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민’으로 거듭나는 IA 세대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4.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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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젊은이들의 오지랖이 넓어졌다. ‘운동’의 영역을 국제적으로 확장한 ‘IA세대’에게 제 3세계 문제는 남의 나라 불구경이 아니다. 이라크 사태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버마 민주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들
안영민씨(29·인터넷 아이디 ‘미니’)의 일터는 서울 광화문 근처다. 하지만 안씨는 탄핵 반대 촛불 시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안씨가 이른바 정치 무관심 세대인 것은 아니다. 그는 매주 화요일마다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팔레스타인 탄압을 비판하는 시위를 한다. ‘팔레스타인 평화연대’(www.pal.or.kr) 회원인 그는 홈페이지에 팔레스타인 소식과 사진을 올리고 모임을 꾸린다. ‘팔레스타인에게 자유를’이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는 안씨와 대화하는 동안 지구 반대편에 있는 팔레스타인과의 시·공간적 거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안씨는 이른바 ‘IA(International Activist ·국제평화운동가) 세대’의 전형이다. IA세대는 ‘운동’의 영역을 국제적으로 확장한 젊은 세대를 뜻한다. 이들에게 제3 세계 문제는 남의 나라 불구경이 아니다. 이라크 팔루자 학살 사건부터 팔레스타인 난민· 버마 민주화· 티베트 독립· 방글라데시 인권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관심사는 국경을 넘는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기각하던 지난 5월14일 저녁 6시께, 서울 광화문 네거리 가로수들은 노란 리본으로 물들었다. 탄핵 기각을 축하하는 노사모와 시민들의 집회가 열렸다. 주로 왕년의 운동권이었던 40대 시민이 많이 보였다. 같은 시각 건너편 교보문고 앞에서는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라크 평화네트워크’(www.iraqnow.org) 회원들이 집회 시작 전에 파병 반대 퍼포먼스를 벌였다. 검은 비닐과 천을 두르고 고문받는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수용자를 환기했다. 건너편 탄핵 축하 집회에 비해 군중이 적어 썰렁하기까지 했으나 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퍼포먼스를 준비한 이라크 평화네트워크 염창근씨(32)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한 평화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직전, 전쟁을 막기 위해 이라크로 날아간 평화운동가들을 후방에서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자신도 두 번이나 이라크로 출국을 시도했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운동 경력 때문에 번번이 출국이 금지되었다.

염씨는 “처음 양심적 병역 거부운동을 할 때는 이라크 문제를 잘 몰랐다. 병역 거부자들이 모여 같이 활동하면서 평화운동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이라크 문제에 빠져들었다”라고 말했다. 염씨 외에도 팔레스타인 평화연대의 은국씨(성을 쓰지 않는다)도 양심적 병역 거부운동과 국제평화운동에 동시에 참여하는 전형적인 IA세대다.
동남아시아 인권 문제까지 챙겨

이라크 사태에 비해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인권 문제도 IA세대는 놓치지 않는다. 지난 5월17일 서울 삼선동 ‘함께하는 시민행동’(www.ww. or.kr) 강당에서는 아체(Aceh) 지역의 인권 문제를 다룬 간담회가 열렸다. 인도네시아가 아체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한 지 1주년(5월19일)을 맞아 연 행사였다. 이 날 간담회에서는 아체의 비극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광주 5·18 24주기 관련 행사가 한창이던 바로 그 시각, 참석자들은 1년 전 벌어진 아체판 광주항쟁을 되새기고 있었다. 이들은 이날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전달할 성명서 초안을 만들었다.

간담회를 준비한 함께하는 시민행동 웹기획팀장 장상미씨(29)는 지난해 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5개국을 돌며 시민운동가들을 취재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장씨는 2001년 10월 시민단체 활동가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해 필리핀 빈민촌을 둘러보고 나서 동남아시아 문제에 뛰어들었다. 쓰레기로 둘러싸인 폐기장 위에 판잣집 짓고 사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장씨는 5월 인도네시아 아체 주간 행사에 이어 6월에는 버마 민주화를 위한 행사를 열 계획이다.

아체 문제 간담회에는 버마 사람인 마웅조 씨(35)도 참가했다. 그는 1999년에 발족한 시민단체 ‘나와우리’(www.nawauri.or.kr)의 도움을 받고 있다. ‘나와우리’는 버마 민주화와 베트남 지원 사업을 벌이는 활동가들의 단체다.
나와우리는 1999년 버마 독재 정권을 피해 한국에 들어온 버마민주동맹(NLD) 단원 샤린 씨가 강제출국 위기에 처하자 이를 막기 위해 한국 시민들이 청원 운동을 벌였다. 나와우리의 김규환씨(35)는 “샤린 씨 문제를 계기로 버마 독재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것이 버마 민주화운동으로 발전했다”라고 말했다.

나와우리 회원 이태호씨의 관심 지역은 베트남이다.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이 양민을 학살했던 마을을 찾아 진상을 규명하고 생존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요즘은 베트남 현지 시민단체인 ‘Good Will’을 돕고 있다. 이태호씨는 가슴 아픈 이야기 하나를 전해줬다. “지난해 4월 한국군에게 주민들이 학살당한 베트남 마을을 찾아간 적이 있다. 위령탑 건립 문제 때문이었다. 그 마을에서 전부터 알던 ‘짱’이라는 이름의 베트남 아가씨를 다시 만났다. 그때가 막 이라크 한국군 파병 논란이 있던 때였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는 30년 뒤에는 이라크로 가겠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5월19일 저녁 나와우리 회원들이 성공회대학에 모였다. 이 자리에는 베트남 호치민 대학에서 온 레 탄 동 씨(25)도 참석했다. 그는 “미국이 이라크 인권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하지만 거짓말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아픈 역사를 겪었기 때문에 잘 안다”라고 말했다. 성공회대에서 NGO론을 청강하고 있는 그는 베트남의 IA세대가 될 것이다.

“IA세대 키운 것은 8할이 이라크”

취재하다가 만난 여러 IA세대에게 공통적으로 던진 질문이 있다. “우리 문제도 해결해야 할 것이 많은데 한가하게 외국 문제에 신경쓰고 있다는 비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답은 간단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안영민씨는 “당신이 말하는 ‘우리’의 정의를 누가 내리느냐”라고 되물었다. 이들은 이미 세계 시민이었다. 나와우리 대표 노은희씨(44)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각 나라의 정치 문제가 알고 보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베트남에서 한국을 보고, 이라크에서 베트남을 본다”라고 말했다.
IA세대는 언제, 왜 생겨난 것일까? 나와우리 김규환씨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가 차츰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경제력이 향상되어 자신감이 생긴 것도 한 이유다. 성공회대 조효제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1997년 IMF 사태였다. 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만 열심히 한다고 잘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한반도 바깥에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사건은 이라크 전쟁이다.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개혁과 투쟁의 대상을 지구 전체로 돌리게 했다.”

386세대를 키운 8할이 광주였다면, IA세대를 키운 8할은 이라크였다. 국제민주연대 최재훈 팀장은 “이라크 전쟁 전에는 주변에서 ‘너는 왜 국내 문제보다 외국 문제에 더 신경쓰느냐’라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왜’라고 묻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한다.

1989년 시행된 여행 자유화와 배낭 여행 바람도 한몫 했다. 83학번인 나와우리 대표 노은희씨는 “우리 때는 외국에 나갔다 온 사람이 거의 없었다. 1980년대 운동 세대는 외국에 대한 시각이 좁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실시간으로 외국과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인터넷과 e메일은 IA세대의 투쟁 수단이다.

IA세대는 과거 386세대와는 여러 가지로 대조적인 특징을 보인다. 이들은 국내 권력 관계와 정치에 냉소적이다. 함께하는시민행동 장상미씨의 말이다. “선배들의 운동이 피부에 와 닿지 않을 때가 있다. 3월12일 대통령이 탄핵되었을 때 한 선배는 눈물을 글썽거렸고 또 다른 선배는 먹던 김밥을 텔레비전에 던졌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나는 함께하는시민행동이 탄핵반대국민행동에 참여하는 걸 반대했다.”
IA세대는 권위와 전체주의를 배격하고 자율성을 강조한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같은 경우 모임에 대표나 회장을 두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장상미씨가 속한 함께하는시민행동에는 국제 연대 부서가 없다. 함께하는시민행동 관계자는 “주로 장씨 개인의 역량과 관심에 맡긴다”라고 말한다. 나와우리 노은희 대표는 “가급적이면 활동할 때 ‘나와우리’라는 조직 이름을 내걸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또 오프라인 활동으로 세를 과시하기보다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기성 시민운동가들은 이들의 독립성을 부러워한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IA세대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름을 대면 다 알 만한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한 국제 연대 간사가 있다. 그는 ‘나의 뜻과는 달리 국내 사업에 동원되는 국제연대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큰 조직에서 일하는 한계다.”

반면 이라크평화네트워크 염창근씨는 “지난해 이라크 평화운동을 결산하면서 지나친 개인 행동을 반성하는 목소리가 많았다”라고 지적했다. 김규환씨는 “개인의 역량과 활동이 축적·정리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386에 비해 대중 동원력이나 추진력이 약하다는 한계도 있다.

IA세대와 386세대는 서로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낸다. IA세대인 안영민씨는 386선배들이 국제 문제에 관심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장상미씨의 다음과 같은 경험담은 흥미롭다.

3월20일 대학로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와 광화문 탄핵 반대 집회가 같은 날 열렸다. 파병 반대 집회가 훨씬 오래 전부터 예정된 행사였다. 당시 대학로에는 3천여 명이 모였고 집회를 마친 후 장씨 일행은 거리 행진을 하면서 종로를 지났다.
“모든 국제 문제는 국내 문제와 관계 있다”

시청 앞에서 장씨는 두 번 놀랐다. 첫번째는 엄청난 탄핵 반대 시위 군중을 보고, 두 번째는 순식간에 ‘파병 반대’ 피켓을 ‘탄핵 반대’ 피켓으로 바꾸는 주변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장씨는 “이 사람들이 탄핵을 반대하는 열정만큼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니 씁쓸해졌다”라고 말했다.

거꾸로 386 세대는 IA세대의 한계와 문제점을 꼬집는다. 1980년대에 학생운동을 했고 지금은 교육운동을 하고 있는 한 전형적인 386세대는 “386세대가 자기 희생을 밑천으로 했던 것과 달리, IA세대는 운동을 즐기면서 하는 것이 보기 좋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의 예를 들며 “우리처럼 끝장을 보겠다는 정신이 없다. 한번 추진한 일을 성취할 때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약한 것 같다”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IA세대의 세계 시민 마인드와 386세대의 추진력이 결합할 수 있기를 바랐다.

오랫동안 국제 연대 사업을 했던 한 활동가는 요즘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국제 활동가들을 위해 두 가지 조언을 했다. 첫 번째는 ‘맥주NGO’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스위스 제네바에는 각종 국제 회의를 기웃거리며 맥주집에서 명함 돌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활동가가 많다고 한다. 두 번째는, 영어 구사 능력과 활동가로서의 능력은 다르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이 국제 연대 사업을 좌지우지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학술 영역에서 시민운동 세계화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5월20일 한양대학에서는 NGO 국제화에 관한 세미나가 열렸다. 영국 런던 정경대학 헬무트 안 하이어 교수를 초청해 그의 저서 <지구시민사회>를 놓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이 책을 번역한 성공회대 NGO 대학원 조효제 교수는 “원래 국제활동가라는 개념은 없다. 국내 활동과 국제 활동의 인위적 구분은 옳지 않다. IA세대라는 말은 특수한 한국적 조건에서 쓰일 수 있는 단어일 뿐이다”라고 정리했다. 그 어떤 국제 문제도 국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조교수는 “지금은 IA세대가 이슈가 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국내 활동가와 국제 활동가의 구분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성공회대 NGO 대학원 조희연 교수는 “(IA세대 등장을) 386세대와의 대립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사회운동의 진화와 확장으로 볼 필요가 있다. 포스트 386세대가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는 현상이다”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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