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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지방법원, 연방정부에 ‘급제동’ 걸다

디젤차 운행금지 판결로 본 독일 ‘판사의 자유’

강성운 독일 통신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28(Wed) 17:07:02 | 15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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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시(市)와 본시(市)의 대변인들은 ‘하겠다’ ‘될 것이다’ ‘효과가 기대된다’며 미래시제를 많이 쓰고 있다. 하지만 (대기오염은) 지금 당장의 문제이기에 현실적이고 효과가 빠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 

 

11월8일, 독일 쾰른 행정법원의 미하엘 후셴스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자 법정은 일순 조용해졌다. 독일 환경원조(DUH)가 쾰른시와 본시를 상대로 낸 질소산화물 기준치 준수 요구 소송에 대한 판결이었다. 이 단체는 2010년 유럽연합이 이 기준치를 제시한 이후 지금까지 독일의 시정부가 대기오염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대기오염이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DUH는 최후의 수단으로 각 시정부가 디젤차량의 운행을 금지시켜야 한다며 전국 40여 개 시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독일은 2010년 유럽연합법이 정한 대기 중 질소산화물 허용 농도 기준을 도입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대기 1㎥당 질소산화물 양은 40μg(마이크로그램)을 넘어선 안 된다. 쾰른의 경우 2017년 이 수치가 최고 62μg/㎥을 기록했고, 소도시 본에서도 작년 47μg/㎥이 기록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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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산화물은 호흡기 질환의 원인이다. DUH는 호흡기 질환 전문의인 노베르트 K 뮐렌아이젠의 말을 인용해 “우리가 들이마신 질소산화물은 폐 속에서 화학작용을 통해 질산이 되고, 이것이 점막을 자극해 호흡기나 폐포에 염증을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그는 “디젤차량의 질소산화물이 담배만큼이나 호흡기에 좋지 않다는 게 상식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구 106만 명의 쾰른시는 독일 서부의 경제 중심지다. 매일 아침 32만여 명이 다른 도시에서 쾰른으로 출근하고, 쾰른 시민 중 14만여 명은 다른 도시로 향한다. 매일 쾰른을 드나드는 46만여 명 가운데 46.7%는 자동차를 이용한다(2015년 기준). 후셴스 판사는 2019년 4월부터 환경보호구역으로 설정된 도심 및 주거지 전체에 디젤차량이 드나들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쾰른의 환경보호구역은 88㎢로 시 전체 면적 405㎢의 22%에 이른다. 게다가 운행금지 대상은 점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먼저 내년 4월부터 2005년 이전에 생산된 차량의 통행이 금지되고, 2019년 9월부터는 2009년 생산 차량까지 범위가 확대된다. 출퇴근자의 상당수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주일 뒤인 11월15일엔 같은 주의 겔젠키르헨과 에센시 행정법원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내려졌다. 특히 A40번 고속도로 일부가 디젤차 운행금지 구역에 포함돼 파장은 더욱 컸다. 우르줄라 하이넨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州) 환경부 장관은 “주민, 통근자, 쾰른시의 경제구역 전체가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며 “당연히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녀는 또한 디젤차량의 운행 자체를 막는 것은 “과하다”고 주장했다. 하이넨 주 환경부 장관은 주정부 및 쾰른시와 공동으로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는 공유차량 전용 주차장 확대, 자전거 통행 개선, 쾰른시 보유 차량의 전기자동차 전환 등의 방안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회의적이다. 지역신문인 ‘쾰르너 슈타츠안차이거’는 2012년 기준 쾰른의 대기 중 질소산화물이 연간 1만7000톤이었는데 지방정부의 대책은 고작 127톤밖에 줄이지 못할 것이라며 ‘생색내기’식 정책을 꼬집었다.


자동차 업계 ‘비상’ 정치권 ‘꼼수’

독일에서 디젤차량 운행금지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미 베를린,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슈투트가르트 등 독일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디젤차량의 운행이 금지됐다. 뮌헨과 뒤셀도르프, 아헨, 마인츠 등에서도 법원 판결로 디젤차량 운행 중단이 예고돼 있다. 독일 환경원조는 11월말 현재, 전국 30여 개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자동차 업계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독일 연방정부는 법원 판결을 무력화하기 위해 나름의 대안을 내놓았다. 독일 연방교통부는 자동차 생산자와 협의 끝에 다임러와 폭스바겐은 노후 디젤차량의 엔진 개조 비용을 3000유로까지 지원하고, BMW는 새 차 구입 시 같은 금액을 보조해 준다는 협의안을 밝혔다. 안드레아스 쇼이어 연방교통부 장관은 “다만 엔진 개조 기술은 현재 시장화되지 않아서 실제 수리비용이 얼마가 될지는 모른다”고 단서를 달았다. 이에 더해 독일 연방 내각은 11월15일 대기 중 질소산화물 농도가 50μg/㎥ 미만인 지역에서는 디젤차가 다녀도 된다는 내용의 ‘디젤차량 운행금지 규칙’을 내놓았다. 노후한 디젤차량 소유자가 당장 새 차를 사거나 엔진 수리를 받지 않아도 되게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자동차 업계와 연방정부가 사실상 아무 효력 없는 대안으로 법원 판결을 무력화하려 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애초에 자동차 생산자들이 차량 소프트웨어를 조작해 디젤차의 배기가스 배출량을 실제보다 낮게 측정되게 속여 팔았기 때문에, 정부가 이들의 이익을 무조건 보호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 안톤 호프라이터 연방의회 녹색당 원내대표는 특히 엔진 개조 기술은 이미 개발됐지만 교통부가 일부러 허가를 미뤄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쇼이어 교통부 장관의 대책은 결국 “엔진 개조를 미룸으로써 (조작된 배기가스 수치를 믿고) 속아서 디젤차량을 산 구매자에게 새 차를 사라고 부추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환경 소송을 주도한 위르겐 레쉬 독일 환경원조 대표는 새 규칙이 “앙겔라 메르켈 정부가 BMW, 다임러, 폭스바겐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디젤 배기가스 기준치를 마음대로 올리는 것은 “유럽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레쉬 대표는 “측정치가 50μg/㎥ 미만인 도시들도 결국 디젤차량 운행을 금지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다만 디젤차량 운행금지가 판결문대로 당장 시행되긴 어려워 보인다. 전문가들은 1심에서 진 각 지방정부가 항소를 하면 실제 시행까지 수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일개 지방법원이 중앙정부 및 재계의 이해관계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을 내리는 것은 한국에선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판사의 결정은 어떠한 외부 요소에도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이른바 ‘판사의 자유’가 엄격히 보장된 독일에서는 행정법원이 시민의 손을 들어주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공권력을 상대로 한 시민운동의 한 사례로 디젤차 운행금지 소송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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