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구별 않는 ‘평등 부부’ 4쌍
  • 張榮熙 기자·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1996.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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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구별 않는 ‘평등 부부’ 실천자들/“이해하고 베풀면 기쁨이 두 배”
‘우리는 서로의 주체적 발전과 우리를 둘러싼 교육과 사회, 민족·인류의 시대적 사명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우리는 우리의 가정, 살림, 의식주 생활과 2세에 대하여 평등하게 공동으로 협력하고 책임을 진다’. 어느 30대 부부가 7년 전 결혼식 하객들 앞에서 발표한‘결혼계약서’의 한 부분이다. ‘단기 4321(조국분단 44), 12.25’라는 날짜 하며 피를 내어 찍은 지장은 계약서 내용을 한층 심각하고 특별하게 보이게 한다.

남들보다 ‘튀게’ 시작한 결혼 생활이라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정영훈(36)·김정미(32) 부부는 부칙까지 10개 조항을 가진 이‘부부 헌법’을 준수하기 위해 지금도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계약서 조항을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데 많은 경우 생각이 달랐고 심하게 갈등을 빚은 일도 적지 않았다.

‘육아’ 명목으로 조퇴하는 남편

정씨와 김씨는 각각 서울 소재 당곡·은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부부 교사이며 참교육(전교조)을 지지하는 ‘동지’이기도 하다. 자주 티격태격한다는 점에서 보통 부부와 다를 바 없다. 이들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싸우는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서로의 불평등한 행태를 문제삼는 것이다.

결혼계약서도 그 증거지만, 이 부부의 평등 실천은 다분히‘의도적’이다. ‘정새해김(7)’‘정김한얼(4)’은 이 부부의 딸과 아들 이름이다. 두 아이는 비록 공식 사회조직에서는 정씨 성을 가진 것으로 분류되겠지만 분명히 정과 김 두가지 성을 따르고 있으며, 새해와 한얼은 이름일 뿐이다. 이 부부는 아버지의 성만 따르도록 되어 있는 호적제도가 남녀 불평등을 조장한다고 믿는다.

정교사는 당당하게 ‘육아’명목으로 조퇴를 신청한 첫 번째 아버지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몇년 전 정씨는 비록 교감 선생님한테서 실제 그렇더라도 다른 명목을 쓰라며 ‘퇴짜’를 맞았지만 남자 망신을 시키며 결국 육아 조퇴를 결행했다. 정씨는 음식 만들기, 설거지, 아이 돌보기 같은 전형적인 ‘여자일’에서부터 빨래, 청소, 집안 고치기 같은 집안일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아내와 나누어 하고 있다. ‘역할 파괴’다.

<반쪽이의 육아 일기>로 알려진 시사만화가 최정현씨(35)와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는 변재란씨(34)는 평등 부부로 꼽히는 데 이미 ‘공인’을 받은 부부다. 이 부부 가운데 아이(최하예린·6) 돌보기에 물리적 시간과 정성을 많이 들이는 쪽은‘여편’이 아닌 남편이다. 변씨가 영화문화예술기획에 출퇴근하는‘샐러리맨’인 데 비해 최씨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최씨는 육아의 주담당자가 되면서 주변 남성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야 했고 때로는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아픔도 맛보았지만, 아이를 기르면서 인간으로서 성숙한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최정현·변재란 부부 못지 않게 집안일 분담과 지역 활동에 열심인 부부로 조석곤(36)·이남희(34) 씨를 들 수 있다. 두 사람 다 대학에 출강하는 이들은 89년 결혼할 때부터 ‘남편은 빨래, 아내는 음식 준비, 청소는 둘이 함께’라는 행동 수칙을 정해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실천하고 있다고 자평한다. 요리 만들기를 즐기는 조씨는 손님 치레에서 이씨의 솜씨를 가볍게 제압한다. 남편의 동파육, 감자 그라탕, 치킨 파인애플 같은 요리는 이씨도 인정하는 품목이다. 과천에서 보육 시설을 만들고 상수도 불소화 사업에 앞장서는 등 이들 부부의 이웃·지역 사랑은 가족 이기주의를 무너뜨리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농촌에서는 흔치 않은 40대 맞벌이 부부인 이병권(47)·임영숙(45) 씨. 이씨는 영산강 농지개량조합 담양지소에서, 임씨는 전남 담양군 남면 농협에서 일하고 있다. 임씨는 20년째 일터에 나가고 있다. 따라서 이씨의 가정내 역할이 막중할 수밖에 없다. 이씨는 새벽 4시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깨운다. 아내는 집안 청소와 저녁 식사를 맡는다. 농협 부녀부장인 임씨는 이씨보다 바쁠 때가 많아 오전 1시에 귀가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때는 저녁과 청소마저 이씨 차지가 된다. 아내에 대한 이씨의 이해와 배려는 임씨가 헌신적으로 시어머니를 봉양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영양(17)·두성(14) 두 손녀·손자를 맡아 며느리의 직장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 시어머니도 행복한 가정을 만든 주역일 것이다.

가장인 이씨한테서 전통적 의미의 권위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매주 토요일 오후 가족회의를 연다. 크고 작은 집안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필요한 물품 구입도 의논해 정한다. 평등 부부로서 이들이 사는 방식은 간단하다. 나는 남자니까 나는 여자니까 하는 식으로 대접받으려 하기보다 서로를 먼저 이해하고 베풀면 자연스럽게 두 배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장모와 살면서 장인 제사 모셔

집안일 분담은 물론 재산을 부부 공동 명의로 해 평등을 과시하는 부부도 늘고 있다. 신수영(38)·이복순(39) 부부는 택시기사와 미싱사로 일하며 어렵게 마련한 집을 공동 명의로 등기했다. 이씨는 남편이 우겨 문패에 나란히 이름을 적을 수 있었다며 만족해 했다. 집뿐만 아니라 저금통장 등 이 가정의 모든 재산은 공동 명의로 되어 있다. 남편 단독 명의는 부부가 함께 모은 재산이더라도 여성은 사회적으로 뭔가 대표할 수 없다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는 말도 나올 법한데 신씨는 이런 말조차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저 아내를 사랑하고 자신과 나란히 누워 자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공동 명의를 밀어붙인 이유다. 재산 공유는 재산 관계를 꼭 분명히 한다는 차원보다 부부의 평등성을 드러내는 의미가 클 것이다.

집안일 분담을 넘어 사회의 노동 동료로서 어깨동무를 시도하는 적극 지원파도 적지 않다. 윤영오씨(52·국민대 교수·여의도연구소장)와 장혜란씨(44·한양대 교수)는 서로의 일을 강력히 밀어주는 부부로 볼 수 있다. 미국에서 함께 공부하다가 윤씨가 학위를 끝내고 먼저 귀국했다. 그가 자리잡을 동안 장씨는 2년 정도 미국에 남아 아이들을 돌보았고, 그 이후 2년은 윤씨가 한국에서 아이들을 길렀다. 장씨가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 다 혼자 아이 기르기는 무척 어려웠다고 말한다. 윤교수는 요즘과 달리 당시만 해도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는 사회적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었으며, 장교수는 장교수대로 알게 모르게 인종 차별이 있는 땅에서 양육해야 했기 때문이다. 윤교수는 또 아버지의 역할에 남달리 무게를 싣는다. ‘상문고 아버지회’를 만들어 이끌고 있는 윤교수는, 왜 꼭 아버지가 엄해야 하는가라고 되묻는다. 엄부자모란 말은 부모 한쪽이 누군가 그 역할을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들말고도 장모와 사는 최한수 교수(48)는 설과 추석에 자신의 부모는 물론이고 장인 제사와 성묘를 하며 처가의 여러 경조사도 빠뜨리지 않는다. 명절에 남성들을 일로 끌어낸 정영훈·김정미 부부도 난공불락 같았던 성역할의 벽을 조금씩 허무는 선각자임에 틀림없다. 살아가는 모습도 지위도 소득 수준도 다르지만 자신이 처한 공간에서 ‘부부 무별·역할 따로 없다’를 실천하는 이들 부부들은 분명 부부관계의 평등성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무제2장관실은 94년 현대리서치연구소와 함께 각 분야 인사 5백10명을 대상으로 평등 부부 기준을 물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공평한 의사결정권이 있는가(35.1%)였다. 대화가 원활한지(18.6%), 서로가 상대의 직장 생활이나 취미 생활을 잘 배려하는지(12.5%)가 그 뒤를 이었다. 또 가사에 대한 책임을 나눠 지고(8.9%), 육아와 자녀 교육 책임을 공유하며(8.5%), 부동산·동산 소유권을 잘 나눠가지고(7.9%), 자신의 부모와 배우자의 부모를 대등하게 배려하는지(4.5%)도 비중 있게 꼽혔다.

부부가 평등으로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평등을 지향한다는 부부들이 대체로 싸움이 잦은 까닭은 그만큼 부부 관계를 옥죄온 전통적 가치가 견고하며 스스로도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의미도 된다.

왜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하는가. 사연이야 제각각이겠지만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닌 사람은 없을 것이다. 행복은 어느 일방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평등한 부부 관계, 즉 혜택도 부담도 철저하게 나누어 가져야 가능할 것이다. 슈퍼맨도 슈퍼우먼도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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