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식탁’도 불안하다?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4.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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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밀 살린다더니 중국 팥 쓰다 ‘들통’…친환경 먹거리 관리 허점 드러내
도대체 뭘 먹나. 만두 파동에 이어 서울지검이 ‘중국산 김치 블록’을 비롯해 50개 식품 관련 법 위반 사범에 관한 내용을 발표하면서 먹거리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그간 안전 지대로 여겨져온 유기 식품 업체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우리밀 살리기에 앞장서온 (주)더불어식품이 원산지 미표기로 적발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유기 식품 업계가 한바탕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주)더불어식품의 혐의는 미국산 밀과 중국산 팥을 일부 원료로 썼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가운데 중국산 팥을 원료로 한 빵 등은 농협하나로마트 등 일반 유통망을 통해 팔려나갔다고 밝혔다.

‘원산지 미표기’ 사실 드러나

이 회사와 거래해온 단체들은 충격이 크다. 가장 규모가 큰 생활협동조합(생협)인 한살림은 조합원의 항의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실무자인 강형국씨는 “문제가 된 통밀스낵은 취급하지 않고, 중국산 팥이 들어간 제품도 우리에게는 납품되지 않았지만 그 회사의 다른 제품을 취급하고 있어서 조합원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라며 곤혹스러워했다. 현재 한살림은 더불어식품으로부터 가공 식품 40여 종을 납품받고 있는데, 조합원 회의를 거쳐 거래를 전면 중단키로 했다. 다른 생협도 비슷한 조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주)더불어식품(대표 안희섭)은 1백80여 종의 가공 식품을 만드는 회사이다. 이번 조사에서 위생에 문제는 없었지만, 회사 대표가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주도하면서 소신파 중소기업인으로 회자되던 인물인 만큼 관련 업계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비영리 유통망을 통해 거래되는 친환경 식품의 규모는 전체 시장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성장세가 가파르다. 생협 등 기존 비영리 단체에는 회원이 늘고, 백화점 등 기존 유통망에서는 장사가 된다고 판단해 판로를 늘리고 있다. 생협전국연합회에 따르면, 최근 생협 회원은 매년 25~35%씩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말 전체 생협 숫자는 1백44개로 총 25만여 명이 다양한 형태의 생협에 가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한살림은 5월 말 현재 회원이 8만5천 명에 이르러 가장 규모가 크다.

할인점에 고객을 뺏기고 있는 백화점도 웰빙 트렌드를 적극 껴안고 있다. 조금 비싸더라도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고객을 겨냥해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새로운 친환경 농산물 유통망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숍인숍 형태로 ‘구텐모르겐’을 운영하고 있고, 롯데백화점은 지난 4월부터 ‘푸름’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었다. 또 생산지·재배 방식·생산자 등을 기록한 정보를 구매자가 직접 모니터할 수 있도록 하는 생산이력제를 도입했다. 매장에 컴퓨터를 설치해, 도서 검색하듯이 즉석에서 정보를 불러내도록 한 것이다. 롯데는 현재 10% 정도인 유기 식품 매출을 30%대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백화점업계의 발 빠른 대응은 그만큼 잠재 고객이 많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지난 수십 년간 유기 식품의 주요 유통망 노릇을 해온 기존 생협에게도 새로운 도전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한살림측은 몇년 전부터 회원이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성향이 예전과는 다르다고 분석하고 있다. “예전에는 조합원으로서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운동을 이끈다는 문제 의식을 공유했지만, 요즘 도시 조합원의 경우 자신을 ‘고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물건에 대해서 까다로운 반면, 함께 문제를 풀어가려는 자세는 부족하다”라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달리 보면 소수의 운동가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안전한 먹거리를 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그만큼 커졌음을 의미한다. 외형이 커지면서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하던 활동 원리로는 버티기가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가장 큰 약점은 가공 식품 생산이 영세하고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도 스낵과 빵류 등 가공 식품이다. 김치나 젓갈과 달리 이런 제품을 만들려면 따로 제조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외부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 외부 가공업체는 생협의 규모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여러 곳과 거래하게 된다.

(주)더불어식품도 10여 곳이 넘는 곳과 거래해왔다. 그만큼 공정에 대한 품질 관리를 보장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한살림측은 “되도록이면 생산지에서 가공 과정까지 맡도록 공정을 확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화장품·스낵·라면 등은 외부에 의존하고 있다. 내부에서 생산하는 제품에 비해 품질 관리가 허술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라고 말했다.

1차 유기농산물뿐 아니라 가공 식품까지 폭넓게 취급해야 하는 백화점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롯데백화점 식품매입팀 김갑준 계장은 “1차 유기농산물은 한국유기농협회 인증을 거쳐 공급받고 있지만, 가공 식품은 수입품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국내 수준이 영세하고 열악해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1차 농산물은 관리가 체계적이다. 현재 1차 농산물은 모두 국내 인증 기관을 통해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친환경 농산물이라는 하나의 마크 아래 등급 별로 한글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낮은 등급부터 ‘저농약’ ‘무농약’ ‘유기’ 순이다. 저농약 농산물은 농약 사용이 일반 농산물의 절반 이하, 무농약 인증은 농약은 쓰지 않고 화학 비료는 쓴 경우, 유기 농산물은 농약과 화학 비료를 둘 다 쓰지 않은 경우이다. 전환기제품은 원래 농약과 화학 비료를 쓰던 논밭에서 유기 농법으로 재배한 지 1년 이상 되었음을 뜻한다.

아직 가공 식품은 1차 농산물과 같은 단일한 공인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다만 위생 관리 시스템을 잘 갖춘 업체가 만든 제품에 대해 부여하는 ‘위해요소 중점관리’(HACCP) 인증이 그 기능을 할 수 있다. 현재 육류나 우유 가공 식품 등에 주로 부여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수입 가공 식품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완제품으로 수입되는 만큼 수입국의 다양한 인증 결과를 표기하는 것으로 필요한 정보를 표시할 뿐이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커지는데, 친환경 먹거리와 이를 가공한 가공 식품에 대한 관리 체계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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