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여성들이 몰려온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3.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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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당 영입 경쟁 후끈 ... 여성계 "의석 30% 채우자"
17대 총선 최고의 블루칩은 386도, CEO도 아니다. 여성이다. 여성계는 ‘전체 의석의 30%를 여성으로 채우자’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이번 총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국회의원 중 여성 의원 비율이 5.6%임을 감안하면 30%는 허황한 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완전히 불가능하지만도 않은 것이, 현재 한나라당·민주당·열린우리당은 다같이 비례 대표 중 50%를 여성에 할당하겠다고 밝힌 상태이다. 이와 관련해 참신한 여성 인재를 끌어오기 위한 각 당의 영입 경쟁도 한창이다.

민주당은 최근 김강자 총경(전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이라는 월척을 낚았다. 전남 구례 출신으로 국민의정부 시절 최초의 여성 경찰서장을 지내며 ‘윤락과의 전쟁’을 진두 지휘한 김총경은, 민주당으로부터 제의를 받은 지 열흘 만에 정당행을 전격 결정했다고 한다. 김총경은 현재 전국구 1순위로 꼽히고 있는데, 당내 일각에서는 대중적 파괴력이 있는 그녀를 지역에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하고 있다. 이럴 경우 출마지로는 미아리·청량리 등 윤락가로 유명한 성북구나 동대문구가 유력하게 꼽힌다.

김총경 영입 이후에도 민주당은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 장 상 전 이화여대 총장 등 관료 출신 여성들을 추가로 끌어들이려고 애쓰고 있다. 손봉숙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이사장은 조만간 영입이 예상된다.그런가 하면 한동안 강금실 법무부장관에게 목을 매던 열린우리당은 요즘 한명숙 환경부장관 등 또 다른 대어급 여성 영입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이승희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 장하진 한국여성개발원장은 열린우리당·민주당 양쪽에서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오경숙 전 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를 공동 의장 3명 중 1명으로 내세우는 등 당 조직 정비 과정에서 양성 평등 원칙을 확고히 한 것 또한 열린우리당의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 당 중앙위원에 임명된 김진애(서울포럼 대표이사)·김영주(전 금융노조 부위원장)·홍미영(전 인천시의원) 씨는 차후 비례대표 선출이 유력하다. 노대통령을 후보 시절부터 보좌하다가 최근 청와대에 사직서를 낸 김현미 정무2비서관 또한 손꼽히는 비례대표 후보. 이밖에 광명시의원을 지낸 유승희 여성팀장,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서영교 공보부실장도 상위 후보감으로 거론된다.

전국구 의원들, 지역구 도전 줄이어

반면 당내 사정이 복잡한 한나라당은 아직 영입 작업에 신경을 쓰고 있지 못하다. 대신 한나라당은 일명 ‘한나라당의 미래를 준비하는 여성들의 모임’(한미모)이라는 여성 인재 풀이 중심이 되어 총선을 대비하고 있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영입된 이계경 전 <여성신문> 사장, 김금례 당 여성국장, 진수희 여의도연구소 박사 등이 이 모임을 이끄는 주축이다.그러나 이런 영입 인사 못지 않게 관심을 끄는 것이 지역구에 도전하는 여성들이다. 비록 여성 정치인 비율은 보잘것없지만 최근 정치권에는 당권에 도전할 정도로 역량 있는 여성 정치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38쪽 상자 기사 참조).

이들은 더 이상 전국구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민주당 전국구 배지를 벗어던지고 합류한 이미경·허운나·조배숙 전 의원이 각각 서울 은평 갑·경기 분당 을·전북 익산시에 도전장을 냈다. 개혁당 출신으로 우리당에 합류한 고은광순(대한여한의사회 회장)·노혜경(시인)·윤선희(전 개혁당 최고위원) 씨 또한 각각 한나라당 박원홍(서울 서초갑)·정형근(부산 강서갑)·서청원(서울 동작갑) 의원을 상대하겠다며 ‘간 큰 신인’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신당파의 탈당으로 뒤늦게 전국구 의원 직을 승계한 안상현·박금자 의원이 새롭게 지역 도전에 나선다. 이 중에서도 박의원은 영등포 을 지역을 놓고 김민석 전 의원과 한판을 겨루게 될 전망이다.

“여성 전용 선거구제 등 도입해야”

한나라당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최근 단체장 직을 사퇴한 허옥경 부산 해운대구청장이다. 전국을 통틀어 단 둘뿐인 여성 구청장인 데다, 지난 6·13 선거에서 친오빠를 극적으로 누르고 승리해 전국적인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허씨는 이번 사퇴로 민주당 추미애 의원과 견줄 만한 배짱과 통 큰 면모를 과시했다. 공천 문제로 아직 지역구를 확정하지는 못했지만 “박순천 여사 이후 50년 만에 전통 야도인 부산에서 탄생한 최초의 지역구 여성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라는 것이 이 ‘부산 추미애’의 포부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무턱대고 지역구에 도전하기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고 김금례 한나라당 여성국장은 지적한다. 돈과 조직에서 취약한 여성 신인이 기성 정치판에 뛰어든다 한들 결국 장식물 노릇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계가 한시적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여성 전용 선거구제·지역구 여성 후보 공천 30% 의무제 등이다.

2001년 세계은행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의 정치 참여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부패지수가 낮다고 한다. 정치 자금의 검은 사슬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면 아예 의석의 100%를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한 국회의원의 농담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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