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버리고 ‘기적’을 빚은 박문덕 하이트맥주 회장
  • 이철현 (leon@sisapress.com)
  • 승인 200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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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마니아’ 박문덕 하이트맥주 회장/취임 6년 만에 업계 1위 차지
박문덕 하이트맥주 회장은 불꽃 튀는 맥주전쟁의 승자답지 않은 취향으로 유명하다. 박회장은 미술과 음악을 좋아한다. 지난 9월17일 인터뷰하기 위해 사장실을 찾았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백남준의 설치 작품이었다. 사무실 곳곳에 유화나 조각품이 자리잡고 있었다. “1주일에 한번씩 화랑을 찾는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하나씩 사온 것이 이렇게 쌓였다.”

음악은 젊은이들이 즐기는 힙합과 발라드를 좋아한다. 그는 다시 태어나면 연예인 매니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 좋아하는 가수는 세븐. 연예계에 관심이 많으니 혹시 SM 같은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릴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김사장은 “일은 일이고 취미는 취미다. 술 장사 이외의 사업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박문덕 하이트맥주 회장은 ‘하이트 신화’의 주인공이다. 하이트맥주의 전신인 조선맥주는 반 세기 동안 2위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국내 맥주 시장에서 동양맥주의 철옹성을 뚫고 조선맥주를 1위로 끌어올린 제품은 하이트다. 박회장은 하이트맥주의 기획, 생산, 마케팅 전과정을 총괄 지휘했다.

박회장은 1991년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당시 안정된 수입원이었던 ‘크라운맥주’를 버리자고 제안했다. 당시 크라운맥주는 시장 2위를 지키며 안정된 수입을 올리는 효자 브랜드였다. “시장 2위라고 하지만 맥주 회사가 둘밖에 없던 점을 감안하면 ‘꼴찌’였다.” 임직원들에게 만연한 패배 의식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크라운’을 베어버리고 1993년 하이트를 출시했다. 출시 이후 하이트는 승승장구했다.

박회장은 1997년 9월14일을 잊지 못한다. 시장 점유율에서 OB맥주를 제치고 1위에 오르면서 만년 2위의 한을 푼 것이다. “모든 종업원과 함께 생맥주 잔치를 벌였다. 내 생애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현재 하이트맥주는 시장 점유율 57%를 차지하면서 절대 강자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하이트가 선전함으로써 회사 가치도 크게 올라갔다. 박회장 취임 당시 하이트맥주의 시가총액은 4백32억원이었으나 올해 8월25일 현재 1조2천9백억원으로 급상승했다. 무려 2천8백60%나 증가한 셈이다. 박회장 취임 이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 경상 이익은 3천6백28억원이다. 경이로운 경영 실적이다.

이쯤 되면 박회장은 여유를 가질 만하다. 하지만 박회장은 지금도 임직원들에게 위기 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1등에 올랐다고 방심하면 언제든지 다시 2위로 추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두산처럼 큰 회사가 1위 자리를 내놓았는데, 매출과 자산 규모가 작은 하이트맥주는 언제 추월당할지 모른다.”

박회장은 “임직원이 대표이사를 인정해야 회사 경영이 순조롭다”라고 말했다. 최고경영자가 지나치게 앞서가거나 처지면 임직원들이 최고경영자의 판단을 불신하게 된다. 최고경영자는 앞서가야 하지만, 임직원이 생산과 판매 현장에서 느끼는 현실과 동떨어져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 박회장은 생산직 직원들과 자주 만나고 해외 시장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자주 출장을 다닌다.

박회장이 최근 자주 찾는 지역은 유럽과 중국이다. 유럽은 전세계 최고의 맥주 브랜드가 모여 있는 곳이고, 중국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시장이기 때문이다. 박회장은 하이트를 칼스버그·하이네켄·버드와이저 같은 세계적인 맥주 브랜드로 키우고 싶어한다. 그는 언뜻 보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듯하다.

하이트가 전세계인이 마시는 맥주가 될 것이라는 목표는 무모해 보인다. 하지만 누가 알랴. 박회장을 제외하고는 크라운맥주가 OB맥주를 제칠 것이라고 내다본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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