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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미약’ 바라보는 의료계와 법조계의 엇갈린 시각

의사 “심신미약은 치료할 인격장애이지 면죄부가 아니다”…변호사 “국민 정서로 재판할 수도 없는 일”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ㅣ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10.19(Fri)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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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경기도 안산에서 8세 여아를 성폭행해 장기까지 파손한 조두순은 만취 상태였다는 이유로 15년에서 12년으로 형이 줄었다. 

 

지난해 8월 전주에서 이혼 소송으로 별거 중인 아내 집에 찾아가 "재산분할 이혼소송을 그만두지 않으면 죽이겠다"며 흉기로 위협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도 항소심에서 만취 상태가 인정돼 4년에서 2년 6개월로 감형받았다. 

 

모두 법원이 심신미약을 인정한 사례다. 법률 용어인 심신미약은 심신(心神)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태에서 행한 범죄 행위는 형법에 따라 감형된 처벌을 받는다. 다만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는 감면하지 않는다. 또 2013년 성범죄법이 개정되면서 성범죄의 경우도 심신미약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의사는 심신미약을 어떻게 볼까. 심신미약을 범죄와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음주뿐만 아니라 못 참는 성격, 우울증,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 등 심신미약의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심신미약은 의학용어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인격장애로 설명할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르는 무법적 인격장애도 있지만, 조직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성격도 인격장애다. 사회는 이런 사람을 배척할 게 아니라 기회를 주고, 치료도 하고, 보듬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경찰에 행패를 부리는 등 공권력에 저항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 행위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 인격장애자라고 해서 생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즉 인격장애자에게도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의식은 있다"고 설명했다. 

 

pixabay


 

법의학자 "처벌 강하면 범죄 줄어"

 

음주 교통사고가 났다고 가정하자. 타인이 다치지도 않았고 의도하지 않은 과실인데도 음주 교통사고는 엄중하게 처벌하는 분위기다. 만취 운전으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경우는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고, 문재인 대통령도 10월10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음주운전 사고는 실수가 아니라 살인행위”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번에는 직장 상사가 술을 먹고 부하 직원을 성희롱했다고 가정하자. 피해자는 평생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피의자는 의도적으로 성희롱을 했지만, 그 사실을 숨기고 만취 상태였으므로 성희롱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게다가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면 그 처벌은 생각보다 미약하게 나온다. 

 

이 두 사례는 모두 음주 후 행동이고, 전자는 과실이고 후자는 의도가 있었다. 그럼에도 처벌은 전자에게 더 무겁게 나올 수 있다. 적어도 이런 불평등에 대한 해법이 필요해 보인다. 박의우 전 건국대 법의학과 교수는 "음주 후 폭력을 훈방 등으로 처리하던 주폭자 동네에서 구속 등 처벌을 강화하자 불법행위가 크게 줄었던 사례가 있다. 술을 먹는 자체가 고의성이 있다. 술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를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신미약 상태의 범행은 더 강하게 처벌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 국민도 요즘 심신미약을 이유로 한 감형에 우호적이지 않다. 특히 만취 상태에서 행한 범죄에 대해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감형해주는 주취감형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 정서는 사상 최고치다. 국민 10명 중 8명이 주취감형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주취감형 존폐에 대한 국민 여론’을 조사한 결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80%를 차지했다.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11.8%에 불과했다. 

 

 

변호사 "국민 정서로 재판할 수도 없는 일"

 

그렇지만 국민 정서로 법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법의 한계다. 이것이 법조계의 고민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음주를 형의 감면 사유에서 배제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범죄자에게 형사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책임 능력(범죄 충동을 억제하지 않고 저지른 행위)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14세 미만 소년·심신상실(사물에 대한 변별력이 없거나 의사를 전혀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자·심신미약자의 처벌이 약한 이유는 비난 가능성이 없거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법은 음주를 약물·정신장애 등과 함께 심신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본다. 따라서 음주만 심신미약 범주에서 제외하면 법적 일관성이 사라지고 형사법의 대원칙인 책임주의를 훼손하게 된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 해석이다. 김명종 변호사는 "현재 법 실정을 그대로 설명하면 이렇다. 멀쩡한 사람이 남의 집에 들어가 여자의 사진을 찍은 것과, 만취한 사람이 우발적으로 남의 집에 들어가 여자의 사진을 찍은 경우를 동일하게 보기 어렵다는 게 법의 판단"이라며 "법의 판단이 국민 정서에 반한다고 해서 재판을 국민 정서로 진행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잔혹한 범행에 대한 처벌 감형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법 적용을 국민이 원하기 때문이다. 고영상 변호사는 "법을 획기적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처벌 감형에 대해 평가하고 판단할 조직을 둔다든지 해서 법을 보완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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