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폭력’ 방지는 국가의 기본이다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2.10 15:09
  • 호수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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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으로 시작된 차별 극복의 길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제정되게 되었다. 이 법은 개별법이 아니라 기본법, 즉 여성폭력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포괄하며 정책을 수립하고 관련된 법안을 만들 수 있는 토대를 닦는 법이다. 기본법이 제정된다는 것은 여성폭력을 개인적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바라본다는 인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실제로 여성폭력은, 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우연히 여성이었던 것이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되는 일이다. 지금까지 여성에겐 국가가 없다는 말을 자조적으로 해 왔다. 이 법 제정으로 명시적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호책임이 생겨나는 것이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안은 “여성폭력방지정책의 추진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공공 및 사적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하 ‘여성폭력’이라 한다)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폭력 없는 사회를 이루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한다”고 말함으로써 여성폭력의 근절이야말로 모든 폭력의 근절이 됨을 명시하고도 있다.  

 

12월6일 국회 본청 원내대표회의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 발대식 및 1차 업무보고 ⓒ 연합뉴스


각종 차별 철폐 계기 돼야

그런데 이때 ‘여성’이라는 말은 통념적으로 생각하듯 생물학적 여성만을 말하는 것일까? 왜 여성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될까를 생각해 보면, 그게 분명하지가 않다. 폭력을 당하는 것은 당연히 성차별 때문이다. 오랫동안 세상은 남녀의 대립을 기본으로 하는 이분법적 세계관에 의해 움직였다. 이분법의 우월한 쪽에는 남성·백인·자본가 등이, 열등한 쪽에는 여성·흑인·노동자 등이 있다는 세계관.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세계관.

그 세계관에 균열이 오고 무너진다는 것은 차별이 사라진다는 뜻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실제로 일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흑인 차별을 노골적으로 못 하면 대신 멕시코 이민을 차별하고, 동양인을 차별한다. 여성을 차별하지 말라면 ‘못생긴 여성’ ‘뚱뚱한 여성’을 차별하고 동성애자를 차별하고 트랜스젠더를 차별한다. 전 세계적 위치에서 백인 남성 자본가, 즉 킹스맨(신사)이 아닌 사람들은 다 어딘가 부족하거나 결핍이 있고, 따라서 킹스맨 젠더가 아닌 다른 젠더가 된다. 그래서 성차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념적으로 생각하듯 생물학적 여성 차별이 아니라 킹스맨 아닌 젠더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다. 여성은 대표적으로 차별받는 가장 수가 많은 젠더일 뿐이다. 이 때문에 법안 원안은 ‘성평등’이란 말을 사용했다. 영문 표기 젠더(gender)와 한자 표기 성(性)에 대한 납작한 해석을 풍부하게 바꾸는 것 또한 이 법안의 장점이었다.

그러나 법사위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관계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여성폭력 예방교육을 성평등 관점에서 실시한다”고 되어 있는 19조 1항을 “양성평등 관점에서 실시한다”로 바꾸었다, 자유한국당의 반대 때문이다. 아마도 동성애 반대가 정부를 향한 공격의 무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모든 차별은 나쁘지만 어떤 특별한 차별은 예외라고 감히 말하는 꼴이다.

“그들(나치)이 공산주의자를 덮쳤을 때…”로 시작되는 유명한 뉘밀러의 시가 있다. 어떤 차별을 용인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차별도 용인하는 것이 된다. 동성애자가 아닌 페미니스트들이 애써 ‘성평등’을 말하고 ‘양성평등’에 반대하는 이유다. 성차별을 국가의 기본법으로 금지하는 법률이 이제 시작되려 하는 만큼, 저 어두운 눈들도 장차 밝아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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