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장관은 ‘쫓겨 날’ 수밖에 없다
  • 徐明淑·成耆英 기자 ()
  • 승인 1999.07.1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료 사회의 벽·언론의 편견·경력 부족 ‘덫’에 걸려 잇달아 낙마… 대통령의 ‘배려·할당’ 임명도 한몫
지난 5·24 개각에서 문화관광부장관 자리에서 물러나 당으로 돌아온 국민회의 신낙균 의원이 동료들로부터 받은 첫 인사는 ‘무사 귀환을 축하한다’는 것이었다. 장관 재직 중의 업적이나 내년 총선을 앞둔 거취 등을 따지기에 앞서, 일단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주변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정치인 출신 여성 장관의 경우에는 재임 동안 자신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정치적 상처를 입지 않은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아야 할 판이다. 여성 장관들이 툭하면 구설에 휘말리다 보니 아예 장관 직을 기피하는 흐름마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여성 비서관은, 5·24 개각 때 한 여자대학 총장을 주요 부처 장관 자리에 앉히려 했다가 실패한 사례를 들면서 과거와는 달리 장관직을 제의해도 거절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손 숙 전 환경부장관이 격려금 파문으로 낙마하면서 ‘여성 장관’ 논란이 불거지기 전의 일이다. 문민 정부 시절부터 중도 탈락하는 여성 각료가 속출하다 보니 언제 어디서 ‘총을 맞을지’ 모르는 장관직 제의에 선뜻 응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 듯하다.

물론 손장관의 낙마를 두고 일부 언론의 ‘음모론’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그가 러시아 공연에서 격려금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도 서해 교전 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뒤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타이밍을 조절해서’ 의도적으로 여론에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DJ가 여성계의 할당 요구를 잠재우기 위해 일부러 전문성과 조직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을 임명해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역(逆)음모론’을 내놓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격려금 파문 당시 손 숙 장관이 ‘대통령에게도 보고했더니 수긍하셨다’는 등 장관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발언을 한 뒤 사퇴한데다, 격려금을 받은 사실이 알려진 이후 여성단체들조차 손장관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음모론이 설득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임명 당시부터 문제점을 안고 출발했기 때문에 격려금 수수 사실이 알려진 이후 파문이 더욱 확산되었다는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다. 연극 배우를 장관에 기용한 것과, 예술의 나라인 러시아 공연, 그리고 돈봉투. 손장관의 격려금 파문 주변에는 여론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많이 깔려 있었다. 게다가 그는 여론의 관심을 끌기에는 가장 좋은 요소를 또 하나 갖고 있었다. 여성 장관이라는 점이었다.

장관직 사퇴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에서도 손씨는 ‘내가 살아 온 사회와 공직 사회의 분위기는 맞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군대에서라도 상관을 모시고 부하를 통솔해 본’ 남자들과는 달리 조직 생활 경험을 가지지 못한 여성에게 관료 사회의 벽은 너무 두터웠다는 말이다. 여성 장관들, 업무와 무관한 일로 불명예 퇴진

중도 탈락한 여성 장관들이 두고두고 입에 오르는 것은 그들이 하나같이 고유 업무와는 관련이 없는 개인 문제로 인해 중도 하차했기 때문이다. 손 숙 장관 이전에도 여성 장관들이 불명예 퇴진한 이유는 하나같이 자기가 맡고 있는 부처의 고유 업무와는 관련이 없는 사안이었다.

문민 정부 시절 박양실 보건복지부장관은 취임한 지 열흘도 안되어 절대 농지를 사서 부동산 투기를 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 처음으로 임명되었던 주양자 보건복지부장관도 비슷한 투기 의혹으로 두 달 만에 퇴진했다. 박씨와 주씨는 둘 다 여의사회 회장 출신인데다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를 통해 정치권과 교분을 넓혔다는 점에서 너무나 닮은꼴이었다. 문민 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 공교롭게도 초대 보건복지부장관이 똑같은 문제로 취임 초기에 낙마하자 ‘여성 장관들마다 왜 한결같이 문제를 일으키느냐’는 불만이 정부 내에서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황산성 전 환경처장관이 언론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다가 물러난 것이나, 김숙희 전 교육부장관이 ‘월남전 용병 발언’으로 전격 경질된 것도 업무와 관련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황산성 전 장관은 기자들 앞에서 보도 자료를 집어던지면서 화풀이를 하거나 국회에서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등 좌충우돌식 행동으로 물의를 빚었지만 업무 능력에서만큼은 역대 환경부장관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하고 분리 수거 제도를 일원화하는 등 환경 정책에 관한 추진력만큼은 돋보였다는 내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전문성 부족론’의 실상과 허상

여성계에서 언론이 여성 장관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성계의 불만은 ‘언론이 유독 여성 장관에게는 능력보다 업무 스타일이나 주변의 인간 관계 등을 잣대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트집 잡을 것이 없으면 별 근거도 없이 ‘조직 장악력 부족’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성단체의 한 관계자는 “남자와 달리 여성 장관의 경우 전문성·청렴성·도덕성·정책 조율 능력·통솔력 등 수많은 평가 기준을 마련해 놓고 이 모든 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쏠 수 있는 ‘조준 사격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가뜩이나 여성 인재가 흔치 않은 마당에 여성 장관을 이렇게 흔들어대서야 살아 남을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일선 기자들은 여성 장관들이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기자들과의 일상적 접촉을 꺼리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문화관광부를 출입하는 중앙 일간지 차장급 기자는 “일부 여성 장관은 언론에 노출되어 봤자 손해만 본다는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부족한 업무 지식이 드러나게 될까 걱정한 나머지 자신감을 잃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점은 늘 기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여성 장관들도 어느 정도 수긍한다. 신낙균 의원도 장관 재직 시절 기자실에 종종 들러 현안에 관한 대화를 포함해 ‘차 한잔 하자’는 요청을 주변으로부터 많이 받았다. 이러한 요청에 못이겨 일부러 ‘기자실 방문의 날’까지 정했지만 결국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다. 왠지 어색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성 장관들의 발목을 나꿔챌 준비를 하고 있는 강력한 덫은 ‘전문성 부족’이라는 평가 기준이다. 여성 장관 임명이 여성계에 대한 ‘배려’나 ‘할당’ 차원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애당초 전문성보다는 상징성을 우선 고려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여성계의 생각은 다르다. 장관은 전문성보다는 정책 조정 능력이 요구되는 자리라며, 남성 장관의 경우에도 전문성을 문제 삼을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왜 유독 여성 장관만 물고늘어지느냐고 주장한다.

여성 장관의 업무 스타일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자민련의 한 여성 당직자는 “땅 투기 의혹으로 물러난 주양자 전 장관은 선이 굵고 직선적이어서 주변에 적이 생기고 투서 때문에 시달린 것으로 알고 있다. 장관이 가져야 하는 지도력으로만 따지자면 역대 어느 여성 장관보다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손 숙씨야말로 김대중 대통령의 액세서리에 불과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관료이건 정치인이건 간에 조직 생활 경험이 적은 여성의 경우 업무 스타일 문제로 여론에 휘둘릴 요소들을 이미 어느 정도 안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작 이들과 일선에서 함께 일해야 하는 공무원의 생각은 어떨까. “신임 김명자 장관의 이혼 경력도 과거 같았으면 충분히 구설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뀐 만큼 여성 장관이라 하더라도 개인사에 관한 한 용인하는 분위기이다. 더 이상 ‘여성 장관’이라는 시각으로만 보지 말아달라.” 김명자 장관이 취임함으로써 짧은 부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여성 장관을 낳은 환경부의 한 국장급 공무원의 말이다. 공무원들은 ‘관료들이 여성이라고 해서 따돌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경력 관리하고 전략적 사고 키워야

아무튼 손 숙 파동을 계기로 여성계가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인 것만은 사실이다. 손장관 파동 이전부터 이미 2기 내각의 여성 장관 숫자가 그나마 줄어든 데다 잇단 인사 파동으로 인해 사람을 추천하는 것조차 겁나는 일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성 장관을 기용할 수 있는 김대통령의 선택 폭이 그리 넓은 것도 아니다.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말썽을 빚은 주양자 전 장관을 경질하지 못하고 두 달 가까이 끌고 간 것도 사실은 ‘복지부장관은 자민련 몫’이라는 합의 때문이었다.

과연 여성운동가가 부인이며, 여성 관련 공약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이 발표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여성계가 더 기대할 것은 없을까. 이에 대해 여성 의원들은 이미 ‘국회의원 비례 대표의 30%를 여성에게 할당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한나라당 이미경 의원은 “중앙인사위원회에 여성 관련 부서를 만들어 여성 인재들의 경력을 관리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 여성특별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여성들이 경력 관리를 소홀히 하고 전략적 사고가 부족하며 국민의 상식과 정서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아직은 한국 사회에서 공직이나 정치를 꿈꾸는 여성은 스스로 할 일이 더 많은지 모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