보다 윤석호 감독의 사계절 연작 시리즈의 시작이었던 <가을동화>가 흥행이나 작품성 면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가을동화>와 <겨울연가>는 현실성 부분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가을동화>는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설정을 통해 배다른 오누이 간의 사랑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일간지 사회면 기사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사건이다. 반면 <겨울연가>는 1인2역 이복남매·이복형제 등 온갖 복잡하고도 비현실적인 설정이 난마처럼 얽혀 있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국경을 넘어가면 다른 잣대로 평가받는다. 현실성이라는 것도 그 배경인 대한민국의 현실이 기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실을 치밀하게 반영한 드라마라 하더라도,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나라 시청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반면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라 하더라도 해당 드라마가 지닌 미학적 가치가 숭고하고 이상적인 사랑을 그린다면, 오히려 시청자들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어차피 다른 나라 이야기이니, 마음 놓고 사랑의 판타지에 빠져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흔히 현실적인 드라마가 더 보편적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현실과 무관한 판타지형 드라마가 더 보편적일 수 있다.

최근 한류 열풍에 기대어 일본·중국 등 해외 시장만을 겨냥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어설픈 기획을 내놓는 일이 빈번하다. 이같은 ‘도박형 기획’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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