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선거 감상법]보수 성향 퇴조…개혁이 ‘당선 수표’
  • 金在日 정치부장대우 ()
  • 승인 1995.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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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선거 감상법/정치에도 ‘소비자 주권’ 태동
‘세상이 변한 것을 모르는 부류는 정객과 관료뿐이다.’ 이는 최근 정계를 은퇴한 일본 자민당 소속 이시하라 신타로 의원의 말이다. 상당수 관료들이 거대한 관료 조직에 묻혀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다는 말은 일면 타당성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여론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이 세상 변한 것을 모른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정치인들은 정말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가. 이와 관련해 많은 정치 관찰자들은 국민의 정치 의식은 정치인보다 확실히 앞서 간다고 단언한다. 이시하라가 말한 세상의 변화란 바로 국민의 정치 의식 변화를 의미한 듯하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국민의 정치 의식과 성향, 그리고 정치적 요구는 빠르게 변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자신의 구태와 관성적인 타성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과거 민주 투사로서 투옥 경험이 있는 정치인은 세상이나 국민의식의 변화와 상관없이 자신의 민주화 투쟁 경력을 정치 상품으로 계속 부각하기 십상이다. 그것을 포기하는 것을 자신의 정체성 상실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현 시점에서 민주 투사로서의 이미지는 국민(유권자)에게 별로 어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 신조와 원칙 등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확고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되 유권자의 의식과 성향 변화, 그리고 그들의 요구를 민첩하게 파악함으로써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스타일을 ‘유권자 지향’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방자치 선거를 앞둔 유권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어떤 후보를 원하는가를 알아보자. 이는 6월 선거 감상법이 될 것이다. 91년 지방의원 선거, 92년 총선과 대통령 선거 등을 통해 후보자 선택 요인이 어떻게 변했나 분석해 보면, 정당보다는 인물 혹은 경력 위주로 후보를 선택하는 추세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표2 참조). 또 정치적 욕구보다는 일상적 이해에 의한 후보 선택과 정책 지향적인 인물을 선호하는 경향을 읽을 수 있다. 이번 6월 지방자치 선거에서는 이같은 경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최대 변수는 20~30대 유권자

89년부터 92년 대통령 선거 때까지 한국 사회는 보수화 경향을 보였다(표3 참조). 그러나 이번 6월 지방자치 선거를 통해서는 국민의 요구가 질서 속의 변화 내지 개혁을 추구하려는 쪽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정치광고 대행사인 파이론의 최병윤 사장은 “87년 6·29 선언에 이은 극렬한 노사분규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동안 사회적 흐름이 안정과 질서 쪽으로 자리잡혀 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지방자치에 대한 기대치 때문에 변화와 개혁을 선호하는 쪽으로 나타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코리아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도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응답자의 대다수는 시장·도지사를 뽑을 때 후보의 투철한 개혁 의지가 중요하다고 응답했다(매우 중요 67.5%, 약간 중요 22%).

이번 지방자치 선거와 관련한 여러 여론조사들은 행정 경력을 가진 후보와 그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한 경험이 있는 후보를 압도적으로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 있다. 지난 12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장·도지사 후보의 바람직한 직업이 지역사회 운동가(40.5%) 정치인(28.4%) 행정 관료(17.9%) 기업인(8.5%)의 순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행정 관료 출신이 단연 첫 번째로 꼽힌다. 이는 곧 유권자의 심리 변화와 함께 여권이 ‘행정 선거’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음을 뜻한다.
6월 선거에서의 중요한 변수는 전체 유권자의 60%에 달하는 20~30대 유권자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이다. 전국적으로 부동층 내지 무당층은 50%가 넘고, 선거 3일 전까지도 40% 선을 유지한다. 결국 이들 부동층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공략하느냐가 선거의 향배를 가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30대는 근본적으로 어느 당파에도 속하기를 거부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들 젊은층이 최근 일본 선거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느냐도 관심거리다.

흔히 20~30대를 싸잡아 젊은층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20대와 30대의 정치 성향은 확연히 다르다(상자 기사 참조). 따라서 선거 전략도 20대와 30대를 분리해서 세워야 한다. 20대의 여야당 지지율에 대해서는 여론조사에 따라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 그들은 이른바 신세대로 지역 감정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고, 탈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다. 격동을 겪지 않은 그들은 정치적 선택에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이다. 정책이나 정당보다는 인물 위주로, 그것도 후보의 과거 경력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이벤트성·스타성 인기인과 젊은 정치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후보가 자신의 반독재 투쟁 경력을 내세워 20대를 공략하려고 한다면 잘못이다.
구태의연한 선거운동 안통해

정치광고 회사인 서울 미디어의 전성환 사장은 “후보들은 젊은층 공략 대상을 20대 중심으로 할 것인가, 30대 중심으로 할 것인가를 잘 판단해서 방향을 확실하게 잡고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특히 20대의 투표 행태는 영상 매체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텔레비전 토론과 광고에서 어떻게 멋있게 보이느냐가 그들의 투표 행위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으려면 중후한 면보다는 참신함과 재치, 개혁적이고 신선한 사고와 비권위적인 느낌을 주어야 한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유력한 조 순 후보는 이같은 측면을 고려해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텔레비전 쇼에 출연하는 등 ‘60대 청년’의 인상을 심기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

나이가 60대 중반인 한 도지사 후보는 참모로부터 하얀 티셔츠를 입고, 자전거에 ‘나의 사랑 ○○도’라고 쓴 빨간 깃발을 꽂고 다니며 길거리에서 젊은이들과 토론하라고 권유 받았다. 참모는 그 후보가 구정치인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행정 경험이 없어서 20~30대를 끌어들이지 못하면 당선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 후보의 반응은 ‘그래도 도지사 출마자인데, 방정맞게 무슨…’ 식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 후보는 그 방식을 받아들였다. 구태의연한 방법으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비단 젊은층뿐만 아니라 전체 유권자에게 텔레비전 광고와 토론 그리고 가두 연설은 이번 선거전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6월 선거의 쟁점은 흔히들 말하는 행정 선거인가, 정치 선거인가가 아니라 효율이냐, 아니면 균형·견제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장·도지사 선거에 대해 전체적으로 47% 대 24%로 여당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그러나 여당 후보 지지를 통한 행정의 안정보다는 야당 후보를 뽑아 중앙 정부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43.5% 대 30.4%로 높게 나타났다. 이번 지방자치 선거는 지역 살림꾼을 뽑는 행사라며 YS 정권 중간 평가이기를 거부하는 여권의 의도와는 달리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게 됐다. 각 지역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절대 다수가 이번 선거를 중간 평가로 보고 있으며, 그런 생각을 가지고 표를 던질 것임을 분명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의 또 다른 특징은 신지역주의의 대두다. 호남은 말할 것도 없고, 대구·경북 지역 정서의 이반 현상과 충청 지역에서의 JP 바람으로 여당의 지지 기반은 상당히 잠식 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대구·제주·충북·서부 경남 등 지역에 따라 무소속 바람이 어느 정도 일 것으로 전망된다. 호남, 부산·경남, 충남 등 ‘특수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대체로 여권 성향의 유권자는 30% 안팎이고 야권 성향 유권자는 25% 정도다. 정치 조사 전문회사인 A&T 커뮤니케이션스의 김교흥 사장은 여당 지지 유권자의 정치적 성향은 보수와 안정적 성향으로, 연고·이미지·인물 등이 그들의 의사 결정요인이라고 말한다. 반면 야당 지지 유권자는 변화와 개혁 지향적이며 메시지·이슈·정책 대안을 고려해 의사를 결정한다.
지역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개는 교통·환경 등 생활 편의와 관계되는 문제와 행정의 투명성 등이 선거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구청장·시장·군수는 행정 경험이 많고 지역 사정에 정통해야 하며, 도지사는 행정 능력뿐만 아니라 정치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엄밀히 말해 기초 단체장 선거의 경우 정치성과 별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군·구에 출마한 야당 후보들은 대부분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정치적인 이슈를 들고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6월 선거를 전망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통합선거법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다. ‘돈은 묶고 입은 풀었다’는 새 선거법 때문에, 조직을 움직일 뿐 아니라 매표를 하는 데까지 사용됐던 돈의 위력이 현저하게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관변 단체의 선거운동이 제한됨에 따라 여당의 프리미엄이 줄고, 시대 변화에 따라 과거 쟁점이 돼왔던 민주 대 반민주 선거 구도도 사라져 야당이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려운 환경이다.

정치 신인 등장은 쉽지 않을 듯

선거 때마다 거리를 뒤덮었던 선거 홍보물 대신 곳곳에서 후보자의 연설 소리가 진동할 것이다. 홍보물 가두 배포를 금지하는 대신 선관위가 각 가정으로 한꺼번에 우편 발송한 홍보물은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동시 실시되는 4대 선거 중 한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를 5명씩만 쳐도 20명이 되고, 각자가 4페이지씩의 홍보물을 제작한다고 할 때, 유권자들은 8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를 떠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전화 홍보가 허용됨에 따라 한 표를 호소하는 후보와 자원 봉사자들의 전화질 때문에 짜증을 내는 유권자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통합선거법에 따른 선거 환경을 보면, 후보자를 알릴 기회가 제한됨으로써 신인이 등장하기 어렵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이는 명망가들이 유리한 반면 선거를 통한 새로운 인재 발굴은 어렵다는 얘기다.

종합해 보면 6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출마자는 지역 현안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함께 과감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독자성 확보 능력과 새로운 변화를 선도할 참신성을 보여야 한다. 지방화 시대에 걸맞는 독자적인 업무 수행능력과 지역 개발 능력을 과시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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