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장정일 "자유는 싸워서 얻는 것"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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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장정일씨 보석으로 풀려나…“문학을 청소년 윤리로 평가해선 안돼”
법정에 선 작가 장정일씨(35)는 매우 단정했다. 평소 티셔츠나 점퍼 같은 캐주얼을 즐겨 입던 그는 아래 위 짙은 감색 양복 차림이었다.

지난 7월23일 저녁 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이틀 뒤인 25일 오전 서울형사지방법원 418호 법정에 섰다. 1심에서 변호인을 세우지 않았던 그는 항소심에서 강금실 변호사를 선임했다. 변론을 맡겠다는 강변호사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강변호사의 변호인 반대신문에 이어 정태학 판사가 물었다. “작품의 주제가 피고인의 주장과 같다 하더라도 표현 상에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장씨는 “예”라고 답했다.

지난해 10월 김영사에서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펴낸 직후, 당시 유학 중인 아내 신이현씨(소설가)와 함께 파리에 체류하던 장씨는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 및 기고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 왔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음란물이 아니라 그가 줄곧 추구해온 자기 모멸의 마지막 작품이고, 성인 문화가 청소년 윤리에 의해 제약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문학은 ‘바깥의 사유’이기 때문에 기존 억압적 가치와 전투를 벌이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젊은 작가와 문학 단체 등도 작가와 출판사에 대한 사법 조처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지난해 12월31일 자진 귀국한 그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지난 5월30일 징역 8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피고인이 반성하지 않고 있으며, 이미 출판사의 책임자(김영범 상무)가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고, <즐거운 사라>를 펴낸 작가 마광수씨와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사장(장석주)도 구속된 바 있기 때문에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법정 구속 사유였다.

“표현 자유 싸워서 얻는 것”

“17년 만에 들어가본 감옥은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어 있었다”라고 장정일씨는 말했다. 그는 18세 때 소년원에 잠시 들어갔었는데 그때 받았던 신고식이나 구타, 얼차려 같은 구습들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감옥 밖의 사회는 지난 17년 동안 얼마나 개선되었는가”라고 그는 반문했다. 그가 보기에, 표현의 자유에 관한 한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그는 최근 만화계의 이현세 파문이나 등급제 실시 이후 더욱 악화한 영화계의 표현의 자유 문제가 심각하다고 진단하면서 “표현의 자유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움을 통해 얻어진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55일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그는 몇 가지 반성을 했다. 그 중의 하나가 ‘격투기’였다. 그의 작품도 그렇지만 그의 성격도 격투기와 닮아 있었던 것이다. 자기 모멸을 통해 인간을 억압하는 권력[父性]을 공격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는 실제 생활에서도 불의나 부조리는 참지 못한다.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 유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라고 그는 말했다.

장정일씨의 집필 의도와 이 작품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강금실 변호사는 말했다. 즉 이 소설이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오락물이 아니라 기성의 가치에 반기를 드는 순수 문학 작품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겠다는 것이다. 강변호사에 따르면, 묘사의 음란성이 인정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음란물일 수 없으며, 특히 그 작가가 순수 문학 작가일 경우 집필 의도와 작품의 주제를 우선해야 한다.

장정일씨는 87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91년 <아담이 눈뜰 때>가 일본에서 번역되었을 때 <아사히 신문>이 사설에서 이 소설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그는 탁월한 희곡 작가이기도 하다. 동아연극상 수상 작가인 그는 지난해 공연된 자신의 희곡 <이디프스와의 여행>(김아라 연출)으로 서울연극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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