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복마전’ 몰아치는 ‘차붐’
  • 나권일 · 고재규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2.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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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일 특검팀, ‘檢風’ 꺾고 잇단 개가…
호 남 커넥션·로비 실체 규명 ‘최후 승부’ 남겨
지난해 11월28일, 차정일 변호사(59)는 대한변협 반한수 사무총장으로부터 특별한 전화를 받았다. “특별검사로 추천했으니 사양하지 말고 변협의 기대에 부응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당시 대한변협은 판사 출신으로 서울변협 회장을 지낸 김성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인 차정일 변호사를 특별검사 후보로 추천했다. 언론은 며칠 전부터 ‘정국 상황이 민감해 안강민 전 대검 중수부장, 이종왕 전 대검 수사기획관 등 검사 출신 변호사 대부분이 특검 직을 맡는 것을 고사했다’며 ‘판사 출신 특검’ 가능성을 흘렸다.


이틀 뒤인 11월30일, 김대중 대통령은 예상을 깨고 차변호사에게 ‘이용호 게이트’ 재수사를 맡겼다. 오홍근 청와대 대변인은 “검사· 변호사로서의 경륜과 사건 처리 능력, 원칙을 중시하는 강직한 성품을 갖고 있어 적임자로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흐른 지금 차정일 특별검사는 주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검찰 살생부’를 쥐고 있는 그는 현재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 대상이다. 차정일 특검은 “의혹이 있다면 누구든 불러들이겠다. 역사 앞에 심판받는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다”라고 밝혔다(23쪽 상자 기사 참조).



차정일 특검팀이 지금까지 거둔 성과는 화려하다. 특검팀은 지난 1월13일 현직 검찰총장의 동생 신승환씨(49)를 알선 수재 혐의로 구속해, 거대 야당의 탄핵 압력에도 끄떡하지 않던 ‘실세’ 신승남 총장을 끝내 낙마시켰다. 특검팀은 대검 중수부가 3개월 동안 쫓아다니다 포기한 로비스트 김영준씨(42)도 체포했다. 김씨는 불법 주식거래 등을 통해 자신이 대주주인 KEP전자에 3백억원대 손실을 입힌,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1월18일 구속되었다.



특검팀은 현재 김영준씨 체포 과정에서 놓친 20대 여인의 행방을 쫓고 있다. 정·관계 로비 의혹이 담긴 하드 디스크를 삭제할 만큼 노련한 김씨가 자신의 이전 도피처에 이 여인을 보내 중요한 자료를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차정일 특검팀이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자 야당까지 거들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지난 1월19일 ‘특검팀의 분투에 격려를 보낸다’는 제목으로 논평을 냈고, 이강두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특검팀의 원활한 수사를 돕기 위해 당 차원에서 특검법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차정일 특검팀이 1999년 옷로비 사건이나 파업유도 사건 특검과 달리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특검팀 스스로 내세우는 ‘원칙 수사’를 꼽을 수 있다. 옷로비 사건을 담당한 특검팀은 핵심 수사 대상이 김태정 전 법무부장관의 부인 연정희씨라는 점 때문에 처음부터 강도 높은 수사를 하기 힘들었다. 지난해 신승환씨를 수사했던 대검 중수부 역시 현직 검찰총장의 동생을 수사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원칙 수사·조직력이 최대 강점



그러나 특검팀은 차정일 특별검사부터 10년 이상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검찰과 인연을 끊고 살았기 때문에 계보와 인맥으로부터 자유롭다. 차특검은 소환자들을 직접 조사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친정집인 검찰에 칼을 대기 어려운 처지인 파견 검사들을 정·관계 로비 부분 수사에만 전념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차특검의 용인술도 두드러진다. 검찰 눈치를 볼 이유가 없어 처음부터 꼼꼼하고 원칙적인 수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차정일 특검이 서울, 이상수·김원중 특검보가 각각 경북 의성과 충북 괴산 출신이어서 이용호씨 비호 의혹을 사고 있는 호남 인맥과 인연이 없다는 점도 자유롭게 수사할 수 있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조직력이 탄탄한 것도 차특검팀의 특징이다. 현재 차특검팀 실무는 이상수·김원중 특검보가 지휘한다. 여운환·김영준 씨를 수시로 불러 직접 조사할 정도로 열성인 이상수 특검보(45)는 부산지검 형사부장 출신이다. 이특검보는 송해은 부장검사(43), 윤대진(38)·우병우(35) 검사 등 파견 검사들과 함께 이용호 게이트의 핵심이라고 할 정·관계 로비 의혹을 원점에서부터 파헤치고 있다.



파견 검사들 면면도 화려하다. 송해은 부장검사는 1997년 김현철 비리 사건을 파헤친 ‘심재륜 드림팀’ 소속이었고, 우병우 검사(사시 29회)는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기록을 세운 엘리트 출신이다. 이들은 한국통신파워텔 사장 이기주씨(58)를 구속하고 도피 중이던 김영준씨를 체포하는 개가를 올렸다.



검찰에 칼끝을 겨누고 있는 김원중 특검보(44)는 경제사건 전문 변호사이다. 김석종 변호사(38)를 비롯해 성창익 변호사(32·김&장 법률사무소)·이영희 변호사(31·여·법무법인 바른법률) 등 이른바 로펌 출신 ‘젊은 피’들과 함께 검찰의 이용호씨 비호 의혹을 집중 수사한다. 꼼꼼하게 관련 법을 검토해, 대검 중수부가 풀어주었던 신승환씨를 구속한 것이 김원중 팀이 거둔 최대 성과이다.






김원중 팀은 이번 주에 임휘윤·임양운·이덕선 씨 등 이용호씨 수사 라인과, 신승환씨와 접촉했던 간부 검사들을 줄줄이 소환해 조사한다. 특히 이용호씨는 2000년 5월 긴급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뒤 ‘검찰에 손을 썼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 것으로 알려져 김원중 특보팀의 재수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사 생활을 거치지 않아 거리낄 것이 없는 이들 젊은 변호사들이 이용호씨 비호 의혹을 받고 있는 검찰 간부들에게는 ‘저승사자’처럼 비칠 수밖에 없다.



차특검팀은 급조되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짜인 팀워크가 강점이다. 특히 김영준씨 구속은 팀워크가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전직 경찰 3명과 현직 1명 등 베테랑 형사들로 구성된 검거반은 단 10여 일간 밀착 추적해 김씨를 체포하는 순발력을 발휘했다(24쪽 기사 참조).
현직 공인회계사를 포함해 금융감독원·국세청·증권거래소 서울지검에서 파견된 7명이 주축인 계좌추적팀도 ‘특검팀의 꽃’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맹활약했다. 계좌추적팀은 여운환씨 가족의 계좌를 뒤져 이기주씨를 사법 처리했다. 또 신승환씨 주변 계좌를 추적해 신씨가 공무원 청탁 명목으로 8천만원을 현금으로 받은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이용호씨 변호 명목으로 1억원을 받은 김태정 전 법무부장관 등 변호인단 3명의 계좌 추적과 김형윤 전 국정원 경제단장, 이형택 예금보험공사 전무 등의 금품수수 의혹 수사도 맡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 추가 사법 처리될 대상자는 이 팀이 가장 먼저 찾아낼 가능성이 있다.
옷로비·파업유도 특검의 한계를 거울 삼아 특검법을 강화한 것도 차특검팀에게는 날개를 달아 준 격이 되었다. 지난해 11월22일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은 최장 1백5일 동안 수사할 수 있는 데다, 수사 도중 명백히 연관성이 있을 경우 파생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김영준씨 변호인단이 이용호 게이트와 무관하다며 특검에 ‘이의 신청’을 냈지만 서울고법이 기각해 특검팀에 힘을 실어준 것도 이 때문이다. 특검법은 또 수사와 공소 제기 결정 및 공소 유지권도 가지고 있다. 수사할 의지만 있다면 법적인 걸림돌이 거의 없는 셈이다.



이처럼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특검팀이 갈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현재 특검법에 명시된 수사 대상은 이용호씨 주가 조작·횡령 사건, 이용호·여운환·김형윤 씨 등의 정·관계 로비 의혹 그리고 앞의 두 사건과 관련한 진정·고소·고발에 대한 검찰의 비호 의혹 등 세 가지이다.
이용호 게이트 수사의 본류는 이용호씨와 여운환· 김형윤·김영준 씨가 합세한 ‘정·관계 로비 의혹’인데 아직까지 이렇다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게이트의 핵심인 이용호·여운환 씨의 로비 수법은 수사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담해 아무리 ‘날고 기는’ 특검이라도 수사하기가 녹록치 않다. 이씨는 호남 출신 고위층을 로비 대상으로 삼아 접근·포섭에 거액의 돈을 썼다.
이씨는 1990년대 중반 자기가 운영하던 반도종합건설 투자자를 물색하다가 이정일 <전남일보> 사장(현 민주당 의원)에게 접근하려고 소개비 명목으로 1억원을 사용했다. 이용호씨는 또 현재 해외에 도피 중인 전 로케트전기 전무 윤 아무개씨의 고등학생 아들에게 구속되기 몇 달 전에 수표 30만원을 앉은 자리에서 용돈으로 줄 정도로 씀씀이가 컸다.



허옥석·오세천 씨 캐면 ‘대어’ 건질 수도



이용호씨의 핵심 측근인 허옥석씨(43) 또한 마찬가지이다. 허씨는 이씨와 광주상고 동기 동창인데, 지난해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대검 중수부 수사관들에게 전달해 달라’며 파견 근무 중인 경찰관에게 5천만원을 건네 구속되었다. 이용호씨의 대담한 로비 수법을 빼닮은 것이다.



허씨는 이용호씨의 전환사채펀드에도 가입해 있고, 게이트 의혹의 정점인 삼애인더스 보물 탐사와 관련해 이형택 예금보험공사 전무와 이용호씨를 연결한 핵심 인물이다. 허씨는 보물이 발견될 경우 이씨와 지분을 나누어 갖기로 계약했을 정도로 이씨의 사업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 때문에 특검팀이 허옥석씨를 추궁해 이형택·김형윤 라인에 대한 로비 의혹을 집중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대검 중수부는 지난해 ‘김형윤 전 국정원 경제단장은 보물섬 인양 사업과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고, 이형택 전무도 소개 대가나 지분 등을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해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여운환씨(48) 역시 특검팀이 다루기에 만만치 않은 상대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1991년 여운환씨 수사에 들어갔을 때 부장검사·수사관·판사·안기부·경찰·전남도경 등지에서 ‘여씨가 조폭이 아니다’는 말을 똑같이 되풀이했다. 오히려 내가 포위된 느낌이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정·관계와 검찰 쪽에 여씨를 감싸주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예전에 대검은 여씨를 구속하고도 ‘여씨가 정·관계에 로비한 흔적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해 축소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구속된 대양상호신용금고 대주주인 김영준씨 역시 2000년 11월15일 광주 프라도호텔 소유주였던 미조투자개발(G&G 그룹 계열사)에 50억원을 대출해 주고 프라도호텔에 100억원 근저당을 설정했을 정도로 이용호씨와 거래 관계가 깊다.



사실 이용호 게이트의 핵심은 ‘끼리끼리 문화’에 익숙했던 신흥 사업가와 검찰·정계·관계가 어울린 이른바 ‘호남 커넥션’이다. 특검이 제대로 수사하려면 프라도호텔을 무대로 삼아 이용호·여운환 씨가 벌인 정·관계 로비의 실상을 파헤쳐야 한다.



불거진 정·관계 로비 의혹 가운데 현재까지 이용호씨와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진 정계 인사는 강운태·이정일 의원과 이환의씨이다. 여운환씨와 친분이 있는 인사로는 김홍일 의원과 조홍규 전 의원· 대선 주자 ㅎ씨 등이 꼽힌다.



강운태 의원은 “2001년 7월께 이용호씨가 찾아와 만난 적이 있다”라고 밝혔다. 김홍일 의원은 지난해 8월 프라도호텔에서 여씨와 만난 것으로 확인되었다(<시사저널> 제623·624호 참조).



이환의 한나라당 광주시지부장이 관련되었다는 것은 김옥두 의원이 지난해 10월 “이용호씨가 1995년부터 여운환씨 소개로 만난 이환의씨 도움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라고 주장해 처음 알려졌다.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할 대상은 삼애인더스 보물 탐사 작업을 함께 추진한 오세천씨(34)이다. 오씨는 지난해 <시사저널>(제627호)과의 인터뷰에서 “이용호씨를 만나면서 권력 실세들에 대해 많은 것을 들었다”라고 밝혔다. 오씨는 아직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데, 그의 입을 여는 일 역시 특검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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