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선 전략으로 ‘북한 공포 카드’ 쓸까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08 17:56
  • 호수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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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중간선거가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나비효과’

“애초 북한 카드는 이번 중간선거에 쓸모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재선이나 향후 민주당과의 대결에서 이 카드를 다시 활용할지가 핵심이다.”

11월6일(현지 시각) 펼쳐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8년 만에 다시 하원을 탈환하는 것으로 결정된 직후 워싱턴의 한 외교 전문가가 향후 북·미 관계 전망에 관해 내놓은 말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중간선거 유세 기간 북한 문제에 관해서는 “잘되고 있다”는 말만 수십 차례 반복했다. 미군 유해 송환 등을 거론하며 자신이 전임자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했다는 치적 내세우기에 골몰했다. 사실상 중간선거 기간에 북한 문제는 이미 대문 밖으로 사라진 셈이다. 이번 선거 기간 북한 문제가 여론조사 항목에 등장조차 하지 않은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급기야 중간선거 직후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북·미 고위급회담도 연기됐다.

야당인 민주당이 의회 하원 다수당 지위를 탈환하면서 의회 권력의 반(半)이 트럼프의 손을 떠났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북한 문제에 관해 개입(engagement)과 대화를 우선시해 미국의 대북정책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정책에 이를 갈고 있는 민주당의 입장을 생각하면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민주당이 북한 문제에 관해서도 ‘현미경 잣대’를 들이댈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주당의 하원 장악이 미국의 대북정책을 크게 바꾸지는 않겠지만 중간선거 전과는 판이 확연하게 달라질 것이라는 데 초점이 쏠린다. 미국 의회 상·하원 제도에서 조약 비준권 등 외교정책은 상원이 담당하는 관계로 하원의 영향력은 비교적 약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예산권은 물론 청문회 권한 등 상원 못지않은 권력을 가진 하원을 민주당이 장악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들이댈 칼날은 확보한 셈이다. 하원 외교위원장 등 모든 위원회의 수장도 다수당이 차지하는 독특한 제도도 칼날을 더 예리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딴지’를 걸 수 있는 셈이다. 또 다른 외교 전문가는 “북·미 협상은 고사하고 어쩌면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하원 청문회에 불려 다니다가 시간을 다 보낼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미국 중간선거 다음 날인 11월7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UPI 연합


‘북한 카드’ 위상 변화 불가피

이미 의회 권력 반을 자치한 민주당은 본격적으로 ‘러시아 스캔들’ 등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격에 나설 전망이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제대로 북·미 협상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과 잘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한 그가 다시 북한 카드를 꺼낼 명분을 스스로 상실했다는 지적도 등장한다. 미국 국민들이 다시 공포를 느끼지 않는 이상 북한 문제가 이슈의 핵심으로 등장하기 어렵다는 현실론이다. 북·미 협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중간선거 직후인 11월7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관해 “서두를 것이 없다. 급할 것이 없다”는 말만 수차례 반복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관해서도 “내년 언젠가”라고 말했다가, 겨우 “내년 초 언젠가”라고 부연했다. 또 “대북제재는 절대 유지한다”는 말만 반복해 미국이 먼저 양보 카드를 꺼낼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손오공이 아무리 까불더라도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다는 의미다. 달리 보면,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북한 카드가 현재로서는 실효성이 없음을 인정한 셈이다. 그는 “우리는 북한과 좋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고위급회담 일정은 다시 잡힐 것”이라고 협상의 끈은 놓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북·미 협상이나 정상회담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했을 뿐이다.

하지만 북한도 판을 깨지 못하고 밋밋한 대응으로 속앓이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핵 개발을 의미하는 ‘병진 노선’을 다시 추구할 수도 있다고 경고에 나섰지만 수위는 엄청 낮은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만큼 70년 만에 처음으로 적대국 정상과 마주한 북·미 정상회담의 의미를 살려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내부에도 대대적으로 선전한 마당에 다시 대결 구도로 몰아가면 통제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다. 또 판을 먼저 깨고 나갔을 때 닥쳐올 국제적인 비난을 스스로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도 숨어 있다. 북한이 뉴욕 고위급회담 무산은 물론 최근 북·미 관계에 관해 일절 공식적인 성명이나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속내다.

앞서 언급한 외교 전문가도 북한 카드는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인데, 이제는 다소 빛이 바랬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상황에 따라서는 트럼프의 재선이 아니더라도 북한 카드가 얼마든지 되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미 간에 상황 진전이 없는 가운데 북한이 마냥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지적된다. 북한이 북·미 교착상태 속에서 다시 친(親)중·러 노선을 본격적으로 강화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치적 내세우기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의회 칼날을 쥔 민주당이 국내 문제는 물론 북한 문제까지 트럼프 대통령을 코너로 몰아가면 승부사 기질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이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관계를 의도적으로 파탄 낼 수 있다는 우려다.


한·미 관계 엇박자 그대로 표출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만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는 것이 다수 외교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남북관계 선순환’ ‘남북관계 우선’을 강조하고 있지만 북·미 관계가 교착되면 실질적으론 협상 진행이 어렵다는 현실론이다. 연내 ‘종전선언’은 물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이미 물 건너갔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이 확고한 대북제재를 일관되게 견지하는 과정에서 철도 연결 사업을 포함한 남북관계 개선 사업도 크게 동력이 떨어질 전망이다. 오히려 최근 일련의 과정은 긴장 완화를 추구하는 남북관계 개선과 한·미 동맹을 등에 업은 한·미 관계가 함께 균형추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행정부 관계자들이 최근 사석에서 남북관계에 우선순위를 두는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다는 말까지 퍼지면서 한·미 동맹이 삐걱거리고 있다는 분석까지 난무한 상황이다. 일단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러한 풍문을 전부 부인하면서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미국이 뉴욕 북·미 고위급회담을 전격 취소하기 불과 하루 전에도 청와대는 장밋빛 전망만 내놓았다는 점에서 한·미 관계 ‘엇박자’가 심각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11월8일 “북·미 고위급회담 전격 연기를 미국으로부터 통보받기는 했지만 우리가 상당히 당황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실토했다. 그만큼 한반도 상황이 우리 정부의 의지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화염과 분노’나 ‘로켓맨’으로 대표되는 강경 발언도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미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고단수 레토릭(rhetoric·수사)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협상의 달인으로 ‘벼랑 끝 전략(brinkmanship)’을 구사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든지 다시 북·미 협상의 판을 뒤엎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 시기가 다가오고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특유의 ‘편 가르기’식 공포 정치의 유혹에 빠져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중간선거 기간에 그가 중남미에서 시작된 미국을 향하는 이민자들의 행렬인 ‘캐러밴’을 최대한 이용해 나름 재미를 봤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재선이 다가올수록 이번에는 다시 ‘북한 공포’라는 카드를 극대화해 이를 최종적으로 해결했다는 고단수 노림수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11월8일로 예정된 북·미 고위급회담이 돌연 연기됐다. 사진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10월 방북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 모습 ⓒ 조선중앙통신 연합


강경파 목소리 커지며 재충돌 가능성 있어

최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미 국무부, 국방부 등의 고위급 인사들이 점점 더 대북 강경파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의 ‘파탄 내기’ 전략의 토대로 본다. 군부 라인에서 대북 대화파를 자처했던 빈센트 브룩스 사령관이 물러가고 골수 군부 출신인 로버트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새로 취임했다. 북·미 협상의 토대를 마련한 제임스 매티스 장관의 거취도 공중에 뜬 상태다. 국무부 역시 강경파인 해리 해리스 전 태평양사령관이 미국 대사로 한국에 부임해 있다. 나름 대북 대화파였던 수전 손턴 동아시아 차관보 대행은 청문회를 마치고도 물러나고 말았다. 뼛속까지 대북 강경파로 불리는 존 볼턴 보좌관이 수장으로 있는 백악관 NSC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한마디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정책에 있어 손가락 하나만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물밀 듯이 강경 분위기로 전환할 토대는 이미 다 갖춰진 셈이다.

일각에선 ‘현상 유지(status quo)’에 만족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쉽사리 북·미 관계를 파탄내는 도박을 감행하기는 쉽지 않다는 반론도 나온다. 북한의 핵 위협은 사라졌다고 호언장담해 온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가 잘못하면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수시로 냉·온탕을 오가면서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질을 고려하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미국에 상응 조치의 일환으로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는 북한의 한계와 맞물려 재충돌 가능성은 더욱 증폭될 수도 있다.

리트머스 시험지는 무엇보다도 내년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여부다. 조기에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못하고 계속 교착상태를 이어 간다면 어쩌면 내년에 한반도에 또 한 번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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