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도입 15년, 사춘기 지났다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6.07.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로 도입 15년/덩지만 성장, 성숙도 미흡…‘적자’인데도 구단 값 천정부지
 
롯데(실업팀) 감독이었던 박영길씨가 청와대에서 이상주 교육문화 담당 수석비서관을 만났다. 때는 81년 6월의 어느날. 최순영 당시 축구협회장도 함께였다. 동남아를 순방하던 전두환 대통령이 귀국하는 대로 프로 스포츠 창설에 관한 보고를 하기로 한 이수석이 두 사람을 불러들인 것이다.

이수석(현 울산대 총장)은 서울대 교수 시절부터 시민과 학생 들이 정치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보아온 인물. 그는 정치 외의 화젯거리로 프로 스포츠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따라서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 스포츠인 프로 야구 출범을 두고 벌어졌던 우민화 정책 논란은 상당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똑같은 시기에 제안을 받고서도 야구가 축구에 앞서 프로화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야구의 경우 이미 70년대 초에 한 재미 교포가 프로화를 시도한 바 있었던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야구계가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도 출범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축구협회는 프로 축구 출범을 위해 정부 지원금 1백39억원을 요구했다.

 
문화방송(MBC)은 82년 프로 야구 출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비록 전두환 대통령이 못마땅하게 여기긴 했지만, MBC 청룡이라는 구단을 만들어 직접 경기에 참여했는가 하면, 출범 첫해 프로 야구 경기를 독점 중계하기도 했다. 때마침 시작된 컬러 방송을 통한 MBC의 중계가 프로 야구 정착에 큰 몫을 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시 MBC 사장이던 이진희씨는 프로 야구 출범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정작 ‘프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82년 1년 간의 독점 중계 계약을 따내면서, 각 구단에 텔레비전 중계료를 내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프로 스포츠 산업에서 텔레비전 중계권료가 주요 수입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주문은 황당한 발상이었던 셈이다.

상황이 뒤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3년 후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는 중계권료 협상에서 한국방송공사(KBS)와 MBC에 각각 3억원씩 중계권료를 요구했다. MBC에 뒤이어 83년부터 프로 야구 중계에 나선 KBS는 이 요구가 지나친 것으로 보고 응하지 않았다. 결과는 KBS측의 판정패. KBS는 프로야구위원회가 MBC와 6억원에 독점 계약을 맺자, 뒤늦게 MBC에 3억원을 지불하고 ‘재하청’을 따내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매스 미디어·프로 스포츠, 천생연분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방송사들은 더욱 불리해졌다. 92년 협상 당시 프로야구위원회는 방송사들이 중계권료 인상에 합의해 주지 않자, 중계권을 공개 입찰하거나 중계권 수입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방송사들이 뜨끔했던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사들이 프로 야구 중계로 백억원 이상의 광고 수입을 올리면서 중계권료로는 얼마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프로야구위원회의 불만이었다. 그 결과 82년 고작 2억8천8백만원이던 프로 야구 중계권 수입은 80년대 말에 들어서면서 10억원대를 돌파했다.

1870년대로 거슬러올라가는 프로 스포츠 역사에서 매스 미디어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신문이나 라디오가 없었다면, 당시 프로화한 야구와 미식축구가 대중에 뿌리 내리기 힘들었을 것이고,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텔레비전이 신문과 라디오의 위치를 대신했다는 것만 빼면. 성균관대 대학원 체육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강우씨는 그의 논문에서 스포츠 문화를 ‘매스 미디어를 통해 위로부터 주어지는 문화’라고 규정한다(<한국 스포츠의 지배이데올로기적 기능에 관한 연구>). 그에 따르면, 프로 스포츠 산업은 미디어로부터 경제적 원조가 없으면 살 수 없고, 미디어는 스포츠가 폭넓게 대중에게 파고들고 있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해 스포츠 중계 프로그램을 광고주들에게 판다. 따라서 이 둘 간의 관계는 프로 스포츠 산업이 얼마나 뿌리를 내렸는지를 파악하는 데 절대적인 관건이 된다.

 
국내 프로 스포츠 산업의 서막 자체가 두 방송사의 경쟁에서 오른 면도 크다. MBC가 프로 야구를 성공적으로 출범시키고 이를 독점 중계하자, KBS는 프로 야구 외의 모든 스포츠를 독점할 태세였다. 83년 프로 축구 창설을 주도하면서 ‘슈퍼리그’를 시작했고, 씨름도 프로화했다. 비록 프로화는 되지 않았지만 배구 경기도 정리해 ‘백구의 향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프로 축구의 경우 역시 출범 때부터 독점 중계해온 KBS의 아성이 9년째 되던 92년에 무너지고 MBC와 서울방송(SBS)이 가세해 세 방송사가 각각 3억원·1억5천만원·1억5천만원씩 중계권료를 내게 됨으로써, 힘의 논리에서 프로 축구 산업이 미디어를 압도하게 되었다. 민속 경기면서도 별로 각광을 받지 못했던 씨름 역시 방송의 덕을 단단히 본 경우에 속한다. 씨름은 프로로 바뀐 후 KBS가 이를 독점 중계하기 시작하면서 단연 인기 종목으로 떠올랐다.

방송 시간 맞추려 쇼·노래로 경기 늦추기도

따라서 시청자들이 텔레비전 스포츠 프로그램을 얼마나 열심히 보느냐가 프로 스포츠 산업이 성장하는 관건이 되기도 한다. 올 연말까지 프로 농구를 출범시키려는 한국농구연맹(KBL)설립준비위원회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텔레비전 스포츠 프로그램 주간 평균 시청 시간이 3.25 시간에 달해’ 농구 같은 인기 스포츠의 프로화 여건이 갖춰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프로 스포츠 산업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텔레비전 스포츠 중계를 후원하는 광고주들이다. 현재 다른 텔레비전 광고물이 3개월 단위로 판매되는 데 반해, 스포츠의 경우는 연간 단위로 판매된다. 방송 광고를 판매하는 한국방송광고공사는 ‘연간 스포츠, 한번 잡으면 1년이 편안합니다’라는 케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광고주들을 잡고 있는데, 인기가 높은 편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 최영호 홍보부장은 “스포츠 중계 프로그램은 평균 단가가 다른 프로그램의 70% 수준인데, 시청률은 뒤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라고 말한다. 이 기관이 집계한 스포츠 방송의 연간 평균 시청률은 서울 기준으로 현재 8.2%이다. 일요일 낮 시청률이 제일 높고, 중계 경기 수는 농구·축구·배구·야구 순이다.

상황이 모두 프로 야구·축구·씨름 같은 것만은 아니다. 프로 레슬링과 함께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프로 복싱의 경우는 방송사측이 중계를 거부해 어려움을 맞고 있다. 프로복싱계의 처지에서 보면, 방송사측의 중계권료가 없으면 대전료를 확보하기 어려워 경기 자체를 성사시키기가 곤란하다. 반면 프로 복싱 경기에 대한 시청률이 예전 같지 않고, 따라서 광고 수입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방송사의 처지이다. 프로 골프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해, 상금이 50만달러나 되는 국제적인 규모의 골프 대회를 치르면서도 주최측이 오히려 방송사에 중계료를 지불하는 실정이다.

프로 씨름도 초창기에는 방송사로부터 홀대를 받았다. 84년 6월 열린 대회에서는 방송사의 중계 시간에 맞추기 위해 중량급 경기 시간이 20여 분간 늦춰지기도 했으며, 결승 경기를 중계 시간에 맞추기 위해 느닷없이 쇼나 가수들의 노래로 시간을 끄는 일도 적지 않았다.

프로 스포츠 산업이 정착하면서 종목 간에도 점차 승자와 패자가 등장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되어 프로 스포츠 산업 내에도 유망 업종과 사양 업종이 두드러지게 될 것으로 본다. 각 프로 스포츠 단체에 등록된 선수의 수를 가지고 그 경향성을 예측한 자료(고영준, <경제 발전에 따른 스포츠 종목의 실태와 전망에 관한 실증적 연구 designtimesp=27901>)에 따르면, 프로 복싱은 사양 산업에 해당한다. 급성장이 예상되는 종목은 프로 골프. 아직 텔레비전 중계 시청률이 야구·축구·씨름·농구 같은 주력 업종에는 뒤지지만, 프로 골퍼는 급증하는 추세다(위 도표 참조).
프로 스포츠 산업의 성숙도를 재는 또 하나의 잣대는 각 구단의 재정 자립도다. 현재 각 구단이 경영 상태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통계는 구할 수 없으나, 프로 축구와 프로 씨름의 경우는 약간의 흑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장 잘 정착되었다는 프로 야구는 오히려 적자 상태다. 구단 지출은 선수 연봉과 구단 직원 인건비, 운영비가 많이 나가는 데 반해 수입은 거의 관객 입장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세금 전용해 야구단 운영하는 셈


입장객이 많은 롯데와 LG를 제외하고 입장료 수입만으로는 선수단 연봉도 충당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구단이 매년 50억∼90억원 가량을 쓰면서, 20억∼50억원까지 손해를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산술적인 계산에는 약간의 허점이 있다. 구단을 가지고 있는 재벌 계열 회사들이 내는 지원금이 그것이다. 대개 흑자를 내는 계열 회사들이 프로 야구 구단에 지원하는 돈은 불우이웃돕기나 자선단체에 내는 기부금에 준해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다. 그러니까 세금으로 써야 할 돈을 전용해 야구단을 운영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게다가 구단을 운영하면서 생기는 홍보 효과는 얼마나 큰가(실제로 프로 야구 팬들은 해태가 10대 그룹 에 든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 때문에 프로 야구 구단의 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가장 최근에 팔린 태평양 돌핀스(현 현대 유니콘스)의 값은 정확히 4백70억원. 두 달에 걸쳐 4백억원을 지불하고, 70억원에 달하는 태평양그룹의 빚을 대신 떠안는다는 조건이었다. 92년 정주영 명예 회장이 대선에 낙선한 후 그룹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프로 스포츠 산업에 적극 뛰어들기로 한 현대그룹으로서는 그나마 이런 값에 사게 된 것도 감지덕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94년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 인수를 추진할 때 현대에 제시된 조건은 현금 4백억원에, 무주 리조트에 97년 유니버시아드용 선수촌 2동을 무상으로 지어 달라는 것이었다. 도합 8백억원. 현대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현대그룹이 사들인 태평양 돌핀스 구단은 85년 삼미그룹이 청보에 넘길 때만 해도 60억원에 불과했다. 청보는 이 구단의 빚 60억원을 대신 갚는다는 조건으로 샀던 것이다. 88년 태평양그룹이 청보로부터 다시 이 구단을 사들일 땐 오히려 값이 깎여 50억원. 그러던 것이 5백억원을 호가하게 되었으니, 프로 야구 출범 당시 인천 연고 구단으로 지목되기도 했던 현대그룹으로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대한체육회 회장으로서 서울올림픽 유치에 정신이 없어, 프로 야구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현대그룹은 LG에 앞서 서울이 연고인 MBC 청룡 구단 인수를 제의 받기도 했었다. 당시 가격은 1백50억원. 이때까지만 해도 현대그룹은 마치 보통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프로 야구 구단이 갖고 있는 무형의 재산을 간과하고 그저 부실 기업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현대그룹이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뒤로 프로야구계에서는 한 구단의 최저가가 4백억원으로 굳어진 인상이어서, 대우그룹과 쌍방울그룹 간의 쌍방울 레이더스 인수 협상에서 또 한번 최고가가 갱신될 전망이다.

숨막히는 승부의 세계를 너무 삭막한 경제 논리로 풀어 썼다고 불만일 프로 스포츠 팬들에게 드리는 충고 한마디. 본부석 근처 좌석 밑의 광고(가로 10m, 세로 1m)는 1억5천만원, 야구 선수가 날린 공이 때린 외야 담장의 광고(가로 6.3m, 세로 1.8m)는 7천만원. 이런 식으로 운동장이 온통 돈투성이라는 점을 늘 상기하시라. 훨씬 더 짜릿해질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