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복지·교육이 부러워? 신뢰 사회부터!”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12.10 15:45
  • 호수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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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대사관④] 에로 수오미넨 주한 핀란드 대사가 전하는 ‘노키아 부활’ 뒷이야기

‘지구촌’ 시대라곤 하지만 국경의 벽은 여전히 높다. 전 세계 230여 개 국가가 어떤 곳인지 우리는 모두 알지 못한다. 반대로 그들도 우리를 잘 모른다. 다만 그 간극을 메워주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에 설치된 해외 각국의 대사관들이다. 한국과 교역하는 국가는 190개, 그중 112개국이 우리나라에 공관을 설치했다. 두 나라에 정통한 대사의 시각에서 양국을 이해하면 어떨까. 그 네 번째 시간, ‘스타트업 천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우리에겐 자일리톨로 유명한 북유럽의 관문, 핀란드다. 

핀란드라고 하면 한국인들에게 무엇이 생각날까. ‘휘바, 휘바(좋아, 좋아)’로 유명한 자일리톨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대자연도 연상된다. 끝없이 펼쳐진 침엽수림과 호수, 그 위를 수놓는 오로라 말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대자연이 선사하는 건강한 식재료와, 춥고 지친 일상을 달래주는 사우나도 유명하다.

한국에 핀란드는 오래된 벤치마킹 대상이다. 한국처럼 핀란드도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스웨덴과 같은 강대국 틈새에서 잦은 압박과 침략을 받아 오랜 세월 배고픔에 시달렸다. 동족상잔의 좌우 이념 전쟁도 겪었다. 비슷한 역사적 경로를 겪었지만 지금 두 나라의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핀란드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복지국가다. 전 세계적인 교육 경쟁력도 갖고 있다. 올해는 전 세계 156개국 중 행복지수 1위 국가로 평가받았다. 보통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이뤄야 선진국이라 한다. 핀란드는 어떻게 훌륭한 분배 제도를 가지면서 세계적인 국가 경쟁력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한국의 관료와 정치인, 지식인들은 수시로 핀란드를 찾는다.

최근 핀란드는 한국에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노키아의 몰락으로 ‘유럽의 병자’로 평가받던 핀란드가 ‘노키아의 부활’에 이어 ‘클래시 오브 클랜’(슈퍼셀), ‘앵그리버드’(로비오) 같은 세계적 히트작을 배출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인구의 9분의 1인 550만 명 국가에 스타트업은 2400여 개가 활동 중이다. 경제 부흥이 제조업이 아닌 기술창업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높은 실업률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밖으로는 통상 갈등, 안으로는 정책 실패 등으로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한국 경제에 핀란드는 새로운 벤치마킹 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핀란드가 강소국으로서 지위를 굳건히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로 수오미넨(Eero Suominen) 주한 핀란드 대사는 ‘신뢰 사회’를 그 비결로 꼽았다. 그는 “경제는 다이내믹하고 사회는 안정적이어야 국가가 지속 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다”면서 “이 균형이 정말 중요한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신뢰 사회”라고 강조했다. 전 세계적인 복지 제도와 노키아의 부활로 상징되는 핀란드 경제의 회복을 이끈 핵심 배경이 바로 신뢰 사회라는 설명이다. 수오미넨 대사는 “경쟁이 아닌 협력을 강조하는 핀란드의 교육도 신뢰 사회라는 철학이 나라 전체에 굳건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에로 수오미넨 대사가 핀란드에서 하마를 닮은 캐릭터로 유명한 ‘무민’ 인형을 안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6명의 딸과 한국 생활을 하고 있다. 가족들이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뭔가.

“딸들이 한국을 무척 좋아한다. 한국의 모든 걸 즐긴다. 특히 서울은 다이내믹한 도시다. 정말 할 게 너무 많아 놀랐다. 쇼핑과 다양한 먹거리, 영화, 카페는 물론 다양한 한국 문화를 즐기고 있고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평창올림픽 때 즐긴 강릉이 인상적이었다. 서울에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 특히 클래식 공연을 좋아한다.”

한국 관광산업이 더 발전하려면 무엇이 보완되면 좋겠나.

“한국인들이 모르는 한국의 강점이 있다. 도시와 산이 어울려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들이 보다 편하게 산을 하이킹할 수 있게 프로모션을 강화하면 좋겠다. 한국 관광에 아쉬운 점은 접근성이다. 한국의 역사와 전통, 음식 같은 문화를 우린 잘 알 수가 없다.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너무 좋은 갤러리와 예쁜 카페가 많지만 소개가 부족하다.”

핀란드 관광이 최근 한국에서 인기다. 핀란드의 매력이 무엇인지 소개해 달라.

“핀란드의 가장 큰 매력은 아름다운 대자연 그 자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공기가 깨끗하다(웃음). 대자연이 선사하는 신선한 음식도 매력이다. 최근 한국에서 오로라를 보기 위해 핀란드를 많이 찾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핀란드 북쪽에 있는 라플란드를 권하고 싶다. 겨울에는 정말 장관이 펼쳐진다. 호수가 많은 레이크랜드와 옛 수도 투르크도 추천한다. 교통이 편리한 수도 헬싱키도 좋다.”

핀란드가 자랑할 만한 문화는 뭐가 있나.

“핀란드에는 ‘만인의 권리(everyone’s right)’라는 개념이 있다. 누구나 어떤 숲이나 야생의 자연환경 속으로 마음대로 들어가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곳이 사유지이건 소유주가 어떤 힘 있는 사람이건 상관없다. 이 권리에는 걷고 스키를 즐기는 것 외에 나무 열매나 버섯을 따는 일, 호수에서 낚시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핀란드에서는 누구도 ‘사유지 출입금지’를 어겨 벌금을 무는 일이 없다. 이런 권리가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특이할 수 있다.”

올해 유엔이 발표한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핀란드가 국가 행복지수 1위를 차지했다. 그 비결은 뭐라고 보나.

“평등권, 안전권, 자연권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핀란드에서는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누구나 양질의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 개인은 누구나 평등한 대접을 받는다. 또 핀란드에서는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겪어도 혼자 내팽개치지 않고 사회가 보듬어준다. 사회적 안전망이 잘 구축돼 있다. 자연이 가깝다는 점도 중요하다. 핀란드 사람들은 숲에 가서 힐링하는 것에서 큰 행복을 느낀다.”

핀란드의 복지 제도는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세금 부담에 대한 반발은 없었나.

“세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Nobody likes taxes). 핀란드인들도 마찬가지다(웃음). 중요한 건 신뢰다. 세금을 많이 내도, 그 세금보다 본인이 받는 게 많다는 신뢰가 있으면 불만이 없게 된다. 저만 해도 그렇다. 자녀가 6명이라 그만큼 세금도 많이 냈지만, 분명 그 이상의 혜택을 받았다(웃음).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도 부담은 전혀 없었다. 한국에는 간병인이 필요한 걸로 알고 있는데, 핀란드는 일절 그럴 이유가 없다. 연금제도도 잘돼 있어 은퇴 후 생활도 걱정이 없다. 핀란드의 안전망은 이렇게 구축돼 있다. 국가의 제도를 분명히 신뢰하기 때문에 많은 세금이 아깝지 않다. 슈퍼셀 같은 게임 회사는 다른 회사로 매각됐을 때 세금을 자발적으로 내고 싶다고 했다. 이미 많은 혜택을 받았기에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태도였다. 핀란드의 모든 강점이 이것과 연결돼 있다.”


핀란드의 신뢰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노키아의 부사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과속에 걸렸다. 이때 정부가 부과한 범칙금이 무려 1억6000만원에 달했다. 핀란드는 고소득자일수록 벌금을 많이 낸다. 소득에 비례한 벌금 제도가 더 공정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핀란드의 높은 사회적 신뢰도는 사전·사후적 공정성이 지탱한다. 사전적 공정성은 기회의 공정함이다. 개인들은 교육과 의료에서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사후적으로는 신뢰를 깨는 사람은 엄하게 처벌하고, 처벌을 경제적 수준에 맞춘다. 그래야 더 사회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핀란드는 하늘에 휘날리는 ‘빛의 커튼’ 오로라로 유명하다. ⓒ 연합뉴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을 수 있는 이유는 뭔가.

“핀란드는 작은 사회다. 모두가 서로를 안다. 평판이 중시되는 사회다. 정직을 강조하는 종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거다. 핀란드인들은 학교나 병원 같은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높다. 부패가 없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모든 운영이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이다. 쉽게 접근해 모든 정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법과 제도에 대한 신뢰가 높다. 무엇보다 핀란드 사회에서 정직이란 가치는 가장 높은 명예로 평가받는다.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

최근 노키아의 부활이 화제다. 그 비결은 뭔가.

“노키아의 몰락은 역설적으로 핀란드가 스타트업 천국이 되는 밀알이 됐다. 노키아의 수많은 연구원들이 나와 창업을 했다. 노키아가 자신의 특허권을 이들에게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풀었기 때문이다. 이 결정이 매우 중요한 결과를 낳았다. 스타트업은 그 특성상 성공하는 데 7~8년이 걸리는데 노키아의 결정이 이 기간을 단축시키는 것은 물론 건강한 토양에서 출발할 수 있게 했다.”

핀란드가 스타트업 천국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핀란드 대학은 이공계 학과가 매우 강하다. 총리가 이공계 출신이다(웃음). 사회 전반에 이공계를 대접하는 문화가 있다. 또 핀란드만의 산학연 모델이 있다. 헬싱키에 있는 알토대는 핀란드 정부가 산학협력 강화와 융합교육을 위해 헬싱키경제대·헬싱키디자인예술대·헬싱키공대 등 3개 대학을 통합해 만든 실험적인 학교다. 이렇듯 핀란드는 연구·개발 자체는 물론 그 인프라 조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핀란드 정부는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정부, 대학, 기업이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스타트업을 체계적으로 돕기 위해 다양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이 참여한 ‘팀 핀란드(Team Finland)’라는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또 기술혁신지원청을 통해 매년 1500여 개의 비즈니스 연구·개발 프로젝트 등에 재정을 지원한다. 사실 여기까진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가장 다른 점은 투명성이다. 핀란드의 연구·개발 투자는 투명하게 집행되고 또 검증된다. 그래서 정부 재정 지원에서 떨어진 이들도 승복하고 다음 기회를 노린다. 이 차이가 큰 격차를 낳고 있다.


핀란드의 교육 경쟁력은 어디서 오나.

“일단 선생님들이 양질이다. 석사과정까지 꼭 마쳐야 한다. 핀란드에서 교사는 존경받는 직업이다. 교육학과로 대학에 입학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의대 가는 것만큼 어렵다. 또 핀란드 교육은 학습능력만큼 정신건강을 신경 쓴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 취미생활과 교우 관계, 가족과의 관계 등도 학교에서 배운다. 또 질리지 않게 한다. 교육은 평생 하는 거다. 학교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어른이 돼서도 공부를 할 수 있게 공부가 즐거운 일이라는 걸 체화하게 한다. 교육에 전혀 돈이 들지 않는 점도 강점이다. 재취업을 위한 재교육도 당연히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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