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뻗은 서해대교 · 영종대교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0.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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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견디는 최첨단 복합 설계 ···
‘장대(長大) 교량’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11월에 서해대교와 영종대교가 잇달아 개통한 데 이어, 부산 앞바다와 남해에서는 2002년 완공을 앞둔 길이 7.4km짜리 광안대교와 4.3km인 삼천포대교가 한창 공사 중이다.

이 가운데 7.3km인 서해대교는 한국에서 가장 길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아홉 번째로 긴 다리이다. 4.4km인 영종대교는 길이로는 평범한 장대 교량이지만, 세계 최초로 건설된 3차원 케이블 자정식 현수교인 데다 도로와 철도 병용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두 다리를 성공적으로 개통함으로써 한국은 토목공학 강국으로 발돋움할 발판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첨단 기술을 동원했을 뿐만 아니라 건설 과정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종대교 공사 현장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소속 토목공학자들을 비롯한 세계 각국 엔지니어들이 수시로 견학하고 돌아갔다. 한국도로공사 권영주 부장(건설3부)은 “토목공학은 경험이 자산이고 노하우이다.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두 다리를 성공적으로 건설함으로써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라고 평가했다.

서해대교는 1993년 첫 삽을 뜬 이래 6천7백여억원을 들여 7년 만에 완공했다. 한국도로공사가 주관하고 대림산업(주)과 LG건설(주)이 시공했다. 영종대교는 신공항하이웨이(주)가 지휘해 삼성건설·코오롱건설·한진건설·동아건설 등이 5년 동안 8천1백억여원을 들여 건설했다.

서해대교와 영종대교는 모두 바람이 거세고 조수 간만의 차가 9m 이상인 바닷길을 가로질러 세워졌다. 또 수심이 깊어 30m 가량 물밑에 교각을 세웠다. 두 다리 모두 주탑 기초를 해저 암반에 고착시키는 과정이 난공사였다. 60층 빌딩 높이와 맞먹는 서해대교 주탑을 시공할 때에는 5개월 동안 매일 24시간 내내 콘크리트를 타설했다.

영종대교 공사 현장에서는 수심이 깊고 유속이 빠른 점을 극복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무인 굴착식 뉴매틱케이슨 공법을 적용했다. 뉴매틱케이슨공법은 가물막이(공사 현장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임시로 치는 울타리)가 필요없고 안정적이어서 영종대교 현장과 같은 곳에서 주탑 설치 때 이용하는 기초 공법이다. 1923년 일본 간토 대지진 때 무너지지 않은 구조물의 대부분은 뉴매틱케이슨 공법으로 기초 공사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심해에서 작업해야 하는 이 기초공사법은 잠수병을 초래하기 때문에 잘 이용되지 않았다. 영종대교 현장에서는 뉴매틱케이슨 공법의 이러한 한계를 극복했다.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 원격 조정 방식으로 로봇을 동원해 굴착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공사 기간 5년 동안 현장에서 부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서해대교는 사장교와 일반 교량 형식(F.C.M·P.S.M)을 조화시켜 건설했다. 영종대교는 현수교와 일반 교량 형식인 트러스교와 강상형교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복합적으로 설계한 까닭은 다리의 길이나 교각의 위치에 따라 드는 돈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육지와 닿는 부위는 강상형교나 P.S.M교로 시공할 때 훨씬 경제적이고, 교각 사이를 넓히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는 트러스교가 경제적이다.
교각 사이로 5만t 선박이 지나고

교량 형식이 복합적인 서해대교와 영종대교의 ‘얼굴’은 사장교와 현수교 구간이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이기 때문에 다리 사이로 대형 선박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특별한 교량 형식을 도입했다. 다리 교각 사이의 경간을 길게 하는 데는 현수교나 사장교가 제격. 두 교량 형식 모두 상판이 교각 위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두 개의 기둥과 연결된 케이블에 의해 공중에 매달리기 때문에 교각을 촘촘하게 놓지 않아도 된다.

사장교는 주탑에 경사지게 설치된 사장케이블이 상판의 하중을 지지하고, 현수교는 주케이블에 수직으로 매달린 행거로프가 교각을 대신해 힘을 받쳐준다는 점이 다르다. 계곡과 계곡 사이를 연결한 구름다리가 현수교의 원형이다. 사장교가 빗살무늬로 씩씩하고 남성적인 미를 과시한다면, 현수교는 기와지붕처럼 잘 빠진 곡선미로 우아함을 자랑한다.

서해대교는 사장교를, 영종대교는 현수교를 선택했다. 일반적으로는 길이 1km 이내의 구간에선 사장교를 선택하는 것이 경제적이기 때문에 영종대교도 사장교 형식을 도입할 환경이었다. 사장교는 현수교에 비해 공사비가 적게 들 뿐만 아니라 장력 조정이나 노후 교체가 쉬워 1km 이내의 구간에서 애용되는 장대 교량이다.

그러나 영종대교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한국의 첫 관문이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선이 아름다운 현수교를 선택했다. 영종대교의 현수교 구간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푸른 바다 위에 기와 지붕이 떠 있는 모양이다. 시공사인 삼성건설 신현량 부장은 “공공 시설은 경제성뿐만 아니라 상징성과 조형미도 중요하다고 판단해 한국의 전통 문화를 부각할 수 있는 모양의 현수교를 채택했다”라고 설명했다.
서해대교와 영종대교는 모두 100여m 높이의 초대형 주탑 2개가 상판을 떠받친다. 서해대교 사장교 구간은 60층 빌딩 높이인 182m짜리 주탑 2개가 지름 18∼28cm인 강선 케이블 1백44개와 연결되어 상판을 지탱하고 있다. 교각 사이로는 5만t급 대형 선박이 지나갈 수 있다. 영종대교 현수교 구간에선 108m 주탑이 지름 5.1mm짜리 케이블 6천7백여개와 연결되어 다리 상판을 지지한다. 이 케이블은 승용차 6천2백대를 들어올릴 만큼 강하다. 현수교 교각 사이로는 만t급 선박이 통행할 수 있다.

사장교나 현수교 모두 교각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케이블에 의지해 공중에 떠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바람이 ‘천적’이다. 태풍이 불면 다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1940년 미국 북서부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건설되었다고 평가되던 현수교인 타코마 브리지가 초속 19m 바람에 무너졌다. 한국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도 1995년 태풍 페이에 타격을 입어 주케이블을 감싸고 있는 래핑 와이어가 풀어졌다. 영국에서는 지난 5월 밀레니엄 브리지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려서 개통 1주일 만에 폐쇄되기도 했다. 그만큼 케이블에 의지한 사장교나 현수교는 바람에 취약하다.

바다는 육지보다 풍속이 20% 더 빠르고, 건물 20층 높이에서는 해수면보다 1.5배 이상 강한 바람이 분다. 이 때문에 서해대교와 영종대교 지점에서는 육지 다리보다 3배나 강한 바람이 분다. 영종대교와 서해대교 시공사들은 무엇보다 바람 앞에 튼튼한 다리를 건설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서해대교는 초속 65m, 영종대교는 초속 60m 강풍에 100년 동안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 이 근방을 지나간 태풍의 최대 속도가 초속 30m를 넘지 않은 점에 비추면, 두 다리는 엄청난 태풍이 지나가지 않는 한 100년 동안은 안전한 셈이다. 게다가 영종대교는 국내에서 최초로 진동 실험을 해 바람에 대한 안정성을 보장받았다.

그렇다 해도 영종대교와 서해대교 모두 바람 앞에 선 등불의 운명을 비켜갈 수는 없다. 지난해 서해대교 공사 현장에서는 태풍 올가가 불어닥쳤을 때 초속 26m 강풍에 길이 60m인 가설 트러스가 50m 아래로 추락하는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 영종대교 현장에서는 공사 기간에 순간풍속이 최대 28m인 바람이 불어 공사에 애를 먹었다. 서해대교 주관사인 한국도로공사는 서해대교가 풍압에 잘 견디도록 건설하기 위해 1997년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팀에 의뢰해 모형으로 풍동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초속 38m로 폭풍이 불면 서해대교 사장교 구간의 상판이 34cm 가량 위 아래로 흔들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은 0.1cm의 진동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에 34cm로 흔들리는 다리에서는 정상으로 운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바람과의 전쟁 “유지 관리가 관건”

따라서 한국도로공사는 서해대교에서 바람이 초속 15m가 넘으면 차량의 속도를 낮추도록 지침을 세웠다. 초속 20m 이상일 때는 차량 통행을 제한할 방침이다. 영종대교에서는 초속 12m 바람이 불면 위층 도로 바깥 차선을, 20m 이상이면 위층 도로 전체를, 25m 이상이면 아래층 철도까지 통행을 제한한다. 물론 이 때는 공항도 폐쇄된다.

바람과의 전쟁에 대비해 서해대교와 영종대교 곳곳에는 풍향풍속계·처짐계·응력계·지진계·경사계 등 첨단 센서가 설치되어 있다. 서해대교에는 100여개, 영종대교에는 3백93개나 센서가 부착되었다. 신공항하이웨이 박현구팀장(특수교량팀)은 “다리에 부착된 센서들은 주변 환경에 따른 다리의 변화를 자동 체크해 계측 모니터링 시스템에 보낸다. 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라 보수나 대응책을 마련하면 다리를 오랫동안 유지 관리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토목공학자들은 ‘열 살짜리 꼬마가 10층짜리 건물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구조물이란 공진(모든 구조물은 조금씩 흔들리게 되어 있다) 때문에 피로가 누적될 경우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다리의 경우 연결 부위에서 피로 효과가 집중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성수대교도 연결 부위 시공이 불량해 누적되는 피로 효과를 견디지 못해 붕괴된 것이다.

장승필 교수(서울대·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는 영종대교나 서해대교 모두 설계대로만 시공되었다면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영종대교는 차량보다 무거운 철도의 통행에 기준을 맞추었기 때문에 행거와 케이블을 연결하는 밴드 지점에 피로가 누적되지만 않는다면 붕괴 위험은 크지 않고, 서해대교 역시 거센 풍압에도 잘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장교수는 “두 다리 모두 유지 관리가 관건이다. 언제 또 안전 불감증과 예산 부족 타령이 되살아나 유지 관리를 소홀히 할지 모른다. 이 점이 가장 염려스럽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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