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콘 ‘국방색’ 옅어지나
  • 워싱턴·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4.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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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2기 외교·안보 라인/온건파 댄포스, 국무장관 ‘1순위’
부시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외교·안보 라인에 과연 어떤 인물이 새로 기용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2001년 1월 이후 부시 행정부를 이끌어온 현재의 외교·안보 진용은 이라크 전쟁의 예에서 보듯 국제 사회의 이해는 고려하지 않는 일방주의 신봉자와, 이른바 불량국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선제공격론을 주창해온 네오콘(신보수주의자) 등 강경파 일색이었다.

부시 1기 대외 정책이 국제 사회로부터 그토록 비판을 받은 것도 따지고 보면 이들의 책임이 크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더글러스 페이스 국방부 차관, 존 볼턴 국무부 차관, 국가안보회의의 콘돌리사 라이스 안보보좌관과 스티브 해들리 부보좌관,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 등이 부시 행정부 1기를 이끌어온 외교·안보 라인이다. 따라서 2기 내각에서 부시 대통령이 기존의 외교·안보 진영을 얼마나 물갈이할지가 앞으로 4년간 미국 대외 정책의 변화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파월·럼스펠드 ‘퇴진’ 가능성 높아

이와 관련해 현재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 사령탑을 맡아온 파월 장관의 교체 여부다. 올해 67세인 파월 장관의 거취에 대해서는 그간 무성한 말이 나돌았다. 요지는 부시 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파월은 2기 내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는 그의 측근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것일 뿐 정작 그 자신은 2기 내각 잔류 여부와 관련해 “나는 대통령을 위해 봉사할 뿐”이라는 ‘선문답’을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 11월4일 국무부 정례 브리핑장에서도 리처드 바우처 대변인이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파월 장관의 거취를 묻는 질문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즉답을 피한 채 “대통령과 장관 사이의 대화 내용은 공개 사항이 아니며 두 사람이 할말이 있으면 그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바우처 대변인은 파월 장관이 앞으로 4주간 복잡한 외교 일정을 소화하느라 무척 바쁘게 지낼 것이라며, 파월의 잔류 가능성과 관련해 한 가닥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파월이 1기를 끝으로 부시 행정부를 떠나기로 이미 결심했으며, 그 배경에는 사생활을 되찾기 바라는 부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파월이 장관 직을 그만둔다면 누가 그 자리를 메울까. 공화당 상원의원을 세 번이나 지냈고 현재 유엔주재 대사로 있는 존 댄포스(68)와, 콘돌리사 라이스 현 국가안보보좌관(49)이 물망에 올라 있다. 지난 7월 초 유엔대사로 발령 난 직후부터 차기 국무장관감으로 꼽혀온 댄포스 대사는 온건파 공화당 인사. 그는 유엔대사로 임명된 뒤 부시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부시 1기 외교·안보팀이 그토록 경멸해온 유엔에 대해 “테러와의 전쟁은 유엔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라며 유엔의 역할론을 역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 국무장관 후보로 민주당 리처드 루가 전 상원의원이 대선 직후 급격하게 떠오르고 있다. 집권 2기를 시작하는 부시 대통령이 대내외 화합 차원에서 민주·공화 양당에서 두루 존경받는 민주당 인사를 기용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무장관 한 사람을 교체한다고 해서 부시 2기의 대외 정책이 바뀔 것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변화의 열쇠는 네오콘 인사들이 장악한 국방부와 국가안보회의 등의 주요 요직에 과연 누가 앉을 것이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세간의 관심은 네오콘의 태두 격인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월포위츠 부장관의 거취에 쏠려 있다.

현재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럼스펠드 퇴진을 점치고 있다. 럼스펠드는 이라크 전쟁을 성공리에 이끈 공은 인정되지만, 이라크 아부 그레이브 교도소에 수감된 포로들에 대한 미군의 잔인한 인권 유린 행위로 인해 미국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 데 대해 책임이 있다. 아브 그레이브 포로 만행 사건 이후 럼스펠드에 대한 사임 압력이 미국 행정부 안팎에서 거셌지만 부시 대통령은 그를 감싼 바 있다. 그러나 부시 2기에도 럼스펠드가 잔류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안보보좌관은 해들러·월포위츠 거론

럼스펠드가 물러날 경우 후임으로는 콘돌리사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국무장관 후보로도 거론되는 라이스 보좌관은 부시 1기를 끝으로 현직을 떠나 학교(스탠퍼드 대학)로 복귀하기를 강력히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복잡다단한 국방부 조직을 과연 여성으로서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점을 들어 오히려 그녀가 파월의 뒤를 이어 국무장관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점치고 있다.

라이스가 안보보좌관 직을 내놓을 경우 그 후임으로 거론되는 인사는 그의 직속 부하인 스티븐 해들리 부보좌관(54)과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60)이 경합 중이다. 두 사람은 테러와의 전쟁을 완수하기 위해 이라크 전쟁을 강력하게 옹호한 주전론자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후보로는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인 루이스 리비를 꼽을 수 있다. 국방통으로서 1992년 당시 조지 H. 부시 행정부 시절 체니 국방장관 밑에서 일했던 그는 당시 국방부 차관 월포위츠와 함께 ‘선제공격론’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리비는 체니 현 부통령의 비호를 받으며 부시 행정부에서 승승장구했지만, 몇 달 전에 일어난 한 전직 중앙정보국 비밀 요원의 신분 노출과 관련한 스캔들에 연루되어 있어 해들리·월포위츠에 비해 낙점될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앞서 거론된 인사들로 부시 2기 참모진이 짜일 경우 부시의 대외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이에 대한 외교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포용주의와 일방주의 시각이 팽팽하게 갈리는 가운데,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조지프 시린시온 연구원은 “이라크 전쟁을 밀어붙였던 네오콘이 부시의 재선을 계기로 자신들의 존재 근거를 정당화한 이상 더욱 더 독선적인 강경 외교 노선을 밀고 나갈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부시 1기에서 대외 정책에 관한 한 어느 누구보다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해온 ‘네오콘 대부’ 체니 부통령이 건재하는 한 제2기 외교·안보 진용이 어떤 식으로 짜이더라도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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