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인색한 한국 프로 스포츠 구단
  • 이종남 (<스포츠 서울> 야구부장) ()
  • 승인 1996.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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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 비하면 한국 구단은 ‘구멍가게’…승산 보고 거액 투자하느니 ‘안전빵’으로 그룹 홍보에 만족
 
박찬호·선동렬 등 야구 스타들의 해외 진출에 따라 ‘한 마을로 좁혀진 지구촌’의 의미가 한층 실감나게 다가온다. 이를 계기로 한·미·일의 프로야구계를 경제 면에서 비교해 보기로 하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연봉이다. 91년 연봉이 억대에 올라섰던 선동렬은 올해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로 진출해 1억5천만엔이라는 엄청난 연봉을 움켜쥐었다. 이는 주니치팀의 선발 에이스를 능가하는 최고 대우로서, 한국의 국보급 투수를 모셔가는 데 맞춤한 예우였다.

씀씀이로 보면 한국에서의 1억5천만원이나 일본에서의 1억5천만엔이나 엇비슷하다고 하지만, 선동렬이 일본에서 연봉을 몽땅 소비하는 것이 아니므로 11억원을 벌어 오게 된다. 이는 국내에서 거의 10년 벌 것을 단 1년에 벌어들이는 셈이다.

LA다저스 박찬호를 보자. 94년 1월 백만달러(8억원) 계약금을 받은 그는 올해 마이너리그 선수로 3만6천달러(2천8백80만원), 메이저리그 선수로 12만6천달러(1억원)라는 이원 계약을 맺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락가락하는 경우라면 날수를 따져 연봉 산출이 달라지는 것이다. 다행히도 시즌 오픈 직전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메이저리그 엔트리에 들어간 그는 한 번도 마이너리그로 밀려나지 않고 제 몫을 해내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억대 연봉이란 선동렬 외에 여느 선수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성역’처럼 보이기만 했는데, 올해는 무려 7명이 억대 연봉 선수로 등장했다. LG 트윈스 김용수와 이상훈, OB베어스 김상진, 삼성 라이온스 김상엽, 해태 타이거스 조계현(이상 투수)에다 한화 이글스 장종훈, 쌍방울 레이더스 김기태(이상 타자) 등.

과거 선동렬이 아홉자리 숫자 연봉으로 올라서기까지 기울였던 노력이나 쌓아올린 공적과 비교하면 이들은 한결 수월하게 억대 연봉을 받게 된 느낌이 없지 않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아마추어 현대 피닉스 창단과 더불어 ‘툭하면 억’하는 신인들의 몸값 상승에 따른 기존 선수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보전해 준다는 의미도 담겨 있고, 선동렬이 대번에 10억원을 넘어서는 연봉을 움켜쥐자 국내에서도 간판급 선수라면 억대 연봉을 쥐어주어야 모양새가 괜찮아진다는 구단들의 판단도 작용했다.

 
프로 경력 12년인 선동렬의 11억원, 미국 진출 3년째인 박찬호의 1억원, 그리고 현재 국내 최고 연봉 선수인 김용수의 1억1천만원. 일반 월급쟁이가 보면 부러움을 감출 수 없는 수입들이지만 외국의 톱스타들과 비교해 보면 이 또한 하품이 나온다.

메이저리그 고액 연봉 5걸을 살펴보면 뉴욕 양키스의 데이브 콘이 6백50만달러(52억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그레그 매덕스가 5백60만달러(44억8천만원), 보스턴 레드삭스의 로저 클레멘스와 신시내티 레즈의 호세 리호가 5백50만달러(44억원), 그리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톰 글래빈이 5백12만달러(41억원) 순이다.
일본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오치아이와 미국인 용병 셰인 맥이 나란히 3억8천만엔(28억5천만원), 같은 요미우리의 사이토는 2억7천만엔(20억원), 세이부 라이온스의 기요하라가 2억3천만엔(17억원), 인기 절정인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이치로와 세이부의 사사키는 각각 2억엔(15억원)을 받는다. 선동렬의 1억5천만엔은 일본내 순위 16위에 해당한다.

메이저리거들의 평균 연봉은 1백23만5천달러, 9억8천8백만원에 달하는 액수다. 구단별 평균 연봉을 보면 41만달러(3억2천만원)에 불과한 몬트리올 엑스포스 같은 싸구려 팀도 있지만, 뉴욕 양키스의 경우에는 2백만2백71달러(16억원)나 되고, 28개 구단 중 평균 연봉이 백만달러가 넘는 팀이 18개에 달한다. 일본은 외국인 선수를 뺀 1군 선수 3백2명의 평균 연봉이 4천7백37만엔, 3억5천만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1, 2군을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만큼 1군 선수들만의 평균 연봉을 뽑아내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한국야구위원회에 등록된 총 4백77명의 평균 연봉은 2천9백90만원. 외국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메이저리그는 선수들을 부자 만들어 주느라 볼 일 못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실제로 선수 연봉이 많아서 못해먹겠다고 아우성치는 구단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남는 장사’가 아니고서는 야구라는 사업을 그렇게 오래 붙들고 늘어질 턱이 없다. 유감스럽게도 메이저리그 구단의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는 한 번도 발표되지 않고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기 때문에 전체 경영 규모는 파악할 수 없지만, 뉴욕 양키스를 예로 들어 말한다면 선수들에게 5천만달러(4백억원) 연봉을 주고, 선수들을 전세 비행기로 이동시키고,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구단 임직원의 월급을 주고, 구단 사무실을 운영하고 그밖에 온갖 잡비와 경상비를 지불하고도 남는 장사를 한다. 94년 장기 파업이 일어났던 이유도 구단이 떼돈을 벌면서 선수들의 연봉을 깎으려고 벌벌 떨어 선수 노조가 반발했기 때문이다.

관중에 승부 걸면 서울·부산·대구 사업성 있다

그들의 수입은 입장료, 식음료 및 기념품 장내 판매, 주차장 사용료, 그리고 텔레비전 중계권료로 크게 나뉜다. 관객 동원에 성공을 거두는 인기 구단들은 입장료 등을 포함한 장내 수입으로 모든 인건비와 경비를 충당하고 텔레비전 중계권료는 고스란히 챙긴다는 보고가 있다. 중계권료만 해도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이다. 물론 각 구단이 본거지로 정한 도시의 인구, 시장성에 따라 계약액은 달라진다.

방송사는 돈이 흥청망청 남아돌아 구단에 거금을 안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야구 경기의 구조상 이닝 교체 또는 투수 교체 등 틈나는 대로 광고물을 대량 삽입해, 중계권료 등 제작비를 내주고도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야구에서는 텔레비전 방송사가 구단을 죽이고 살리는 권한을 갖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미국 프로 야구단이 수익을 추구하는 대기업이라면, 거기에 비해 국내 프로야구단은 구멍가게식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돈을 많이 쓰는 구단이라고 해보았자 연간 예산이 1백20억원 정도인데, 양키스에 비한다면 중간급 선수 7명에게 연봉을 주고 나면 거덜나는 셈이다.

그렇다고 국내 구단들이 프로 야구의 시장 규모를 키우고 흑자로 전환하는 방법을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수용 능력 5만명인 자기 구장을 마련하고, 연간 1백50만명 정도 관중을 동원해, 거기서 각종 식음료와 기념품을 팔고 중계권료를 독자적으로 계약해 수입을 보탠다면, 적어도 서울과 부산에서는, 어쩌면 대구에서까지 흑자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구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2천억원 안팎의 투자가 필요하다. 장삿속이 밝은 구단주들은 금리(3백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려야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연간 10억원을 남기기도 버겁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매년 50억원 내외의 적자가 나더라도 현재와 같은 ‘그룹 홍보용’으로 놓아두는 편이 훨씬 낫다는 의식이 강하다. 과거에는 관계 법령이 미비해 자기 구장을 지을 수 없다는 변명거리라도 있었지만, 막상 지을 수 있는 길을 뚫어 놓으니까 ‘멍석 펴놓으니 하던 짓도 안한다’는 꼴이 되고 말았다.

바로 이것이 프로야구단을 수익성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운영하는 미국과 다른 점이다. 일본은 그 중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팀 이름을 도시 이름으로 하는 미국, 기업 이름으로 하는 한국·일본의 구단 경영 마인드가 다른 점이 거기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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