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황제' 미국의 세계 군사 전략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9.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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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대국 지위 지키려 유고 공습… 5대 지역 사령부 구성해 ‘世界軍’ 노릇
코소보 사태로 인한 나토군의 유고 공습을 보노라면 몇 가지 의문이 든다. 미국은 왜 유고를 마음대로 공습하는가? 도대체 유고가 미국의 국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기에 막대한 군비를 쏟아붓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미국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정치·외교적으로 한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는 주권국이다. 유엔 같은 국제 무대에서 모든 나라는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한다. 그러나 군사력의 세계로 들어가면 전혀 달라진다. 힘센 국가는 기업의 대주주와 같아서 세계 군사력의 25%만 가져도 ‘왕’으로 군림할 수 있다.

한국군에는 전투사령부가 있고 비전투사령부가 있다. 전투사령부는 육군의 1·2·3군 사령부, 해군의 해군작전사령부, 공군의 공군작전사령부처럼 직접 전투를 지휘하는 사령부이다. 비전투사령부에는 육해공군의 군수·교육 사령부와 국방부 직속 기무·정보·의무 사령부가 있다. 마찬가지로 미군에도 전투사령부(이를 통합사령부라고 한다)가 있고, 비전투사령부가 있다.

미국, 북한·이라크·중국 봉쇄에 주력

미군 통합사령부에는 지역을 중심으로 한 것과 기능을 중심으로 한 것이 있다. 유럽·태평양·대서양·남부·중동의 5대 사령부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령부이고, 전략·수송·특수작전·우주 4대 사령부가 기능을 중심으로 한 사령부이다(표 참조). 기능 중심의 통합사령부는 고유 임무를 수행하다가, 필요할 때는 지역통합사령부를 지원한다.

한국 화폐인 ‘원’화가 한국에서만 쓰이듯 한국군 전투사령부도 한반도와 그 인근을 책임 구역(AOR)으로 한다. 그래서 ‘국군(國軍)’인 것이다. 미국 ‘달러’화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 기구가 달러를 국제 화폐로 하자고 결의한 적이 없는데도, 미국내 통화 단위이면서 동시에 전세계 통용 화폐로 쓰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군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에 미국을 방어하는 ‘미국군’인 동시에 ‘세계군’ 역할을 맡게 되었다.

세계군 노릇을 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 지역 통합사령부이다. 5대 지역 통합사령부 중 가장 넓은 면적을 담당하는 것이 태평양사령부인데, 이 사령부 책임 구역은 지구 표면적의 50%에 이른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 43개국과 태평양과 인도양 거의 전부가 포함된다. 유럽사령부는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89개국을 관장한다. 유럽사령부 책임 구역 안에 유고가 들어 있어 미군은 유고에 개입하는 것이다.

세계 지도에 5대 지역 통합사령부의 책임 구역을 그리고 나면 남는 것은 미국 본토와 캐나다·러시아인데, 군사적 의미에서 미국과 캐나다는 사실상 ‘한 나라’이므로 러시아만 남는다. 5대 지역 통합사령부는 소련군이 국경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아 왔는데, 이를 정치적으로는 ‘봉쇄 정책’이라고 한다.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마저 흔들리는 지금, 미국은 5대 지역 통합사령부에 이라크와 북한 그리고 최근 목소리를 높이는 중국을 봉쇄하라는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여기서 유고 지역은 미국의 국익이 적은 곳인데 왜 미군이 개입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미국 예일 대학 폴 케네디 교수가 쓴 <강대국의 흥망>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과거 초강대국이었던 로마와 대영제국의 흥망 원인을 분석한 케네디 교수는, 지역 사회의 사소한 분쟁을 제때 잠재우지 못하면 초강대국 지위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고 밝히고 있다.

발칸 반도는 1차 세계대전 진원지이자 인종·종교 갈등이 극심한 곳이다. 따라서 미국은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이 터지기 전에 유고 사태를 종식할 필요가 있다. 세계군을 유지하는 미국 처지에서는 지금 유고에 쏟아붓는 미사일과 포탄 가격이 발칸 반도 전체가 전쟁에 휩싸였을 때 들어갈 비용보다 훨씬 싸다고 판단했기에, 주위의 비판에도 개의치 않고 유고 공습을 단행한 것이다.

유고 공습은 미군 유럽사령부가 아니라 나토군 사령부가 지휘한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서독과 유럽 방어를 위해 미군을 주둔시켰는데, 이것이 유럽사령부의 원조가 되었다. 미·소간 냉전이 격화한 49년 미국은 북대서양 주변 12개국(현재는 19개국)을 모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발족했다. 50년에는 이 조약 가맹국이 내놓은 부대를 유럽 주둔 미군과 합쳐 나토 연합군을 창설했다.

나토군 사령부는 미국 유럽사령부가 있는 독일 파이힌겐 주 슈투트가르트에 본부를 두었다. 이에 따라 이곳에 있는 미군 최고 지휘관(현재 웨슬리 클라크 육군 대장)이 유럽사령관·나토군 사령관·주독 미군 사령관을 겸하게 되었다. 유고 공습을 앞두고 미국은 웨슬리 클라크 대장을 나토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나토 국가 소속 전투기가 유고 공습에 참여한 것은 이 때문이다. 유고 사태, 문명 충돌로 확산될 수도

미국 정치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미국이 세계 리더십을 유지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그 중 하나가 분쟁 원인에 대한 연구인데, 대표작이 새뮤얼 헌팅턴 교수가 쓴 <문명 충돌론>이다. 헌팅턴 교수는 세계 문명을 6개로 나누고, 이 문명권 간의 갈등이 미국의 세계 리더십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전쟁으로 비화한다고 보았다. 헌팅턴 교수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문화권에 위협을 주는 문화권으로 이슬람 문화권과 중국 문화권을 꼽고 있다.

발칸 반도는 오랫동안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곳곳에 회교 문화가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알바니아이다. 알바니아는 유럽에 있으면서도 ‘고립된 섬처럼’ 절대 다수 국민이 회교를 믿고 있다. 유고 사태는, 동로마의 전통을 이어받아 넓은 의미에서는 기독교 문화에 포함될 수 있는 동방정교와 이슬람 문화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유고 사태의 진앙지인 코소보 지역에는 동방정교의 성지가 몰려 있다. 그런데 발칸 반도의 오랜 분쟁으로 인해 알바니아인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이 세르비아 출신 민족주의자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이다. 유고 사태는 그가 알바니아계 주민들에게 코소보를 떠나라고 명령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알바니아계를 쫓아내기 위해 밀로셰비치가 경찰과 군을 동원해 ‘학살’을 자행하자, 미국이 나토군을 동원해 이를 중지하라며 공습한 것이 이번 유고 사태인 것이다.

이러한 전쟁 구도는 헌팅턴 교수가 분석한 전쟁 원인과 맞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상 회교권을 돕는 전투에 미국을 비롯한 나토 국가 국민이 언제까지 찬성할 것인가 회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유고 사태는 헌팅턴 교수가 분석한 대로 문명권 간의 충돌로 확전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나토 국가 중 유일한 회교 국가인 터키가 나토군 사령부가 지상군 투입을 결정한다면 즉각 병력을 파견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데서 간접 확인되고 있다.

폴 케네디 교수는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려면 막강한 해군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해군력을 유지해야 초강대국 지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냉전 종식 후 미국은 육군 상비 사단은 10개로, 해군 항공모함은 12척으로, 해병대는 3개 사단으로 축소했다. 미국은 이 정도 군사력으로도 한반도와 중동 두 군데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모두 승리할 수 있다며 ‘윈-윈(win-win) 전략’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최근 이라크 공습과 북한 봉쇄에 이어 유고 공습을 벌이는 과정에서 미국은 태평양사령부에 속한 키티호크 항공모함을 중동으로 보내는 등 전력을 모두 가동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유고가 알바니아 등 인접 국가를 침공해 확전을 시도한다면 미국은 다른 통합사령부로부터 더 많은 전력을 빼야 할 것이다. 여기에 힘 자랑 하듯이 다른 나라 분쟁에 마구 개입하는 미국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북한을 비롯한 다른 나라가 또 다른 분쟁을 일으킨다면, 미국은 헐떡이는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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