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살리는 호르몬의 마술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4.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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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테스토스테론은 지방을 감소시키고, 성욕을 증진시키는 등의 효과가 있다. 청춘을 깨우는 남성 호르
사람은 누구나 ‘마술 도구’를 갖고 있다. 몸과 마음이 삽상해지는 가을이 되면 그 도구는 더욱 활발히 마술을 부릴 태세를 갖춘다. 여기에서 마술 도구란 인간의 심신을 뒤흔들어 놓는 호르몬을 말한다. 가을날 기분이 허전하고, 다른 이성에게 자꾸 눈길이 돌아가는가. 만약 그렇다면 마술 도구가 제구실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가을을 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9,10월에 남성 호르몬 분비가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해지면서 계절이 주는 고독감을 짙게 느끼는 것이다.

의학자들에 따르면, 남성의 몸 속에는 약 스무 가지 호르몬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신화’를 창조해내는 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이다. 남자들이 싸우고, 바람 피우고, 소리 지르고, 번지 점프 하고, 과속 운전 하는 등의 행동은 모두 테스토스테론의 혈중 농도가 높을 때 일어난다. 1935년에 처음 발견된 테스토스테론은 한때 ‘악마의 호르몬’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만큼 테스토스테론의 ‘성격’은 복잡하고 신비하다.

그동안 의학자들이 밝혀낸 테스토스테론의 비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그 성질과 생성 과정. 의학자들은 테스토스테론이 화학적으로 여성의 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나 프로게스테론과 흡사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테스토스테론이 남성의 고환에서 하루에 약 7㎎씩 분비되고 부신피질에서도 소량 만들어진다고 말한다(1㎖의 핏속에 약 2~10ng의 테스토스테론이 존재한다).

테스토스테론의 숨겨진 역할도 상당 부분 밝혀졌다. 그 과정을 간략히 따라가 보자. 고환이나 부신피질에서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면 그 가운데 약 90%(총 테스토스테론)는 전달 단백질(성 호르몬을 묶는 글로불린)과 연결된다. 그리고 곧바로 핏속을 비활동적으로 순환하기 시작한다. 반면 전달 단백질에 얽매이지 않은 10%의 ‘자유스러운 (유리(遊離)) 테스토스테론’은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 신체를 관류하며 신체의 생식력과 생활력을 부추기며 남성들을 ‘조종’하는 것이다.

유리 테스토스테론의 10분의 1은 또 다른 큰일을 해낸다. 효소의 도움을 받아 더 효과적인 물질로 전환한 뒤 소년들의 조직과 근육 형성에 이바지하는가 하면, 사춘기 소년의 페니스와 전립선과 후두를 자라게 만든다. 또 수염과 체모를 키우고, 턱과 어깨를 넓히고, 목소리를 굵게 바꾸어놓기도 한다. 한마디로 여린 소년을 굳센 남성으로 키워놓는다.

사춘기 때 남성 호르몬의 양은 400%에서 최고 1000%까지 늘어난다. 그렇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 남성 호르몬이 넘치면 원치 않는 일이 벌어진다. 대머리 현상이 촉진되고, 전립선암 세포가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호르몬이 적당히 힘을 발휘하면 여성을 유혹하는 남성의 2차적 성징은 더 완벽해진다. 의학자들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남성을 ‘더 남자답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총 테스토스테론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들이라고 맡은 임무가 없을 리 없다. 뇌에 도달한 그들은 전혀 새로운 일을 도모한다. 성적 환상을 만들어서 남성으로 하여금 주위에서 오는 성적 신호에 반응토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의 몸에 미량 존재하는 테스토스테론도 똑같은 일을 벌인다.
남성 호르몬 수치가 가장 높이 올라가는 시간대는 오전 4~8시로 알려져 있다(이른 아침에 발기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반대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는 시간대는 밤 10시에서 오전 2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김문종 교수(중문의대·가정의학)에 따르면, 오전 8시께 최고 농도(710ng/dl)에 도달하고, 밤 10시에 최저 농도(426ng/dl)로 떨어진다. 1년을 단위로 보면 9,10월에 가장 수치가 높고, 4월에 가장 낮다(<남자의 아름다운 폐경기>에서). 그러나 중년에 들어서면 1일 변동 차가 점점 줄기 시작해 70~80세에는 거의 매일 차이가 없다.

문제는 ‘청춘의 샘’이 마른다는 점이다. 남성 호르몬의 절정기는 널리 알려진 대로 15~25세이다. 이후 남성 호르몬 분비량은 서서히 줄기 시작해 35세부터는 거의 매년 1%씩 감소해 간다. 39~70세 건강한 남성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매사추세츠 남성 노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총 테스토스테론은 매년 0.4%씩 감소하고, 유리 테스토스테론은 매년 1.2%씩 감소한다(1991년 자료).

중년 넘어서면 서서히 감소

2001~2002년 한국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문의대 강영곤 교수(현 노화방지메디컬센터 라 쥬네스 진료부장)가 40~70세 남성 7백62명(건강한 남성 6백26명, 환자 1백36명)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조사한 결과 총 테스토스테론은 매년 0.2%씩 감소했고, 유리 테스토스테론은 0.8%씩 감소했다.

건강한 남성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실험에서는 연령대별 감소율이 밝혀졌다. 혈중 총 테스토스테론의 기준치를 350ng/dl 미만(혈액 100㎖에 350ng 미만의 테스토스테론이 들어 있다는 의미)으로 설정하고 조사했더니, 20~40세는 전혀 감소하지 않았고(0%), 41~60세는 7%가 감소했다. 반면 60~80세는 21%, 80세 이상은 35%가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같은 연구 결과들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고환과 부신피질의 ‘샘’이 더 바짝 마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의학자들은 이처럼 남성의 몸에서 샘이 마르는 증세를 ADAM(Andro gen Decline in the Ageing Male)이나 PADAM (P는 Partical을 뜻함), 혹은 남성 폐경기나 남성 갱년기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 우리 귀에 가장 익숙한 말은 남성 갱년기다.

갱년기는 흔히 삶의 내리막길에 비유된다.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증세가 발현하기 때문이다(그림 참조). 가장 흔한 증세는 피곤, 무기력, 복부 지방 증가, 인지력 둔화, 성욕 감퇴, 근력 약화, 골밀도 저하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매우 낮은 남성의 80%가 섹스에 심드렁하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갱년기 장애를 가진 남성의 80%가 항상 피곤 상태에 빠지며, 그 가운데 70%가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증세가 조금 더 심해지면 수면 장애나 발한 같은 심각한 질환을 초래한다.

인간을 험로(險路)로 이끌고 있지만, 의학자들은 아직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왜 감소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졸에 강한 의혹을 보낸다. 코르티졸은 인간이 부정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물질인데, 혈압을 높이고 면역력을 떨어뜨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재미있는 점은 테스토스테론과 코르티졸의 성질이 극과 극이라는 점이다. 즉 테스토스테론은 무엇을 만들어내는 ‘구성 호르몬’인 데 비해 코르티졸은 ‘분해 호르몬’이다. 그런데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40세 이후 남성의 신체에서는 테스토스테론 양이 줄고 코르티졸 양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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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발
나이를 먹을수록 두피 내의 모낭 수가 줄어든다. 머리카락도 성장 속도가 점차 느려진다

2. 시력
50세가 되면 수정체가 두꺼워져 야간 시력이 떨어져 근거리 물체에 초점이 잘 맞춰지지 않는다

3. 폐 기능
흉벽이 굳어지면서 호흡기 근육에 대한 부하가 가중된다. 숨을 쉰후 폐에 남아있는 잔여공기량도 증가한다

4. 체지방
25~70세 사이에 지방이 신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로 증가한다. 주범은 대부분 근육과 내장기관이다.

5. 발기 각도
남성 대다수는 중년이 되면 발기 각도의 저하를 경험한다. 30~50세에서는 큰 차이를 못느끼지만 50~70세에는 크게 실감한다.

6. 뇌 기능
집중력과 어휘력, 표현력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반면 기억력은 20대 이후 서서히 감퇴하기 시작한다.

7. 청력
특히 50대 후반이 되면 고막이 두꺼워지고, 귓속이 위축되면서 고음이나 고주파음을 인식하는 능력이 감퇴한다.

8. 심장 반응
20세 이후 심장 박동은 운동량에 둔감해져 10~15% 감소한다.

9. 지구력
신체의 산소 공급 능력이 떨어진다. 70세의 지구력은 20세의 절반에 불과하다.

10. 섹스 빈도
성욕 감퇴는 개인 차가 크나 남성 호르몬과 체력 감소에 따라 어느 정도의 성욕 감퇴는 불가피하다

11.근육과 뼈
근육은 결국 위축되고 약해지게 마련, 하지만 운동으로 보충할 수 있다. 골다공증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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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음주·흡연, 호르몬 감소 재촉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떨어트리는 또 다른 용의자들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음주, 흡연이다. 이들은 남성 호르몬의 균형을 깨뜨려 남성들로 하여금 수면 장애, 공격성 증가, 발한 등의 고통을 겪게 만든다. 엉덩이와 배에 살을 찌우는 지방 세포도 유력한 용의자로 꼽힌다. 남성 호르몬 분자를 현미경으로 보면 톱니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지방 세포에 있는 아로마테이즈라는 효소가 테스토스테론의 톱니 모양을 평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의학자들은 테스토스테론 분자에서 여성 호르몬의 대명사인 에스트로겐의 분자가 생성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는 매우 중대한 발견이었다. 비만 남성의 몸에서 테스토스테론 양이 줄면 에스트로겐 양이 늘어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이 발견으로 의학자들은 비로소 왜 비만 남성이 나이가 들면 엉덩이가 넓어지고 가슴이 커지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노화 현상으로 인한 라이디히(leydig) 세포(남성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세포) 숫자와 기능 감소, 시상하부와 뇌하수체 기능 저하, 심혈관계 질환, 약물(항우울제·위장약) 등도 갱년기 증세를 심화시키거나 부채질한다. 의학자들은 꽤 오랫동안 갱년기 증세를 삶의 한 여정으로 이해했다. 때문에 여성 호르몬에 관한 연구가 한창일 때에도 남성 호르몬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성 호르몬, 특히 테스토스테론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남성 호르몬 보충하는 네 가지 방법

그들은 연구를 통해 남성에게도 여성 호르몬 보충 요법(HRT) 같은 처방이 효과가 있음을 알아냈다. 그러나 테스토스테론 보충 요법(TRT) 역시 논란을 일으켰다. 부작용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부작용을 줄이거나 없앤 용법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변해갔다. 최근에는 테스토스테론 보충 요법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남성이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남성 호르몬의 치료 효과는 적지 않다. 첫째, 지방을 감소시킨다. 특히 복부 지방을 눈에 띄게 줄여준다. 둘째, 공간 인지 능력을 높여준다. 셋째 성욕을 증진시켜 발기력을 높여준다. 한 연구에서는 발기부전제와 병용 투여한 결과, 환자 70%에게서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타났다. 그 외에도 근육 향상, 골밀도 증가, 피부 탄력성 증가 같은 효과가 나타나지만, 아직 검증 작업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효과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처방이 곤란한 사람도 있다. 전립선암이 의심되는 사람들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전립선암 세포의 성장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테스토스테론이 전립선암을 유발하는 인자는 아니다.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 테스토스테론과 전립선 질환이 별 관계가 없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테스토스테론이 심혈관계 질환의 발생 빈도를 높인다는 ‘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100% 안전하다는 말은 아니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지 몰라, 테스토스테론 보충 요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수시로 의사의 검진을 받아야 한다. 현재 남성 호르몬을 보충하는 방법은 네 가지 정도이다. 한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법은 경구 투여이다(시장 점유율 80%). 하루 2,3회 2~6정을 섭취해 부족한 호르몬을 보충한다. 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약간 저하된 환자에게 처방된다(서울대 비뇨기과 김수웅 교수 ‘성기능 장애 환자에서 테스토스테론 처방’ 2004년 3월).

한때 근육 주사법도 널리 쓰였다. 그러나 주사 초기에는 수치가 급상승했다가, 시간이 흐르면 롤러코스터가 떨어지듯 직하하는 단점이 있다. 당연히 성욕과 성기능도 증감이 심해서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피부에 붙이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은 간 대사를 피할 수 있고, 몸속 테스토스테론처럼 아침과 밤의 혈중 농도 차가 크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사용자들 대부분은 피부 부작용을 겪는다. 한 전문가는 “사용자 50% 안팎에서 피부 트러블이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바르는 호르몬제’는 가장 최근에 나온 방법이다. 아직 ‘출발 단계’이지만 편의성과 다양한 효능 덕에 사용자가 점점 늘고 있는 추세이다(31·34쪽 딸린 기사 참조).

호르몬의 마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몸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것을 오랫동안 삶의 동력으로 삼으려면 남성 호르몬의 실체를 바로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곧 노년의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좋은 지름길이기도 하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안다. ‘회춘’이라는 단어보다 더 매력적인 말이 없다는 사실을 호르몬은 바로 회춘을 부르는 ‘묘약’이다.


도움 주신 분:임승길 교수(연세대 의대·내분비내과), 서주태 교수(성균관의대·비뇨기과), 김명신 박사(‘라 끄리닉 드 파리’ 원장), 강영곤 박사(노화방지메디칼센터 ‘라 쥬네스’ 진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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