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피랍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4.06.2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라크 교민 “서울신문 보도는 진실”…미군 조작설 등 음모론 쏟아져
“거짓말을 멈춰라.” 김선일씨를 납치한 이라크 무장조직 ‘유일신과 성전’ 단원이 김씨를 살해하기 전 한국인들에게 외친 말이다. 이 외침은 지금 한국인들에게 다른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김선일씨 피랍 사건에 대한 의혹과 거짓이 폭로되고 있기 때문이다. KAL858기 폭파 사건 이래 이처럼 음모론이 난무한 사건은 거의 없었다.

김씨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은 ‘실은 미군이 김씨를 죽였다’는 다소 무리한 주장에서부터 ‘외교통상부 직원이 AP와 통화했을 것’처럼 후에 사실로 밝혀진 내용까지 다양하다. 디시인사이드(dcinside. com)에 개설된 김씨 피랍 사건 토론 게시판에는 ‘김씨 사건의 진실’ ‘여섯 가지 의혹’ ‘그들은 알고 있었다’ 등 매일 100건이 넘는 음모론 관련 글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전모 알면서 은폐했다?

브레이크뉴스닷컴(breaknews.com)은 음모론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사이트 가운데 하나다. 그 중 몇 개를 발췌하면 ‘김천호 사장은 무장단체가 비밀 유지를 원해서 대사관에 알리지 않았다는데 이것은 무장단체가 AP에 비디오테이프를 보냈다는 사실과 모순된다.’ ‘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받은 AP가 이라크 한국대사관을 놔두고 지구 한바퀴를 돌아 서울에 문의했나?’ ‘특종 때문에 비디오테이프 존재를 숨겼다는 AP는 왜 6월21일에 비디오를 공개하지 않아 특종을 놓쳤나?’ 등이다. 브레이크뉴스 변희재 대표(32)는 “김씨 피랍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더 이상 음모론이 아니다. 논리를 따르다 보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모순을 이야기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 와중에 6월28일 서울신문 보도는 음모론에 새로운 불을 지피고 있다. 서울신문 인터넷판은 이 날 ‘한 이라크 교민 기업인이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왔다. 6월10일쯤 미군이 김천호 사장에게 김선일씨가 과격·무장 세력에게 넘겨졌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보도했다. 이 교민은 가나무역 직원들과 친분이 두터워 김씨 피랍 사건의 내막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은 그의 말을 인용해 ‘김선일씨와 함께 피랍된 이라크인 운전사가 6월3일쯤 풀려났으며 현재 은신 중이다’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를 쓴 서울신문 김수정 기자는 “제보자는 평소 서울신문과 교류가 있던 사람이다. 그가 6월27일 나에게 ‘진실을 밝히고 싶다. 왜 이 문제가 덮이고 있느냐’며 전화를 걸어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외부의 압력을 받고 있는 상태는 아니며, 아직 한국에 들어올 계획은 없다고 한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미군 당국이 김씨 피랍을 알고서도 한국 정부에 알리지 않았거나, 한국 정부가 전모를 알고서도 은폐했다는 뜻이 된다. 이 보도에 대해 이라크 바그다드에 체류하는 한 한국인은 6월28일 오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서울신문 보도는 이곳 교민들이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며 놀라울 것도 없다. 바그다드에서 취재 중인 특파원도 아는 이야기인데 왜 서울에서 직접 보도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라고 의아해했다.

김씨 피랍 사건에 유달리 음모론이 몰리는 까닭은, 현지 확인이 쉽지 않고, 교민이 적어 몇 사람만 입을 다물면 진실이 은페되기 때문이다. 사건을 밝힐 열쇠를 쥐고 있는 김천호 가나무역 사장은 지난 6월28일 “7월1일 귀국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