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몽마르트르'로 이태원이 진화한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4.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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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서울 이태원에 사는 유주현씨(23)는 1~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절대 친구들을 동네에 부르지 않았다. 지저분하고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친구들을 즐겨 부른다. 유씨의 소개로 이태원을 찾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서울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니’라며 놀란다.

서울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이태원. 그동안 이곳은 용산 미군기지의 배후 기지촌 구실을 하면서 전형적인 도심형 슬럼으로 통했다. 이태원의 이미지는 짝퉁(가짜 상품) 가게, 미군 클럽,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가라오케, 싸구려 나이트클럽이 많은 곳이었다. 서울의 심장부에 자리 잡고 있지만 사실상 ‘두메’나 마찬가지여서 평범한 서울시민이 이태원을 찾는 일은 많지 않았다.

9·11 테러 ‘덕’에 대변신 시작돼

그러나 이태원은 변하고 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1년 미국 뉴욕에서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부터이다. 테러 이후 귀대 시간 제한이 가해지자 미군들의 출입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그동안 이태원에 거주하면서도 미군과 부딪치기 싫어 밖으로 나오지 않던 다른 외국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서울시가 이태원을 관광특구와 뉴타운으로 지정하면서 변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여기에 2007년 용산 미군기지 이전이 기정사실화했다. 이런 환경에서 이태원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그 징후들을 살펴보았다.
지난해 12월, 이태원의 프랑스식 식당 ‘르 생텍스’에서는 이색 모임이 열렸다. 황석영씨의 소설을 좋아하는 주한 프랑스인들이 황씨의 환갑 잔치를 열어준 것이다. 이들로부터 선물과 카드를 받은 황씨는 “프랑스인들이 환갑 잔치를 열어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 날 모임은 눈빛출판사 후원회를 겸한 것이었다. 사진가 김기찬씨의 <골목안 풍경>을 비롯해 사진집을 주로 출간하는 눈빛출판사의 재정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프랑스인들이 후원회를 열었다. 후원회를 주최한 프레데릭 블레스텍스 교수(외국어대·불어과)는 “눈빛출판사는 한국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하는 출판사다. 우리는 ‘눈사랑’(눈빛을 사랑하는 프랑스인) 멤버들로 눈빛의 책을 좋아해 이 일을 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 날 눈빛출판사는 책과 달력 30여 종을 가져와 주한 프랑스인을 대상으로 할인 판매를 했다. 행사장을 찾은 사진가 김기찬씨는 “행사장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떠날 생각도 못하고 계속 앉아 있다. 이런 행사를 한국 사람이 아니라 외국 사람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행사장 한켠에서는 눈사랑의 또 다른 멤버인 에릭 비데 교수(외국어대·불어과)가 불어 무크지인 <카이에 드 코레>(한국 수첩)를 판매하고 있었다. <카이에 드 코레>는 한국 문화를 담은 잡지로 이들 외에 신라 고분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샤바놀 박사(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와 퇴계 사상을 전공한 장 봉 박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원래 이 날 선보이려다 인쇄가 늦어져 가져오지 못한 <카이에 드 코레> 5호에는 황석영씨 심층 인터뷰와 김지하 시인을 분석한 기사가 실렸다. 행사가 열린 ‘르 생텍스’는 사진 전시회·저자 사인회·마임 공연 등 문화 행사가 자주 열리는 곳으로, 이태원의 문화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장소와 음식을 제공하고 근처의 프랑스인을 불러모아 책 판매를 도운 레스토랑 주인 벵자맹 주아노 씨(35)는 원래 불문과 교수였다. 그는 교수 직을 버리고 이태원에 레스토랑을 차린 이유에 대해 “이태원을 국제적인 문화의 거리로 바꿔 서울의 몽마르트로 만들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르 생텍스’ 외에도 이태원에는 문화 공간이 여러 곳 더 있다. 테라스 레스토랑인 ‘게코스 가든’ 역시 대표적인 이태원의 문화 공간으로 꼽을 수 있다. 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독일인 남편과 한국인 부인은 한국을 찾은 신진 예술가들의 패트런(후견인) 역할을 한다. 수단 출신 화가 겸 시인 아메드 엘마디 씨(27)는 ‘게코스 가든’이 제공한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면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탈리아식 식당인 ‘라 타볼라’, 프랑스식 식당인 ‘라 시갈’과 ‘델리스’에서도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유럽풍 라운지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런 레스토랑의 공통점은 미군이 아니라 주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마술사로 일하는 프랑스인 제라르 씨(51)는 “음식과 분위기가 프랑스와 똑같다. 고향에 온 듯 편안한 느낌이 들어서 거의 매일 이태원 식당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예전의 ‘리틀 아메리카’가 ‘몽마르트 언덕’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미국 문화는 철저하게 ‘왕따’당하고 있다. ‘쉐부’와 같은 라운지 카페에서는 유럽 맥주만 진열해두고 있다. 이제는 라운지 카페와 미군 클럽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만들어져서 미군들도 이런 레스토랑이나 라운지 카페는 거의 찾지 않는다. ‘라 시갈’을 운영하는 이다원씨(41)는 “이곳에서 미군은 천덕꾸러기로 취급된다. 식당 주인들은 미군이 가게에 오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미군이 빠지고 얌전한 외국인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이태원의 거리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호주인 대니얼 비젤 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이태원의 이미지는 시드니의 환락가인 킹스 크로스와 비슷했다. 그러나 지금은 홍콩의 랑 콰이 펑 거리와 같은 문화적인 곳으로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고급 레스토랑은 이태원의 문화가 성숙하는 데 하나의 인프라가 되어주었다. 그전까지 주한 외국인들은 대부분 거주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끼리끼리 모였다. 이태원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외국인들이 서로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현상이 나타났다. 주한 외국인을 위한 문화 사이트를 운영하는 오현주씨(35)는 “단순히 파티를 즐기는 것을 넘어 극단을 만들어 함께 연극을 만드는 외국인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외국인과 함께 이태원 문화를 탈바꿈시키는 또 다른 한 축은 입양아 출신 예술가들이다. 특히 벨기에 입양인인 빈센트 성(36)과 나탈리 조(36)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다양한 네트워킹을 통해 이태원의 ‘문예 부흥’을 이끌고 있다.

‘스파이 클럽’은 빈센트 성이 이태원 문예 부흥의 전진 기지로 이용하는 곳이다. 그는 매주 일요일 이곳에서 대사관 행사를 비롯해 시 낭송회와 영화 상영회를 연다. 멀티 아티스트인 그는 ‘컬처럴 네트워킹 파티’를 주최해 주한 외국인 예술가들의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홍대앞 ‘클럽데이’와 같은 ‘이태원데이’를 만들 계획이다

나탈리 조는 인터넷을 통해 입양인 예술가와 교포 예술가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 이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조씨는 2001년부터 매년 입양인 교포 예술가들의 공동 작품집 <오케이북(Overseas Korean Artists Yearbook)>을 펴낸다. 2001년에 재미동포와 재미 입양인 예술가, 2002년에 재일동포 예술가들의 작품집을 낸 그녀는 올해 유럽 동포와 유럽 입양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아 세 번째 작품집을 냈다.

이태원을 바꾸는 데는 동성애자들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들은 게이바를 일반인이 함께 다니는 혼합바로 탈바꿈시키며 이태원의 다양화를 이끌고 있다. 커밍아웃한 탤런트 홍석천씨 역시 테라스 카페 ‘아우어 플레이스’를 운영하며 다양한 문화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이태원에서 8년째 사는 그는 “반지하 방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때 이태원은 삭막한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외국인·입양인·동성애자 등 한국 사회의 마이너리티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사는 곳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인종과 계층이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서로 어울리면서 이태원은 문화적 용광로가 되었다. 빈센트 씨는 “다양한 사람들이 파티에서 어울리면서 갖가지 화학 반응이 일어났다. 무당과 결혼하는 프랑스인도 나타났다”라고 말했다. 요즘 이태원에는 도예가·화가·건축가·인테리어 전문가 등 외국인 예술가들이 몰리고 있다.

루이뷔통 등 명품 브랜드의 패션 컨셉터로 일하는 프랑스인 모니코 씨 역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매달 이태원을 찾는다. 그는 “비슷한 일을 하는 동료들이 도쿄에서 이태원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있다. 일본은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오면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곧 이곳으로 이사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관광특구와 뉴타운으로 지정된 데 이어 용산 미군기지 이전이 현실화하면서 이태원의 변신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태원을 바꾸려는 외국인들의 잰 걸음에 비해 공무원들의 움직임은 너무 더뎌 보인다. 외국인 대상의 스탠딩 개그쇼 기획자인 연승희씨(35)는 “이태원 문화축제가 영어로 된 표지판 하나 없이 진행되었다. 서울시청이나 용산구청의 문화 마인드가 아쉽다”라고 지적했다.

주아노 씨는 “이태원에는 극장이나 서점, 심지어 비디오숍도 없다.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위치인데 적절한 시설이 없다. 적절한 문화 인프라만 있다면 이태원은 충분히 서울의 몽마르트가 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나탈리 씨는 “외국인들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이 아니라 문화를 통해서 한국을 접하도록 이태원을 활용해야 한다. 이태원은 관광특구가 아니라 문화특구가 되어야 맞다”라고 지적했다.

빈센트 씨는 “독일인 한 사람이 시네마테크를 만들기 위해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이미 44만 유로 정도를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한국 정부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원을 문화의 거리로 만드는 데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모니코 씨는 “나에게 하루 컨설팅을 받으려면 2백만원을 내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나 용산구청이 이태원을 바꾸기 위해 시간을 내 달라고 하면 공짜로 컨설팅에 응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말을 서울시장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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