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낙마 파동은 청와대 책임”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2.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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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 44.3% 지적…“장대환씨 인준 부결은 잘된 일” 46.5%



두번에 걸친 국회의 총리 인준 청문회가 모두 부결로 끝났다. 임명권자인 김대중 대통령과 여권은 심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이후 여야는 계속 대치 중이다. 청와대는 후임 총리서리를 다시 임명하겠다고 했고, 한나라당은 그럴 경우 대통령 탄핵까지 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시사저널>은 최근 이와 관련한 국민들의 여론을 들었다. 장 상씨에 이어 장대환 총리 지명자도 국회 인준을 통과하지 못한 데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잘된 일이다’(46.5%)라는 응답이 ‘잘못된 일이다’(33.7%)라는 응답보다 높게 나왔다. 이는 대부분의 세대와 직업, 지역에서 비슷했다. 민주당 지지자나 호남 지역에서만 ‘잘못된 일이다’라는 응답이 높았을 뿐이다.


총리 지명자 국회 인준 부결에 따른 국정 파행의 책임 소재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김대중 대통령(24.8%)과 청와대 비서실(19.5%)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44.3%에 이르는 국민이 ‘청와대 책임’이라고 응답한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15.4%), 정치인 모두(5.3%), 민주당(4.4%)을 거론한 응답도 꽤 있었다. 이들 25.1%의 응답자는 ‘국회’가 국정 파행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답한 셈이다.


국회 청문회는 미국에서 수입된 제도다. 미국은 대부분의 의정 활동이 청문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인사청문회도 그 중의 하나인데, 대부분의 공직자가 이를 거쳐 임용된다. 그러나 미국 의회 인사청문회에서는 논란이 벌어지는 경우보다 임명에 동의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가령 과거 레이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 시절 12년 동안 공직자 60만여 명이 인사청문회를 거쳤는데, 이 중 97% 이상이 통과되어 임용되었다. 청문회가 형식적이기 때문에 통과율이 높은 것은 물론 아니다.





1991년 포드 상원의원 등 의원 5명은 ‘인사청문회 운영 개선에 대한 미국 상원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의회가 행정부로부터 지명자의 서류를 넘겨받아 인준 여부를 발표하기까지 걸린 평균 시간은 48일이다. 반면 우리 국회의 인준 절차는 10일 간의 사전 준비 기간과 이틀의 청문회로 모두 끝난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인사청문회가 무리 없이 진행되는 까닭은 정부가 협조하기 때문이다. 김수진 교수(이화여대·정치학)는 ‘인사청문회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이라는 논문에서 ‘(미국의 경우) 연방수사국의 기초 조사가 철저하게 진행되고, 또 이 자료를 그대로 상원에 넘겨줌으로써 상원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을 크게 단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정부와 의회의 협조 관계는 청문회가 미국식 전통으로 자리 잡았기에 가능한 대목이기도 하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의 임명권과 상원의 인준권을 똑같은 비중으로 존중하고 있다. 포드 의원 등의 보고서는 상원 청문회의 성격을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상원의) 조언과 합의’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우리 국회의 청문회는 조언과 합의 과정이 아닌 정쟁의 장이었다. 최근 두 차례 청문회는 도덕성을 잣대로 상대방을 흠집 내거나 방어하는 것으로만 일관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총리 없는 국정 공백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총리서리제를 고집하고 있다. 청와대 박선숙 대변인은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상 위헌’이라며 서리 임명을 다시 할 것임을 분명히했다. 현행 정부조직법(22조)은 ‘총리가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 순으로 직무를 대행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한 ‘사고’란 휴가·해외 출장·질병 등 일시적으로 총리 직을 수행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이 외의 상황에서 대행을 임명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 법제처의 해석이다.





‘서리제 논란’ 전에 정부조직법 손질했어야


하지만 한나라당뿐 아니라, 많은 법학자와 시민단체들은 빨리 총리대행을 임명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총리 사고’의 범위에 사임이나 사망으로 인한 궐위 상태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정부조직법을 융통성 있게 해석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경제 부총리가 총리대행을 맡아 국정 공백이 발생되는 것을 막는 한편, 총리 지명자는 지명자 자격으로만 청문회장에 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수진 교수는 “현재 국회의 임명 동의를 기다리고 있는 대법관 후보들이 대법원 재판 과정에 참여하고 판결하는 행위를 용인할 수 없다면, 동일한 원칙이 총리 후보에게도 적용되어야 마땅하다”라고 주장했다.


사실 정부나 국회가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이같은 논란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인사청문회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2000년 6월19일이며, 장 상 전 총리서리에게 처음으로 적용되었다(이한동 전 총리에 대한 청문회는 국회의 증언·감정 등에 대한 법률을 원용해 진행되었다). 당시 정부와 국회는 인준이 부결될 수도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정부조직법의 관련 조항을 개정했어야 했다. 그러나 두 기관 모두 이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 현재 국회에는 한나라당 강재섭 의원 등 21명의 제안으로 인사청문회법 개정법률안이 제출되어 있지만, 총리서리 제도에 대한 조항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정부조직법이 개정될 조짐도 아직 없다.


그렇지만 이번 인사청문회가 거둔 수확은 적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참여연대 김민영 시민감시국장은 “과거에는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가십거리로 취급되고는 했지만 그런 인사는 이제 통하지 않게 되었다”라면서, 대통령 스스로 인사를 개선하기 위한 시스템을 새로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사청문회의 유용성이 검증된 만큼 대상을 국정원장·검찰총장 등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인사청문회가 불러온 또 다른 순기능으로 총리의 위상 격상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총리는 사실 대통령이 임명만 하면 되는 ‘의전 총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국민적인 검증을 받아야 총리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 함부로 임명할 수도, 사임시킬 수도 없게 되었다. 한상희 교수(건국대·법학과)는 “총리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권위와 ‘말의 무게’가 실릴 것이고, 정부와 국회 사이의 조정자로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하기에 따라서는 명실상부한 ‘실세 총리’가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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