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킹 이데올로기’를 향한 강력한 춤사위, 《스윙키즈》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2.14 14:24
  • 호수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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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스캔들》 《써니》 《타짜》 등으로 대중 껴안는 강형철 감독의 연출법

빤한 이야기가 나쁜 게 아니다. 빤한 이야기를 빤하게 그리는 게 나쁠 뿐이다. 상업 오락영화의 미덕은 어쩌면 빤할 수 있는, 우리 안에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빤하지 않게 그려내며 공감을 길어내는 능력에 있는지 모른다. 결국, 천편일률적으로 쏟아지는 상업 오락영화들 안에서 그 완성도를 가르는 첫 번째 요소는 감독이란 존재. 여기에서 탁월한 감각을 보여온 이가 바로 강형철 감독이다.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신의 손》이 그 증거물들이다. 강형철 감독의 네 번째 영화 《스윙키즈》는 대중을 두루 껴안는 그의 특기가 다시 한번 리드미컬하게 스텝을 밟는 영화다

《스윙키즈》의 무대는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관할하에 설치된 거제도 포로수용소다. 남(南)·북(北)·미(美)·중(中)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혼재된 공간. 그러니까 시대의 비극이 울타리를 친 기묘한 국제시장인 셈이다. 전쟁은 누군가에겐 체제 선전을 위한 장(場)이 되기도 한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새로 부임한 미군 소장이 그렇다. 그는 수용소의 대외적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전직 브로드웨이 탭댄서 출신 미군 하사 잭슨(자레드 그라임스)에게 댄스단 결성을 지시한다. 아니, 포로들을 데리고 춤을 추라고? 불가능해 보이던 미션은, 인민군 포로 로기수(도경수), 4개 국어에 능통한 무허가 통역사 양판래(박혜수), 피란 중에 헤어진 아내를 찾는 순정남 강병삼(오정세), 외모를 배반하는 영양실조 중공군 포로 샤오팡(김민호)이 뭉치면서 반전을 보여준다. 

 

영화 《스윙키즈》의 한 장면 ⓒ (주)NEW


익숙한 이야기를 춤으로 버무린 신선함

이야기의 면면을 따로 떼놓고 보면 그리 새로운 게 없다. 오합지졸들이 뭉치고 화합하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은 《스윙걸즈》나 《워터보이즈》 등의 영화에서 많이 봐온 그림이다. 분단을 소재로 남북의 이념을 그린 상업영화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양극단에 놓인 익숙한 문법의 이야기를 춤이라는 리듬 아래 버무리니, 이것 참 신선하다.

무엇보다 박자감 넘치는 기술적 기교가 극 전반에 흘러내려 흥미롭다. 강형철 감독이 밝혔듯, 이 영화는 각 캐릭터의 감정과 사건을 춤으로 표현하려 한 영화다(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춤이 말을 대신한다. 이는 각 캐릭터의 언어가 다르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을 텐데, 소통 문제를 춤이라는 몸의 언어를 빌려 해결해 낸다는 점에서도 매우 효과적이다). 이를 위해 영화가 구사해 낸 카메라 앵글의 다채로움과 편집의 묘가 상당하다. 앵글 자체가 리듬으로, 편집 자체가 하나의 춤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춤과 전쟁이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가 절묘하게 어울리며 빚어내는 마법.

영화 초반 포로수용소는 판타지스럽게 그려진다. 사실 서로에게 총부리를 들이밀던 국군과 인민군, 미군과 중공군이 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나가 되는 무대 자체가 현실에선 보기 힘든 판타지다. 피부색, 계급, 이념을 벗고 우정을 나누는 모습 역시 판타지스럽다. 이는 지역, 계층, 성별 등의 갈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금 현실에 비추어도 일견 꿈같은 모습이다. “아이 원트 저스트 댄스(I want just Dance)!” “뻐킹 이데올로기(Fucking Ideology)!”라는 대사에 담긴 영화의 함의는 소통 단절에 시달리는 현시대에도 울림이 크게 와 닿는다.

강형철 감독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음악이다. 재즈 스탠더드 넘버로 손꼽히는 베니 굿맨의 《싱 싱 싱(Sing Sing Sing)》뿐 아니라, 80년대 비틀스의 《프리 애즈 어 버드(Free As A Bird)》 등을 적시에 녹여 흥을 돋운다.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Modern Love)》는 억압된 시대를 뚫고 나아가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감독이 엄선한 곡. 로기수 일행과 미군들의 폭력이 춤으로 번질 땐 1988년 히트곡 정수라의 《환희》가 흘러나오는데, 가히 강형철 감독의 위트가 번뜩이는 선곡이라 할 수 있다. 일명 ‘부조리 시퀀스’에 해당하는 이 장면은 《써니》에서 시위대의 충동과 소녀들의 패싸움이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touch by touch)》 음악을 배경으로 집단 군무를 추듯 난장을 이뤘던 신을 연상시킨다. 부조리한 상황을 유머로 치환해 내는 유려한 솜씨다.


탁월한 캐릭터 배치로 눈길

《스윙키즈》는 유쾌하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후반부 전쟁터에서 한쪽 팔과 다리를 잃고 돌아온 인민군 광국(이다윗)과 로기수의 형이 등장하면서부터 영화는 웃음을 거두고 비장한 드라마에 힘을 싣는데, 단점이 드러나는 것 역시 여기서부터다. 정해 둔 결말을 위해 무리수를 두는 모습이 적잖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일단 로기수의 형은 결말의 극적 해소를 위해 빚어진 작위적 캐릭터란 인상이 짙다. 광국의 경우 다분히 이념을 극대화해 대변하는 인물인데, 아마도 영화는 이 인물을 통해 전쟁이 한 인간을 어떻게 미치게 할 수 있는가를 그려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목표를 위해 광국의 감정을 너무 쉽고 빠르게 소비한다. 그의 변화를 받아들일 시간이 관객들에게 조금 더 주어졌다면 《스윙키즈》가 그리는 비극은 조금 더 세밀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스윙키즈》는 상업 오락영화로서 제 몫을 다 해내는 결과물이다. 《과속스캔들》 《써니》가 그랬듯, 캐릭터를 극에 자연스럽게 배치하는 솜씨가 특히 탁월하다. 도경수는 이제 굳이 ‘아이돌 출신’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배우로서의 얼굴을 장착했다. 시작은 가수지만, 또래 연기자들과 비교해도 단연 돋보인다. ‘진정성’이란 말이 다소 저평가되는 시대지만, 도경수의 눈은 그것이 진짜 있다고 말하는 듯해서 다시 돌아보게 된다. 박혜수는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강단 있게 표현했다. 대사를 타는 리듬감이 이토록 좋은 줄 몰랐다. 원맨쇼에 가까운 1인 코미디 장면부터 애절한 감정을 오가는 오정세의 연기도 돋보인다. 신인 배우 발굴에서 재능을 보였던 강형철의 눈썰미는 샤오팡을 연기한 김민호를 통해 다시 입증된다. 어디서 저런 얼굴을 찾았나 싶을 정도로, 영화를 보고 나면 배우가 궁금해진다. 중요한 역할을 맡아 무리 없이 녹아든 자레드 그라임스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춤을 춰요 모두 앞에서. 꿈을 꿔요 여기서 모두. 사랑해요 모두 앞에서. 노래해요 이태원 프리덤~” 몇 해 전 큰 인기를 끌었던 한 대중가요의 가사다. 이태원을 거제도로 바꿔서 부르면 이건 딱 《스윙키즈》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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