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가 ‘잽’만 날 려도 노무현 KO?
  • 주진우 기자 (asisapress.com.kr)
  • 승인 2003.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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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미국 의존도 지나쳐 ‘위험’수출규제·금융 폭격으로 ‘길들이기’ 언제든 가능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해온 프랑스와 독일을 ‘응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포도주·생수 등 일부 수입품에 대한 무역 제재를 고려하고 있고, 독일 공군 기지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계획을 대부분 취소하는 등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은 미국의 권위에 도전하면 어느 나라든 용서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따라서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최근 한국의 국가 신인도 전망을 두 단계나 낮추자, 미국이 한국 정부 때리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미국에 덜 우호적으로 보이는 노무현 정부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재계는 한·미 관계에 빨간불이 켜질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투자금 회수 등 ‘치명타’는 날리지 않을 듯



“내년 선거를 겨냥해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끝낸 다음 타깃을 북한으로 돌릴 것이다. 북한에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기 전에 부시 행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한국의 진보 정부 길들이기가 필연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대우경제연구소 사장을 지낸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의 전망이다. 이의원은 정부가 지금처럼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한다면 미국은 한국에 무역 제재를 가하고 9백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게 되면 한국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진다.



그러나 아직 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타격을 입는 것이 미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그렇게 가파르게 대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UBS워버그 증권 진재욱 서울지점장은 “미국 정부가 한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가능성은 적다. 미국인 투자자들이 정부의 엄포에 이성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슈뢰더 때리기’로 인해 독일 경제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미국 정부가 치명타는 아니더라도 연속해서 잽을 날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대미 의존도가 너무 높아 미국의 가벼운 잽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으리라는 점이다. 지난 2월 방한한 앤 크루거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는 “한국은 미국 경제가 둔화할 때 이를 대체할 시장을 거의 확보하지 못했다는 게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 연구원은 “경제적으로만 따지자면 한국은 미국의 속국이나 마찬가지다”라고까지 표현한다.



한국 경제는 전적으로 수출에 의존하는 구조다. 미국 시장은 한국 전체 수출량의 20% 이상을 소화해주는 가장 큰 고객으로 한국의 연간 대미 수출액은 3백억 달러를 웃돈다. 매년 미국을 상대로 10조원에 가까운 흑자를 내는 한국으로서는 미국이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겠다고 나오면 곤경에 처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증시마저 외국인이 좌우한다. 주식 시장은 미국 다우지수 주가의 궤적을 따르고 있고, 미국인이 사면 오르고 팔면 내리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이 외교 역량의 90% 이상을 대미 외교에 치중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경제를 통한 미국의 한국 길들이기는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무상 원조, 박정희 대통령 때에는 차관이 미국의 강력한 카드였다. 당시 한국의 국가 신용도로는 외국에서 돈을 빌릴 수가 없었다. 미국 정부는 보증을 서거나 펀드를 자체 발행해 도와주며 한국 정부를 통제했다.
한국 경제가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등을 떠밀어 덤핑을 제소하는 방법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반도체·철강·조선 등 한국의 수출 주력 상품에 미국은 ‘슈퍼 301조’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철강협회 한 간부는 “미국 기업은 승산도 없고 이유도 불분명한 덤핑 제소를 걸기도 했다. 그런데도 국내 기업은 4∼5개월 동안 실사를 통과하고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종종 치명적인 타격을 입곤 했다”라고 말했다.



만약 미국이 한국을 길들이기로 작심했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프랑스 생수나 포도주에 시비를 건 것처럼 부시 행정부는 한국 수출품을 규제하는 울타리를 더욱 높일 것이다. 이는 미국 업계의 이해와도 맞물려 있다. 현재 미국은 자국의 철강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며 일부 품목에 30% 관세를 부과하는 201조를 발동하고 있는데, 이러한 조처를 강화할 수 있다. 한국은 201조에 철강 분야에서만 14개 품목이 걸려 있다.



“미국이 한국 곤경에 빠뜨릴 방법 수백 가지”



미국이 길들이기에 나설 경우 가장 걱정되는 곳이 금융 분야이다. 한국개발연구원 박창균 연구위원은 “국제 금융 시장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한국 금융 시장은 외국인 투자자에게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미국이 금융 시장에서 힘들이지 않고 한국을 곤경에 처하게 할 길은 수백 가지도 넘는다”라고 말했다. 투자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미국 투자자들조차 최근 프랑스 및 독일 채권 매입을 거부하는 등 감정적 대응에 나선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이견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우승구 연구원은 “금융은 정부 권한 밖이다. 미국 정부가 국익을 위해 기업을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다. 영국이 국제통화기금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정부가 금융 시장에 적극 개입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어찌 되었든 한국은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치명적인 국가적 위험(Country Risk)을 안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이 북한에 강경 메시지를 전하면 한국에 투자하려는 심리가 위축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 행정부 고위 관리의 발언 수위에 한국 주가가 요동한 것은 이를 잘 증명한다. 실제로 투자 매력도에 비해 외국인 투자자의 포트폴리오(투자 종목 구성)에서 한국 투자 비율이 줄고 있는 것은 미국의 견제 때문이라고 보는 이가 적지 않다. 미국의 견제가 심해질수록 국내 기업이 원망하는 소리는 높아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노무현 정부는 초반부터 큰 시련을 맞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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