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시사저널이 뽑은 올해의 책
  • 이희중 (시인 문학평론가, 전주대 교수) ()
  • 승인 200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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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매체의 힘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문자 매체, 특히 책의 위기가 거론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 꿈과 반성의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는 한, 영상이 문자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시사
1.시 : <아, 잎이 없는 것들> 이성복/문학과 지성사
2.소설 : <검은 꽃> 김영하/문학동네
3.인문학 :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그린비
4.예술 : <풍경과 마음> 김우창/생각의 나무
5.사회과학 : <삶의 정치, 소통의 정치> 김홍우 외/대화출판사
6.경제·경영 : <애덤 스미스 구하기> 조너선 B. 와이트/생각의 나무
7.자연과학 : <현산어보를 찾아서> 이태원/청어람미디어
8.생태·환경 : <울지 않는 늑대> 팔리 모왓/돌베개
9.어린이 : <열한 살 아름다운 시작 1,2> 김혜리/채우리 시/<아, 잎이 없는 것들> 이성복/문학과 지성사

‘진흙 천국’의 고통 껴안는 잠언과 비유의 깊은 맛

이희중 (시인·문학평론가, 전주대 교수)

결국 문제는, 얼마나 빛나는 시를 얼마나 오래 써내는가이다. 이성복의 시는 한때 빛나는 고도에 이른 적이 있다. 1980년대의 일이다. 그 후 그렇게 높이 날지 못했다. 적어도 시의 고도가 시인만이 아니라 독자 또는 평자가 더불어 마련하는 것이라면 그렇다.

지난 여름에 나온 그의 다섯 번째 시집 <아, 잎이 없는 것들>은, 네 번째 시집 이후 10년의 침묵을 마감한 것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한 시절을 풍미한 청년 시인의 면모를 지우고, 원숙한 중년 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유컨대, 그의 시는 이제, 이륙의 위험과 상승의 동요를 넘어 안정된 고도에 이르렀다.

40대 이후에도 좋은 시를 쓰기는 쉽지 않다. 이성복에게 40대 이후 머뭇거림이 있었다면, 이는 젊은 날의 성취에 대한 책임, 그리고 지속과 변화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심각하게는 40~50대에게 시 쓰기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유의 질문과 착종해 있으리라 짐작된다.

중년 이후 시 쓰기의 동력은 시적 전략이나 표현의 묘미보다는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의 진정성이다. 새 시집은, 이성복의 시가 표현과 전략의 세계에서 진정성의 세계로 옮아온 도정을 기록하고 있다.
새 시집에서 시인은 살아 있는 것들의 고통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들은 빠짐없이 육체를 가지므로 ‘몸’과 ‘피’라는 말이 자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시인에게 살아 있는 것들의 세계는 ‘진흙 천국’이다(119쪽). 아울러 ‘해’가 자주 나오는 까닭은 그것이 살아 있는 것들의 근원이자, 세상의 어둡고 질고 축축함을 해결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들의 고통이라는 주제는 낡았으나, 언어와 표현에 대한 시인의 각별한 숙고가 있어 전혀 새롭다. 새 시집에서 말들은 제자리에서 튼튼하고, 이웃의 말들과 굳게 연대한다. 이성복 시의 오랜 원천인 잠언과 비유의 깊은 맛 또한 여전하다.

새 시집에서 시인은 살아 있는 것들의 고통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들은 빠짐없이 육체를 가지므로 ‘몸’과 ‘피’라는 말이 자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시인에게 살아 있는 것들의 세계는 ‘진흙 천국’이다(119쪽). 아울러 ‘해’가 자주 나오는 까닭은 그것이 살아 있는 것들의 근원이자, 세상의 어둡고 질고 축축함을 해결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들의 고통이라는 주제는 낡았으나, 언어와 표현에 대한 시인의 각별한 숙고가 있어 전혀 새롭다. 새 시집에서 말들은 제자리에서 튼튼하고, 이웃의 말들과 굳게 연대한다. 이성복 시의 오랜 원천인 잠언과 비유의 깊은 맛 또한 여전하다.

이런 구절들을 거듭 읽어 보라. ‘북이 아니라/나무통에 맞은 북채의 소리 같은/그런 이별이 있었지요’(34쪽), ‘내 부리가 네 눈을 마구 파먹어도/난 그러고 싶지 않아, 마라’(38쪽), ‘다만 삭은 빨래집게의 풀어진/힘으로 우리를 이곳에 묶어두는/삶, 여러 번 살아도 다시 그리운’(51쪽), ‘이제는 힘이 빠진/날벌레를 거미가 지키듯이,/나는 숨결도 없는/아내를 오래 바라보았다’(105쪽). 오래 전 우리 곁을 떠났던 고수가 내공을 다지고 돌아온 것이다.

추천인:김사인(시인, 동덕여대 교수) 박수연(문학평론가) 이광호(문학평론가, 서울예대 교수) 정끝별(시인, 문학평론가) 황현산(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소설/<검은 꽃> 김영하/문학동네

역사 소설 새 문법 창안한 멕시코 이주 드라마

강상희 (문학평론가, 경기대 국문과 교수)

역사 소설에 열광하는 한국의 독자에게 <검은 꽃>은 쓰라린 배반의 경험을 제공한다. 김영하는 이 소설로, 영웅 서사시나 수난사로 포장된 픽션을 민족의 역사로 번역해 읽는 독서 관습을 파괴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음을 선언했다. <검은 꽃>은 역사 소설의 새로운 문법을 창안했고, 앞으로 쓰일 역사 소설은 이 문법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대한제국이 몰락해가던 1905년 조선인 천여 명이 멕시코로 팔려가 그 중 일부가 남미의 격동사에 휘말려 꽃잎처럼 산화한다. 이야기는 이미 드라마·소설·영화로 그 얼개가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검은 꽃>은 동일한 사실로부터 출발해 전혀 다른 이야기의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이들에게 국가와 민족은 이미 숙명적으로 귀속되어야 할 거대 존재가 아니다. 이 조선인들의 운명은 노예와 혁명전사, 샤먼, 성직자, 고리대금업자, 이발사 등으로 개별화해 세계 체제로 편입된다. 소설은 근대·국가·민족·종교·젠더 등 묵직한 사유의 테마를 현대적인 예지와 통찰로 가득찬 운명의 형상으로 만들어냈다.

<검은 꽃>은 홈쇼핑 채널에서 이민을 권유하는 상품을 파는 우리 시대의 세계주의가 이미 한 세기 전에 예비되어 있었던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검은 꽃>이 그리는 이산의 체험은 비극을 지향하는 소모의 체험이 아니라 오히려 새것을 열망하고 만들어내는 생성의 체험에 가깝다. 이들이 타고 떠난 선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바로 그 생성 체험의 놀라운 사례로서, 이 부분은 이 소설의 압권이기도 하다. 옛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인물들 간의 육체적 합종연횡, 정신적 이합집산의 광경은 타이태닉의 그것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전함 포템킨의 그것보다 더 급진적이다. 김영하는 이 인물들을 모두 아우르는 톨스토이적 넓이와 쾌속 질주의 문체를 결합함으로써 역사 소설의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검은 꽃>의 속살 매혹은 그 남성적 세계의 폭력과 공허를 여성적 동경으로 애무하고 위로하려는 서술 태도에 놓여 있다. 그 폭력과 공허, 그리고 싸움의 매혹은 근대성의 본질이기도 하다. 김영하는 <검은 꽃>으로 (한국의) 근대에 관한 상투적 인식의 문을 닫아버리고 새로운 인식의 문을 열어젖뜨렸다.

추천인:김미현(문학 평론가, 이화여대 교수) 우찬제(문학 평론가, 서강대 교수) 이경호(문학 평론가, <작가세계> 주간) 임규찬(문학 평론가, 성공회대 교수) 황종연(문학 평론가, 동국대 교수)
인문학/<열하열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그린비

2백년 세월 건너뛴 고전과의 상쾌한 만남

김풍기 (강원대 교수·국어교육학)

고전은 그 이름만으로도 독자를 압도한다. 독자는 고전을 하나의 텍스트로 대하기 전에 이미 그 명성에 눌려 주눅이 든 상태로 책과 대면한다. 그러나 막상 대하고 보면 너무 재미있어서 책장 넘어가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고전이 그런 것은 아니다. 명성뿐만 아니라 내용까지도 무겁기 이를 데 없어서, 기표적 차원의 이해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명성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가볍게 대할 텍스트는 아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2백여 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새로운 벗을 만난다. 고미숙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통해 박지원과의 상쾌한 만남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무거운 몸집의 박지원이 너무도 날렵하게 자신의 상상력과 날카로운 사유를 보여줌으로써 동시대 지식인들에게 신선한 지적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면, 고미숙은 오랫동안 ‘고전’의 감옥에 갇혀 있던 그 책을 새롭게 드러냄으로써 이 시대 독자들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호질>이 우리에게 전해지게 된 이면의 삽화를 통해서 새삼 작품을 돌아보게 한다든지, 건륭제를 열하에서 만나는 동안 불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화 등은 고미숙의 열하일기 읽기가 얼마나 깊은 내공을 감추고 있는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박지원이 사소한 물건에서 청나라 문명을 읽어냈듯이, 고미숙은 <열하일기>의 작은 문장에서 박지원의 사유와 당대 조선인들의 생각들을 엮어냈다.

이 책이 단순히 <열하일기>를 소개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동시에 들뢰즈-가타리의 생각으로 읽어내는 <열하일기>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지식인 고미숙의 생각으로 읽어내는 <열하일기>이기도 하다. 뛰어난 문필과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8세기라는 시대를 절묘하게 탈주하고 새로운 사유의 지평으로 나아간 박지원이 아니었던가. 그러한 점을 고미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적 혹은 사회적 고민과 연결하면서 하나의 고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더 큰 미덕은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도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던 고전을, 일반 독자들이 직접 대할 수 있게 하나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고미숙의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는 자신의 시각으로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대하리라는 희망을 가슴 한 켠에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추천인:김진석(인하대 교수·철학) 이동철(용인대 교수·중국학) 이진우(계명대 교수·철학) 탁석산(저술가)
예술/<풍경과 마음> 김우창/생각의 나무

심미적 이성으로 그려낸 동양화의 '풍경과 마음'

강철주 (<시사저널> 편집위원)

김우창 교수의 <풍경과 마음>(생각의나무 펴냄)은 독자를 긴장시킨다. 미학과 인문학을 아우르는 그의 ‘심미적 이성’이 그려내는 사유의 궤적을 제대로 따라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체 또한 ‘명사들의 행진’이라고 하리만큼 추상어 위주인 데다가 매우 섬세하고 신중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지 않으면 문맥을 놓치기 십상이다.

‘동양의 그림과 이상향에 대한 명상’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이 책은 동양화에 대한 독창적 성찰을 담고 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비교로부터 시작해 원근법의 의미를 살피는가 하면, 동양화에는 왜 원근법이 없을까라고 반문하며 '관점' 문제로 논의를 진전시키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동양화의 화가는 그림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 풍경의 일부이다. 풍경 안에서 산수의 신비와 숭고미를 체험함으로써 동양화는 풍경을 대상화하기보다는 그 안에 들어가 체험하는 공간으로 인식했다. 애초부터 원근법이 필요없었던 셈이다.

정 선의 <금강전도>(그림 참조)는 그런 점에서 ‘진경’ 산수라고 볼 수는 없다. <금강전도>의 공간은 풍수지리에 기초한 유토피아를 화폭에 구현한 것으로서, 현실의 체험과 이상향을 조화시킨 초월적 공간이다. 동양화의 공간은 송강 가사 <관동별곡>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관동별곡>에서 송강이 여행한 산수는 ‘심미적 기쁨의 체험’으로 존재한다. <금강전도>처럼 현실의 산수에 이상향을 결합한 것이다. 실물처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회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저자는 동양화의 이같은 ‘풍경과 마음’이 지금도 유효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동양적 화면을 재현하고 답습하는 일은 아예 불가능하다고까지 단언한다. 다만, 공간과 세계를 보는 우리 고유의 사유 방식을 우리의 생활에 적용하는 노력만은 꼭 필요하다면서, 동양적 전통의 평정한 마음과 인간적 평화를 만들어내는 일을 과제로 제시한다. ‘단순한 묘사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그 그림은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우주론적 위치와 인간의 도덕적·사회적 위치에 대한 서사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서론 격인 <감각과 세계>를 비롯해 <풍경과 선험적 구성> <동양적 전통과 평정한 마음>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유장한 논리를 좇다보면 독자까지 심미적 이성에 감염된다.

추천인:김봉석(영화평론가) 김정환(시인, 한국문학학교 교장) 서혜성(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사무처장) 이건수(<월간미술> 편집장) 전진삼(건축비평가, 간향 미디어랩 소장)
사회과학/<삶의 정치, 소통의 정치> 김홍우 외/대화출판사

한국의 현실 정치 '몸 굽혀 살피기'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학)

<삶의 정치, 소통의 정치>는 한국 현실 정치의 문제점을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접근한 것이다. ‘듀-프로세스’처럼 일반인에게 낯선 개념도 등장하지만, 이는 소통이라는 키워드로써 한국 정치를 살피기 위해 피치 못하게 동원되어야 할 개념으로 보인다.

이 책은 그간 이론과 실제가 유리되었던 정치 철학과 현실 정치의 간격을 메우는 노작이기도 하다. 물론 그 방향은 정치 철학에서 현실 정치로의 ‘몸 굽혀 살피기’이다. 내내 서양의 철학적 이상을 한국 정치의 당위로 내세우거나, 또는 전통 사상의 도덕적 측면을 부각하기에 급급한 한국 정치학계의 현재에 비추어 볼 때, ‘몸 굽혀 살피기’ 자세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사실 우리 정치는 언제나 천덕꾸러기였다. 비판의 대상이기라도 하면 그나마 좋으련만, 무시와 방기, 또는 극복의 대상이기 일쑤였다. 실로 우리는 정치학을 구태여 배우지 않아도 한국 정치에 대해서는 넉넉하게 한 말씀씩 할 수 있다. 대략 ‘나쁜 놈들이 패를 지어, 말은 그럴싸해도 결국은 제 이익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정치였던 터였다. 개탄과 저주의 대상, 이것이 한국의 정치였다.

허나 그 사이에 한국의 정치는 또 내내 아팠다. 이 책은 정치가 ‘정치판’과 다른 그 무엇임을, 또는 정치라면 곧 권력(을 발휘)을 연상하는 항등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한국 정치의 상처를 혀로 핥는다. 여기서 정치란 의사당에서 진행되는 대단한 ‘그 무엇’이 아니라, 일상적 삶에 살아 있는 ‘거시기한 것’이다.

이 거시기한 정치는 곧 ‘삶의 정치’라는 말로 표현되고, ‘그 무엇’으로 군림하는 정치는 ‘권력 정치’ 또는 ‘정치판’이라고 하여 구별된다. 그리고 거시기한 정치의 복원을 ‘소통’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놓고, 동서고금의 고전적 사례와 현실의 사례들(가령 새만금 사업, 의약분업, 최근의 교육 정책 등)로써 직조한다. 끝내 정치란 “소유의 우월성으로부터 소통의 우선성을 지키려는 인간적 노력이나 다름없다”라는 정의를 획득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한국 정치의 철학적 기초를 탐색하려는 일군의 학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발표한 글들 가운데 뽑아 묶은 것이다. 대개 공동 저술은 각론과 총론 간의 유기성이 떨어지는 것이 상례인데, 이 책에는 주제에 대한 참여자들 간의 공유가 잘 되어 있고, 논문 사이에 보완성도 있어 공동 저술의 장점을 잘 살렸다.

추천인:구춘권(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김석근(연세대 BK21 교수·정치학)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학) 함인희(이화여대 교수·사회학)
경제·경영/<애덤 스미스 구하기> 조너선 B. 와이트/생각의 나무

자유주의 경제학 둘러싼 오해와 진실 탐색

곽해선 (경제교육연구소 소장)

애덤 스미스는 18세기에 활약한 영국 사상가다. 현대 경제학 사상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손꼽히는 <국부론>을 썼다.

스미스에 따르면,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가격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수급을 적절히 조정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이익을 따라 자유로이 경쟁하게 놓아두어야지 정부가 규제해서는 경제에 도움이 못된다. 사회의 부가 늘어나는 것도 개인들이 사회를 돕기보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느라 경쟁하며 경제 활동을 벌이는 결과다. 스미스의 이런 생각은 근대 경제학과 자본주의 경제 이론, 자유주의 경제 사조의 토대가 되었다.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스미스의 사상을 제재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 소설이다. 미국 경영대학원 교수가 썼다. 소설이면서도 스미스의 사상을 재조명해 보이려는 학문적 관심에 무게를 많이 실은 작품이다. 줄거리는 스미스가 어느 자동차 정비공(해럴드)의 몸을 빌려 잠시 환생해 경제학 교수인 나(번스)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해럴드와 미국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전에 잘못 알던 스미스의 사상을 바로 알게 된다.

스미스에 대한 오해란 무엇인가. 그가 시장경제 효율에만 관심을 둔 나머지 사람들의 이기적 행동을 무한정 옹호하고, 사회 정의나 도덕성은 도외시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다. 스미스가 <국부론> 이전에 쓴 <도덕감정론>을 보면, 스미스가 시장경제 체제의 선행 조건으로 정의 구현과 도덕성을 역설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기야 애덤 스미스 같은 계몽주의 시대의 걸출한 사상가가 무슨 명분으로든 사람들의 이기심을 무작정 옹호했을 것 같지 않다. 설사 후세에 스미스를 그렇게 이해한 자유주의자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오늘날 그런 주장을 함부로 펴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잘 드러나지 않을 뿐 현대의 자유주의에는 심심치 않게 사이비가 끼어든다. 경제 효율을 위해 기업 활동에 더 많은 자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사실은 기업의 부당 이득을 변호하는 경우다. 이들은 한갓 패거리 자본주의(crony capitalism)의 일원일 뿐 아니라 진정한 자유주의의 적이다. 독자가 자유주의의 진정한 모습과 허상을 가려내는 안목을 키우는 데 <애덤 스미스 구하기>가 도움이 될 것이다.

추천인:곽해선(SIM컨설팅(주) 경제교육연구소 소장) 송원근(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허 연(<매일경제신문> 출판담당 기자)
자연과학/<현산어보를 찾아서> 이태원/청어람미디어

유배지 찾으며 되살려낸 정약전의 학문과 생애

최재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현산어보>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둘째 형님인 손암 정약전 선생이 신유박해 때 흑산도로 귀양가 그곳에서 죽기 전까지 15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면서 지은 책이다. 명실공히 우리 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저서라고 해도 토를 달 이가 없을 것이다. 그로부터 2백년 만에 생물학자 이태원 선생이 스스로를 8년 간이나 바닷가에 유배시킨 결과가 바로 다섯 권의 <현산어보를 찾아서>이다.

정약전이 채집하여 기록한 총 2백여 종의 해양 동식물 중 절반 이상에 대한 확인과 보충 설명이 1권과 2권에 소개되어 있고, 3권은 정약전이라는 인물에 관련된 글을 많이 담고 있다. 최근에 나온 나머지 두 권 중 4권은 가장 두꺼운 책이며 가장 인문학적인 책이다. 488면에 걸쳐 조선시대 유배 문화의 실상을 살펴보고, 정약전의 또 다른 유배지 우이도의 문화와 생물상을 묘사했다. 5권에서는 ‘두렵지만 머무르고 싶은 섬’ 흑산도를 찾아 <현산어보>의 공동 저자 장창대를 수소문하여 마침내 그의 묘도 찾아낸다.

이 책은 많은 해양 생물들에 대한 설명 외에도 밀물과 썰물의 원리를 탐구하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했던 정약전의 과학 연구도 분석한 다분히 종합적인 과학 저서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린네로 대변되는 서양의 생물분류법과 정약전의 분류학을 비교하기도 한다. 나비 박사 석주명의 흑산도 방문기도 나오고, 월북 시인 백 석의 시 <가재미와 넙치>도 인용된다. 심지어는 <어머니와 고등어>라는 대중 가요의 악보까지 실려 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가 파도에 씻기는 모래처럼 스러진다.

그 자신도 우리 옛 고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리는 작업을 하는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정 민 교수는 ‘이 책을 받아 들고 도대체 이런 무지막지한 책을 쓸 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긴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떠올랐다’고 적었다. 학문은 꼭 대학에서만 할 수 있다는 고정 관념을 보기 좋게 무너뜨린 업적이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이렇게 방대한 연구 업적을 올릴 수 있는 이태원 선생이 몇 년간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한다면 어떤 연구 결과가 나올까 궁금해진다.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된 후 인품이나 학문 모두에서 한층 더 성숙해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약전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인다. 나도 몇 년간 어느 경치 좋은 곳으로 귀양이나 갔으면 좋겠다.

추천인:이덕환(서강대 교수·물리학) 이한음(저술가) 정재승(고려대 연구교수·물리학) 최재천(서울대 교수·생물학)
생태·환경/<울지 않는 늑대> 팔리 모왓/돌베개

‘미움의 신화’ 고발하는 야생 늑대 생태 보고서

최성각 (소설가·풀꽃평화연구소 소장)

‘인간’이라는 종의 근거 없는 증오에 의해 거의 절멸해 가는 늑대를 생각하면, 돌연 같은 땅에서 비슷한 운명을 겪은 북미 원주민이 생각난다. 아름답고 기품 있었던 북미 원주민이 백인들의 야만적인 정복욕에 의해 이 별에서 사라진 것이 인류의 손실이듯이 품위 있었던 야생 동물 늑대의 절멸 또한 다양한 생명 에너지로 차고 넘쳐야 할 우리 별의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미움의 신화에 의지해 잔혹하게 펼쳐진 늑대 사냥으로 인해 제대로 항의 한번 못하고 절멸해 가는 야생 늑대를 오랜 시간 ‘늑대의 눈’으로 관찰한 캐나다의 자연주의 작가 팔리 모왓의 감동적인 늑대 생태 보고서다.

언제부터 늑대는 그토록 잔인하고 교활하고 사람에게 위험한 동물로 간주되었으며, 그 누명이 화인처럼 고착되었을까? 늑대에 대한 격렬한 미움이나 죽여 없애버려야 할 혐오는 과연 근거가 있을까? 혹시 늑대에 대한 야수적 이미지는 극히 제한된 정보에 바탕을 두고 공포를 역전시키기 위한 흑색 선전의 결과는 아니었을까? 혹은 이유 없이 동물을 살해하면서 느끼게 되는 쾌감과 가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죽이는 대상에 대해 가장 악독하다는 평판을 조작함으로써 위안을 얻으려는 술책은 아니었을까?

팔리 모왓의 통렬한 질문은 늑대를 매개로 삼고 있지만 정작 인간성에 대한 질문으로 전개된다. 팔리 모왓은 사냥이 스포츠 같은 일상 생활이 되어버린 캐나다인의 내면 깊숙이 감추어진 공격성과 이기심, 인간 중심주의를 가차없이 드러내면서 늑대의 도덕성이 인간의 그것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증언한다. 가정생활, 성 문제, 공동체적 유대, 식습관 등 늑대의 생활상을 목격하면서 지은이는 도리어 ‘인간이라는 짐승’의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몰라 쩔쩔맨다.

그렇지만, 늑대를 만날 수도 공존할 수도 없는 메마른 삶을 살고 있으며, 그 미움이 체계화하지 않은 문명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이 책이 생명 파괴와 학살에 대한 반성과 깊은 공감 속에서 조용히 읽히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박진감 있는 문체로 거침없이 기술된, 작지만 놀라운 이 책은 늑대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통해, 늑대뿐 아니라 생각 없이 받아들인 모든 근거 없는 미움의 신화에서 우리가 왜 신속하게 벗어나지 않으면 안되는지 촉구하고 있다.

추천인:박병상(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장) 오성규(환경정의시민연대 협동사무처장) 최성각(풀꽃평화연구소장)
어린이/<열한살 아름다운 시작1,2> 김혜리/채우리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어울려 빚어내는 감동

김병규 (동화작가)

리얼리티와 판타지는 별개가 아니며,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다른 가지일 뿐이다. 리얼리티가 없는 판타지는 이미 아름다움을 잃었고, 판타지가 없는 리얼리티는 시든 잎처럼 생기가 없다. 판타지를 느낄 수 있어야 향기 있는 리얼리티고, 리얼리티의 바탕에서 그려져야 힘있는 판타지가 될 수 있다.

김혜리의 장편 동화 <열한 살의 아름다운 시작>은 열한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입양된 쌍둥이 자매의 삶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간결한 문장, 담담한 구성, 차분한 분위기가 사실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크고 작은 갈등을 한 올 한 올 풀어 가는 진정, 비록 에돌아 더디더라도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진실, 자신에게 충실함으로써 결국 남에게 보답하는 진솔함이 건강한 환상들을 분수처럼 내뿜어 준다. 이 사실의 공간에는 독자가 상상의 날개를 펼 여백을 넉넉히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 동화는 ‘피보다 진한 물’을 이야기했다. 끌림에 의존하는, 저절로 이루어져 가는 핏줄의 가족보다 노력으로 이루어 가는 새로운 가족의 울림을 그려낸 것이다. 피는 전혀 섞이지 않아 다름을 밀쳐내지만, 물은 서로 잘 어울려 다름을 받아들인다. 이 어울림이 빚어낸 울림이 바로 감동이며, 그 동심원의 한가운데에 핏줄을 목숨보다 더 중히 여겼던 우리 어머니가 있음이 매우 뜻깊다.

사실의 공간에서 느끼는 마른 날 뜬 무지개 같은 아름다운 환상과, 끌림보다 힘 있는 울림이 주는 감동, 이 두 가지 미덕을 가진 <열 한 살의 아름다운 시작>을 ‘올해의 동화’로 뽑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참고로 후보에 올랐던 다른 작품은 <과수원을 점령하라>(황선미 지음·사계절)와 <아버지가 없는 나라로 가고 싶다> (이규희 지음·푸른책들)였다.

추천인:김병규(동화작가) 김용희(아동문학평론가) 김현숙(아동문학평론가·동화작가) 선안나(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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